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가 지난 2015년 서울 중구 충무로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을 지냈던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이 서울시교육감 출마를 선언하고 11일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보수·중도 후보 단일화를 내걸고 있는 보수 진영에서는 이 이사장처럼 중량감 있는 후보들이 경쟁구도를 형성한 뒤 단일화에 성공하면 3선에 도전하는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과 맞서볼 만 하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반면 ‘공교육 생태계 파괴’ 논란을 낳았던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설계자였던 그의 과거 행보와 더불어 교육당국의 사학 규제를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 최근 보고서 내용까지 재조명되며, 그의 교육감 출마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 10일 “서울 교육의 향후 4년을 좌파 이념에 경도돼 교육현장을 내팽개친 이들에게 맡기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출사표를 던진 데 이어, 11일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보수교육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11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인지도가 있는 유력한 후보가 나와서 현재의 이전투구 양상을 교통정리해야 한다는 보수 교육계의 여망에 부응한 출마인 것 같다”며 출마를 반겼다.
보수 교육계에서는 이 이사장의 교육관에 대해 ‘경쟁과 자율성을 강조한다’고 평한다. 이 이사장은 한나라당 의원 시절 자사고 정책의 아이디어를 내고,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을 지내며 자사고 도입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고교 평준화 정책을 뒤집고 고교 다양화 정책을 밀어붙였으나, 중상류층의 우수한 학생들끼리 모아 명문대 입시에 편중된 획일적인 교육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진보교육감들이 일반고 강화를 내걸고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며 진통을 겪었다. 교육부가 2025년에나 자사고를 일괄 지정취소하겠다고 결정했지만, 법원이 지정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잇따라 자사고의 손을 들어주면서 제동이 걸렸다. 특히 ‘수월성 교육’을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자사고 폐지는 불가능해졌다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이사장이 보수 단일 후보로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되면, 영재고·특목고가 이미 많은 데다 광역단위 자사고까지 밀집돼 ‘일반고 황폐화’ 논란이 유독 심했던 서울에서 고교 서열화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정책을 펴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11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이사장이 차관일 때 자사고가 도입이 됐는데,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입시의 다양성만 키운 셈이 됐다. 기본적으로 평준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인사이기에, 현재 서울의 자사고 문제에 대해서도 그때와 같은 태도로 접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사고 정책을 디자인할 의도는 자사고를 시작으로 모든 공립학교를 자율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들자는 거였다”며 “그때 마이스터고도 같이 추진됐고, 자율형 공립고까지도 했었지만, 자유로운 공립은 형해화됐고 성공적이었던 마이스터고도 최근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년이 지난 지금 제가 주목하는 건 개별화 교육으로, 존재하는 자사고를 없앨 필요는 없지만, 제가 공략하려는 중심 과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굳이 10여년 전 자사고가 아니더라도 그의 교육 구상은 최근에도 한바탕 교육계를 뒤흔들었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싱크탱크 케이(K) 정책 플랫폼에서 ‘대학 혁신을 위한 정부개혁 방안’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는 대학을 교육부 산하에서 떼어내 총리실로 보내고,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학에 대한 시설 기준·임원 취임·재산 처분 등에 대한 보고 의무와 규제를 단계적으로 철폐하고, 대학이 임대 수입을 확대할 수 있게 사립대 유휴 교육용 시설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한겨레>에 “지금은 변화의 시기다. 관리의 시기에는 규제가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풀어주고 뭐든 만들어야 하는 시기”라며 “기본적인 공정과 책무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정부가 시키는 것만 하고 시키지 않은 건 못하는 현재의 교육계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세계 변화에 너무 뒤처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조직개편 논의 과정에서 그의 고등교육 이관 구상에 바탕을 둔 교육부 조직개편이 거론되자, 교육계에서는 보수·진보할 것 없이 우려와 반대 목소리가 쏟아졌다. 현실적으로 대학의 교육·연구 기능만 분리하는 게 어렵다는 평가와, 정무 기능이 중심인 총리실이 사립대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후 인수위가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이후로 조직개편을 미루면서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 전 장관 당시) 교육개혁은 취업률 중심과 규제 완화의 시장주의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학령인구 감소 등의 상황에서 교육당국이 공공성과 재정 확충의 의제를 갖고 적극적인 공교육 정책을 펴야 할 시기”라고 짚었다.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의 유·초·중등 공교육을 책임지는 자리다. 이 이사장은 교과부 장·차관으로서 화려한 교육 전문가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주로 고등교육에서 시장주의적인 교육관을 피력해온 이 이사장이 유·초·중등 공교육에 얼마나 고민이 깊을지도 회의적이라는 우려도 크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대학은 좀 자율에 맡기더라도 유·초·중등은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이사장의 시각은 기술적 접근과 에듀테크로 치우쳐 있어, 시민성과 공교육 부분이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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