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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소희’는 특성화고 트릴레마의 희생자

등록 2023-03-08 18:32수정 2023-03-09 02:37

특성화고 실습생의 산재사망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 중 한 장면. 영화사 제공
특성화고 실습생의 산재사망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 중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왜냐면] 이상준 |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참여소득> 저자

영화 ‘다음 소희’를 보았다. 현장실습과 관련한 특성화고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뉴스와 해결방안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기업의 부도덕함에 대응하기 위한 강한 근로감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2021년 여수, 2017년 제주, 2014년 울산,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된 2017년 전주 현장 실습생 사망사건 등에서 해결책은 근로감독 강화와 학생 인권 교육에 관한 고용노동부, 교육부, 학교 당국의 책임성 있는 대안 마련이었다. 현상만 보면 이러한 문제의식과 대안은 맞지만, 이 현상은 우리가 보지 않는 원인의 결과다. 인력파견소로 전락한 학교도 희생된 소희도 원인의 결과다. 원인을 찾아야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이행에 필요한 현장실습을 정상으로 돌려놓고 ‘다음 소희’도 막을 수 있다.

‘다음 소희’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노동시장과 산업부문에서 기술의 수준과 내용이 변함으로 인해 특성화고 학생 수요가 예전만 못하며, 둘째는 노동수요와 산업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특성화고의 구조적 경직성, 세 번째는 영화의 주된 소재인 청년층 취업률의 정치화 문제다.

첫 번째는 전 세계적으로 기술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의 노동수요를 보면 적게는 60% 많게는 80% 가까이가 학력이나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 즉 특별한 직무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일자리들이다. 다수의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훌륭한 기술을 가진 사람’보다 ‘묵묵히 말 잘 듣는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학교가 현장실습의 취지인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기업 현장에서 체험하고 적용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기업이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려면 교사, 프로그램, 평가 방안을 자체적으로 갖춰야 하는데 웬만한 중소기업이 아니고서는 이를 체계적으로 시행할 기업은 많지 않다. 영화 속 교사와 교감이 형사와 나눈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장실습을 시켜줄 기업을 찾는 것은 특성화고 교사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실례로 2017년 강원도 태백에서 발생한 특성화고 교사의 자살사건 원인도 과도한 현장실습에 대한 부담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을 향한 학교의 구애는 구인난에 허덕이는 기업이 현장실습을 저비용 인력확보 계기로 보게 만든다. 원청-하청-재하청-재재하청 산업구조에서 한계 인건비 절약으로 간신히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중소기업이 제 발로 찾아온 현장 실습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특성화고 체제의 구조적 경직성이다. 오늘날 숙련구조는 과거처럼 손의 익숙함을 필요로 하는 업무는 줄어들었고 대신 업무 공정의 자동화로 인해 사람의 손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 특히 과거 주산과 부기로 대표되던 상업계는 자동화의 직격탄을 맞은 형국이다. 1990년대 인터넷 보급 이후 상업계열 특성화고는 새로운 전공영역을 모색하고 있으나 인공지능이 점령하는 오늘날 새로운 교육과정을 신설하는 데 한계에 다다른 듯 보인다.

세 번째는 청년층 취업률의 정치화다. 이는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며 정부의 지원금보다 중요한 특성화고의 존재 이유 때문이다. 2021년 여수 실습생 사망으로 교육부는 현장실습에 잠시 주춤했으나 청년층 취업률이 저조해지자 얼마 못 가 재개했다. 학교 전공과 일치하지 않은 업무에라도 학생을 보내지 않으면 특성화고의 존재 이유가 없으며 정부와 교육 관료도 취업률 하락이라는 지표로 정치적 공격을 받기 싫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고는 교육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자발성 없는 다수의 기업이 교육적 사고를 갖고 학생을 지도할 이유가 없으니 현장실습을 새로운 구인 방안으로만 보고 학생이라는 실습생의 신분을 망각해 일어나는 것이다. 특성화고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요구하는 기업이 많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할 방안은 특성화고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재 특성화고 체제는 △정책이 경제성장 논리에 묻혀버림으로 인해 발생하는 취업과 학생 인권 문제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사립학교 붕괴와 이로 인한 교사 수급과 처우 문제 △산업과 직종 변화로 전통적인 직업계 교육과정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직업교육의 당위성 유지 문제, 이 세 가지가 서로 조화하기 어려운 ‘트릴레마’(세 가지를 동시에 취할 수 없는 궁지)에 빠져 있다. 어렵다고 귀찮다고 학교의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특성화고를 방치하면 ‘다음 소희’는 계속 나오고, 학교는 기업의 구인난을 해결해주는 ‘인력파견소’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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