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현직 교사 8명이 상담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방법을 생생히 보여주는 책 <놀러 와요, 마음 상담소>를 펴냈다. 사진은 저자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자가온다 제공
청소년 자살과 자해, 학교폭력, 가출과 자퇴…. 입시지옥 속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두드리는 교사들도 있다. 담임 교사이자 교과목 교사이기 이전에 기댈 수 있는 어른이자 스승이 되고자 ‘상담’이라는 도구를 통해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온 교사들이 동료 교사들에게 상담의 철학과 비결을 전수하는 책이 나왔다.
국내에 ‘모험놀이 상담’을 처음 소개하며 30여년간 학생들을 만나온 방승호 서울 은평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가 전국의 교사 7명과 의기투합해 <놀러 와요, 마음 상담소>(사자가온다)를 펴냈다. 모험놀이 상담은 몸을 움직이며 웃고 떠드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 고민을 해결하고 진로를 찾아가는 역동적인 상담법이다. 방승호 교사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가발을 쓰고 기타를 치고 자작곡을 불러주고 편견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아이들이 수시로 교장실에 찾아오게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아이들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과정은 지난해 개봉된 다큐멘터리 <스쿨 오브 락>에 고스란히 담겨서 교육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자로 참여한 8명의 소속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까지 다양하며, 교사 경력 또한 20대 교사부터 은퇴를 앞둔 교사까지 다양하다. 학교 종류별로, 교사의 연차별로 만나는 아이들과 고민은 다르지만, 교사들의 목표는 단 한가지다. 아이들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고 스스로 내면의 빛을 일깨워 한걸음 나아가는 것.
저자로 참여한 이들에게 ‘상담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방승호 교사는 “상담은 재미”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은 재미있어야 찾아오기 때문에 상담은 딱딱하고 엄하기보다는 가벼워야 한다”며 “놀이 상담은 아이들을 재미있고 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긍정적이었던 에너지를 다시 불러내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혜란 교사는 “상담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며 “결국 어떤 이름을 붙이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눈앞의 학생이 어린 것 같지만 이 아이는 지금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인간 대 인간이라는 동등한 존재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상담가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와 자세는 무엇일까? 방승호 교사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교사가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된다”며 자기통찰력을 먼저 갖출 것을 강조했다. 김태훈 교사는 “교사의 생각을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 대부분이 미성년자이기에 아직 생각하는 관점이 성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생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보다는 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지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며 “그러자면 일단 학생과의 라포(신뢰) 형성을 하기 위해 학생의 입장에서 듣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내인 교사도 “공감”을 강조했다. “내 입장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공감해주어야 비로소 상담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갈수록 상담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와 달리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의 재량권이나 상담적인 개입보다 학칙과 절차, 규정 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김태훈 교사는 “지금은 많은 사안들이 대부분 절차에 따라 처리를 하게 되어 있어서 처리 과정에서 선생님과 학생 관계가 더 틀어지기도 하고 학생들과 공감대 형성은 하지 못한 채 업무 담당자와 업무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태 교사도 “교권의 실추로 학부모 입김이 강해져 위기 상황에서 교사가 적기에 개입하거나 필요한 상담기술을 발휘할 여지를 찾기 어려운 풍토가 팽배해 있다”며 “상담을 하다가 더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학부모와의 트러블이 염려돼 위기 학생을 제대로 돌보기보다 적당히 넘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아이들과의 상담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학부모의 협조가 필요할 때 학부모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내인 교사는 “전문가의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마음이 아픈 학생인데 부모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협조를 끌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김홍태 교사는 “비협조적인 부모들은 대체로 이전에 교사와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경험으로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님의 고충과 애환을 충분히 들어주며 교사-부모 관계의 신뢰를 형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장내인 교사는 “‘우리 선생님이 내 아이를 진짜로 아끼고 사랑하시는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님과 첫 소통을 하게 되면 선생님을 신뢰하기가 어렵다”며 “평상시에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면 문제가 생겼을 때 협조를 구하기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방승호 교사는 “아무리 아이와 사이가 나쁜 부모도 아이와 행복했던 시절이 있다”며 “부모에게도 그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과 감정을 끄집어내게 하고 학교가 아이와 부모 사이의 사다리 역할을 해주면 아이도 부모도 잘 자라고 싶고 잘 자라게 도와주고 싶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조언했다.
책에는 학교 현장에서 상담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려 고군분투했던 교사들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팁이 넘쳐난다. 친구들과 끊임없이 싸우는 아이, 하루종일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아이, ‘엄친아’임에도 자신감이 없는 아이, 게임중독·스마트폰중독이나 흡연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가정폭력이나 빈곤 문제로 자퇴와 가출을 반복하는 아이, 분노조절장애나 강박증, 선택적 함묵증을 앓는 아이 등 사례 중심으로 조언을 전하고 있다. 책은 교사의 배려깊고 공감어린 말 한마디, 따뜻하고 관심어린 눈빛 한번에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또 그 변화가 교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도 한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김아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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