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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고교생 논문, 한동훈 딸 같은 ‘약탈적 학술지’ 게재율 증가 왜

등록 2022-05-09 18:07수정 2022-05-10 02:11

영재고·과학고·자사고 학생 해외 논문
돈 받고 실어주는 학술지 참여율 38%
“해외대학 진학 필요한 스펙 쌓기 악용”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이 논문을 게재한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제대로 된 논문 검증 없이 돈을 지불하면 게재해주는 학술지)가 해외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의 ‘스펙 쌓기’ 일환으로 악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한 후보자가 9일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전히 “입시용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한 가운데, 연구자들은 입시 활용 여부를 떠나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고 사회에 큰 해악을 키치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석사인 강태영(27)씨는 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교육부가 2014년 학생부에 논문 기재를 금지하고 2019학년도부터는 자기소개서에도 쓰지 못하게 한 뒤에도 논문을 작성하는 학생은 국내 대학이 아닌 해외 학부 유학을 준비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전체 논문 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약탈적 학술지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강씨는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 과정에 있는 강동현(33)씨와 함께 2001년부터 20년 간 국내 영재고·과학고·자사고 등 고교 213곳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이 참여한 해외 논문 558건을 전수조사하고 1차 분석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이어 2일에는 2차 분석 결과를 내놨는데 총 558건 가운데 72건(12.9%)이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에 실린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은 계속 증가해 2020년에 출간된 16편의 경우 전체 37.5%가 이에 해당했다.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는 약탈적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실제 해외 대학 입학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 입시 컨설턴트는 <한겨레>에 “(일단 게재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고 말했고, 고교생 시절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한 후보자의 조카 최아무개씨도 미국 아이비리그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강씨는 “해외 상위권 대학은 아시아권 학생들이 과도하게 스펙을 만들어 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대입에서 이득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 고교생들의 약탈적 학술지 게재율이 늘고 있는 이유와 관련해, 강씨는 “취업준비생들이 이런저런 자격증을 자꾸 따는 것처럼 (입시를) 준비하는 쪽에서는 늘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딸의 대필 의혹 논문이 약탈적 학술지에 게재된 것을 ‘오픈 액세스 저널’(인터넷상에서 누구나 비용 지불 없이 논문에 자유롭게 접근할(읽을) 수 있는 학술지)의 관행인 듯 해명한 한동훈 후보자에 대해서도 연구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한 후보자는 “고교 대상 에세이 대회 등을 통해 작성한 것을 모아 2021년 11월께 이후 한꺼번에 오픈 액세스 저널이 요구하는 형식에 맞게 각주, 폰트를 정리하여 업로드한 것”이라며 “대략 4∼5페이지 분량으로, 해당 오픈 엑세스 저널은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된다”고 해명한 바 있다.

새로운 학문 생산체제와 지식공유를 위한 학술단체와 연구자연대,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등 6개 단체는 8일 오후 공동성명을 내고 “오픈 액세스 저널은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학술지로서, (게재 전에) 전문가에 의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는 점은 여느 학술지와 전혀 다를 바 없다. (한 후보자의 해명처럼) 결코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되는 사이트가 아니다”라며 “이런 식으로 오픈 액세스 저널을 이해하는 것은 국내외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약탈적 학술지의 잘못된 행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후보자의 딸이 논문을 올린 오픈 액세스 저널 ‘에이비시 리서치 얼러트’(ABC Research Alert)’가 논문 투고 과정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들지 않고 비용도 50달러에 불과하다고 선전하는 등 전형적인 약탈적 학술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해명에 비춰볼 때 한 후보자는 나라의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완전히 부적격”이라고 덧붙였다. 성명에 참여한 한 교수는 <한겨레>에 “특권층이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을 위해 국제적인 학문 시스템을 악용하고 있다”며 “진심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성과가 오히려 평가를 못 받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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