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학폭) 피해 학생이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가해자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심의위)의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될 때입니다. 심의위에서 가해자가 가해 사실도 인정했고 처분까지 나왔는데 갑자기 일시정지 버튼이 눌리는 거잖아요. 피해자의 이러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도 법원은 가해자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조금 더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시도교육청별로 학폭 전담 변호사를 두기 시작한 2020년 3월부터 경남교육청 소속으로 학폭 심의와 소송 업무까지 두루 전담해온 진희정 변호사는 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변호사) 아들 폭력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가 사법 절차를 악용하면서 피해자가 그 기간만큼 피해를 받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그는 학폭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학폭 가해자가 징계 처분에 불복해 낸 행정심판·행정소송 승소율은 17.5%인데, 그에 앞서 낸 집행정지 신청 인용률이 57.9%에 달한다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는다.
8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학폭 불복 관련 집행정지 신청 및 인용 건수’를 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31일까지 집행정지 신청 건수는 총 1405건이었으며, 법원은 그중 813건을 받아들여 인용률은 57.9%에 달했다. 진 변호사는 “가해자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판사들이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에 두고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행정 처분과 동일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보통 기관장이 결정하는 행정 처분과 다르게 학폭위 처분은 전문성을 갖춘 다수 위원이 합의한 결과인데 인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진희정 변호사가 지난해 경남 거제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행정소송법과 행정심판법에서는 행정 처분으로 인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 집행정지를 인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면 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진 변호사는 “학교폭력예방법은 수많은 피해자의 희생으로 만들어졌고, 아동학대처벌법의 ‘즉각 분리’(재학대 우려가 강해 피해 아동을 분리해 일시보호하는 제도)를 차용해 가·피해자 즉시 분리’ 제도를 만들 만큼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신이 최우선”이라며 “피해 학생 보호가 공공복리에 해당하는 만큼 재판부가 해당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집행정지 인용률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진 변호사는 학폭위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인용률이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한다. 지역별 집행정지 인용률을 살펴보면 세종과 제주(100%), 인천(95.2%), 대전(94.6%), 광주(92.3%), 부산(92.1%)은 모두 90% 이상이었다. 반면, 서울과 경기 지역 인용률은 32.9%, 20.5%로 현저히 낮았다. 진 변호사는 “지역에 따라 집행정지 인용률이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 사법부가 그 원인을 살피고 논의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진 변호사는 이외에도 “학폭 사안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빠른 인정과 사과, 학폭심의위 처분에 대한 신속한 이행을 가장 원한다”며 “가해자들의 빠른 인정과 사과, 조치 이행을 위한 당근책으로 피해자의 동의를 받으면 생기부에 기재된 학폭 처분을 즉시 삭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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