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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소득별 복지 확대 지지 갈려…복지태도 ‘정상적 경로’

등록 2015-04-27 19:43수정 2015-04-28 14:07

[싱크탱크 광장] ‘한국 복지국가의 새로운 지평’ 세미나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국 복지국가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세미나가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청암홀에서 열리고 있다. 이창곤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와 양재진 연세대 교수,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으며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박원석 정의당 국회의원, 신규철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사무국장,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유범상 방송통신대 교수, 제갈현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국 복지국가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세미나가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청암홀에서 열리고 있다. 이창곤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와 양재진 연세대 교수,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으며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박원석 정의당 국회의원, 신규철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사무국장,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유범상 방송통신대 교수, 제갈현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세력은 복지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저소득층이 아니라 중간층과 고소득층이었다. 오랫동안 그랬다. 가난한 이들이 보수정당을 더 지지하면서 ‘계급 배반 투표’를 하는 것처럼 저소득층은 복지국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복지에 대한 소득계층별 여론 지형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저소득층이 복지국가에 대한 주요 지지세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는 서구 복지국가에서 나타난 계층별 복지태도와 유사한 것으로, 한국의 복지국가가 비로소 ‘정상화’ 과정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재원 확보’라는 프레임에 갇혀 위기를 맞고 있는 보편 복지도 바로 이런 토대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한귀영)와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회장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는 국민 복지태도의 변화를 살펴보고 답보 상태에 놓인 복지국가 운동의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취지로, 지난 20일 ‘한국 복지국가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공동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인은 어떤 복지국가를 원하는가? 2007·2013년 한국인 복지태도의 변화’를 발제한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2007년 계층별로 뚜렷한 차이가 없던 국민 복지태도가 2013년에는 저소득층-중간층-고소득층 순으로 복지 확대를 강하게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한 이런 결과는 복지태도에 대한 ‘계급적 윤곽’이 국내에서도 형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2007~2013년 복지태도 변화 조사
계층별 이해관계 변화 뚜렷
저소득층, 복지확대 지지 가장 높아

기초 노령연금·양육수당 등
복지 확대…복지국가 발전 토대 마련
무상급식 논쟁 거치며
복지 전반 사회적 논쟁도 확산

증세에 대한 긍정적 태도 증가
중간층, 증세 가장 소극적 불구
보편복지 지지철회 해석은 무리

■ 소득별 복지 지지 성향 갈려…복지태도 정상화 시작됐다

복지정책의 수혜 계층인 저소득층이 복지국가를 덜 지지하는 현상은 국제적으로도 예외적인 사례였다. 실제 혜택은 적고 재원 확보를 위한 세금 부담은 큰 고소득층일수록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경향은 독일, 스웨덴 같은 복지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현상이다. 반면에 복지 선진국의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복지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세금 부담은 적은데 복지 혜택은 집중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반대였다. 김영순 교수가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과 함께 2007년 한국복지패널조사에서 소득계층별 복지인식을 분석한 결과, 복지 확대에는 수혜계층인 저소득층보다 중간층과 고소득층이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복지태도 점수’(복지점수)를 계층별로 보면, 저소득층(72.3점)이 고소득층(72.5점)보다 더 낮았다. 김 교수는 “소외되고 가난한 계층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정치학자에게 난제이듯 사회정책학자들에게는 저소득층이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는 한국적인 현상이 늘 수수께끼였다”고 했다.

하지만 6년 뒤인 2013년 조사치에서는 계층별 복지태도가 확 달라졌다. 저소득층은 복지 확대를 적극 지지하고 고소득층은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 것이다. 2007년에 고소득층과 중간층에 견줘 복지점수가 더 낮았던 저소득층이 2013년에는 복지점수가 가장 높은 계층이 됐다. 2013년에는 고소득층의 복지점수가 가장 낮았다. 중간층의 점수는 말 그대로 중간에 위치했다. 김 교수는 “저소득층이 복지국가를 지지하고 고소득층이 반대하는 것은 자기 계층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는 한국의 복지태도가 복지 선진국 유형으로 정상화 과정을 밟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양재진 연세대 교수,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
왼쪽부터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양재진 연세대 교수,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
■ 복지체험 확대와 복지정치 활성화…복지국가 발전 토대 마련

사회경제적, 또는 계급적 이해에 맞게 복지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복지 전문가들은 복지태도의 이런 변화를 선진 복지국가의 경로로 해석한다. 아울러 다수의 저소득층이 복지 정책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재분배를 촉진하는 정치적 동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2007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이처럼 국민 복지태도가 정상적인 유형으로 바뀔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는 다양한 보편 복지 체험의 확대다. 2008년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됐고 2013년에는 5살 미만 유아에 대한 유치원·어린이집 무상보육과 더불어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 양육수당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이런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은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느끼는 혜택이 클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이 복지국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반면에 고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세금 부담만 커져 복지 지지 태도가 약화되었다. 하지만 중간층이 여전히 고소득층보다는 복지 확대에 더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저소득층과 중간층이 ‘복지연대’ 또는 ‘복지동맹’을 맺어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정치적 추동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이 유권자의 선택을 갈랐고,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복지정책 전반으로 쟁점이 확산된 것도 복지태도 정상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에 대한 논쟁부터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까지 크게 보면 모두 복지 이슈들이다. 국민들이 자신의 계층적 이해관계에 맞는 정책이나 공약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계층별 복지인식과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 중간층의 증세 거부감 역시 ‘정상적’

2007년부터 2013년까지의 복지 확대는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꿨다. 증세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5점 만점으로 환산(5점에 가까울수록 증세에 동의)한 지표를 보면, 2007년 전체 평균 3.01점에서 2013년 3.19점으로 높아졌다. 모든 계층에서 증세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진 것이다. 복지 논쟁이 활발해지면서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정 확충에 대해서도 국민 공감대가 커진 셈이다.

특이한 것은 증세에 대한 중간층의 태도다. 중간층은 복지 확대를 위한 추가 세부담에 동의하는 비율이 2007년 35.1%에서 2013년 42.7%로 크게 높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저소득층(41.5%, 48.3%)이나 고소득층(42.1%, 46.8%)에 견줘 두 시기 모두 동의 정도가 낮았다.

증세에 대한 중간층의 지지율이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정상적인 현상이다.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나라에선 중간층이 복지 수혜층이면서 동시에 재원 부담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중간층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은 합리적 계산의 결과다. 이를 보편복지에 대한 중간층의 원초적 저항이나 지지 철회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복지는 지지하면서도 증세에는 반대하는 경향이 강한 중간층을 복지동맹의 주축으로 세우려면 이들의 소득 기반을 강화해 세부담 능력을 높여주면 된다. 또한 중간층 가계의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 완화, 공정 과세에 대한 신뢰 확보가 관건이다.

진명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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