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고등학생 자녀의 대입용 ‘스펙 쌓기’ 논란이 한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 후보자의 큰딸은 특히 자신이 참여한 논문 형식의 저작물을 국외 학술지에 나눠 실었는데, 이 학술지들은 돈만 지불하면 논문을 게재해주는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로 분류된 곳들이다. 그의 저작물이 게재된 3곳의 홈페이지를 보면, 논문 투고 비용으로 30~160달러를 청구하고 있다.
‘약탈적 학술지’라는 용어는 2010년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도서관학자인 제프리 빌이 최소한의 내부 검증 과정이나 동료 심사 없이 논문의 게재를 보장하는 일부 출판사와 저널들의 목록을 공개하면서 공론화됐다. ‘약탈적 학술지’는 학술 지식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오픈 액세스’ 운동의 변칙적 부산물이다. 학술 지식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표방하는 오픈 액세스가 활성화되면서 ‘학술지’를 표방한 웹사이트가 크게 늘었고, 이 가운데 논문 투고료에 따른 수익에만 집중하는 행태를 보이는 곳들이 생겨났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건전학술지원시스템에선 △동료 심사가 없거나 형식적 △공격적 마케팅 △편집부·심사자의 불투명한 정보 등을 주요 특징으로 꼽고 있다.
애초엔 논문 게재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 연구자들이 이들 학술지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약탈적’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동시에 이를 알면서도 ‘경력 부풀리기’를 위해 활용하는 학자들이 많다는 점도 학계의 골칫거리다.
한 후보자 쪽은 “학교 리서치 과제, 고교 대상 에세이 대회를 통해 작성한 것을 한꺼번에 ‘오픈 액세스 저널’이 요구하는 형식에 맞게 각주, 폰트를 정리하여 업로드한 것”이라며 “해당 ‘오픈 액세스 저널’은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된다”고 밝혔다. 오픈 액세스 학술지가 고등학생의 학교 과제를 올려놓는 공간 자체가 아닐뿐더러, 여전히 동료와 편집위원들의 까다로운 심사로 양질의 논문을 유지하려 애쓰는 이들을 모독하는 발언이다. 한 후보자는 9일 청문회에서 “실제로 입시에 사용된 사실이 전혀 없고 입시에 사용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약탈적 학술지’에 투고료를 내면서 논문 형식을 차용해 글을 실은 이유는 뭘까.
최혜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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