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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노인 일자리 수당·연금 2배 준다더니…담뱃값만 2배”

등록 2015-02-24 20:36수정 2015-02-25 11:38

박근혜 정부 2년 진단 ③ 복지·교육
78살 노인의 하소연
“약속 안 지키고 설명도 없어”

건보 재정 13조 흑자 냈어도
4대 질환 전액 지원 안 지키고
병원 영리사업은 길 터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벌써 2년이 됐잖아요. 대통령 선거 때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했으면 남은 3년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국민한테 설명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김병국(78)씨가 박근혜 정부 2년을 평가하는 열쇳말은 ‘지키지 않은 약속’이다. 차상위계층인 김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한테 기대가 컸다. 박 대통령의 노인 공약인 ‘노인일자리 수당 2배 인상’에 솔깃했다. 정부는 각 지역의 학교·병원·경로당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노인한테 1년에 최대 9개월간 월 20만원씩 수당을 주는데,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은 2014년부터 그 수당을 최대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껏 노인일자리 수당 인상 소식이 없다. 김씨는 24일 “박 대통령이 취임하면 기초연금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일자리 수당도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라 형편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담뱃값만 2배 가까이 올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초연금이 10만원 올랐어도 담뱃값 인상분을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 오찬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엘지(LG)그룹 회장, 박 대통령,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현 메세나협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손경식 씨제이(CJ)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 오찬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엘지(LG)그룹 회장, 박 대통령,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현 메세나협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손경식 씨제이(CJ)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지키지 않은 약속’은 박근혜 정부가 주요 성과로 꼽는 기초연금에도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모든 노인한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연금법을 통과시켜 이를 현실화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선 공약과 사뭇 달랐다. 시행 과정에서 ‘모든 노인’은 ‘소득 하위 70% 노인’으로, ‘월 20만원’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월 10만~20만원 차등지급’으로 각각 바뀌었다. ‘기초연금 사각지대 발생’도 문제로 불거졌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 노인한테 지급되는데, 가장 형편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사실상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정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소득’에 포함되는 탓에, 기초생활보장제에 따른 생계급여가 기초연금만큼 깎인다. ‘(기초수급 노인한테)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이상호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 사무국장은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해 노인을 위한 공적연금의 틀을 만든 것은 바람직했는데, 제도가 후퇴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소득 상위 30%는 물론 134만여명의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기초연금 대상자인 39만여명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짚었다.

박 대통령의 당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복지공약 가운데 대선 이후 수정·폐기된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암·심혈관·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같은 ‘4대 중증질환’에 국민건강보험(건강보험)을 100% 적용하겠다던 공약도 쪼그라들었다. 지난 3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을 보면,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박근혜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8년이 돼도 80% 중반대에 머물 전망이다. 병원이 진료비로 100만원을 청구하면 이 가운데 80만원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한다는 뜻이다. ‘임기 내 100% 보장’ 약속에 한참 못 미친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돈’이 아닌 ‘선택’의 문제다. 김종명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건강보험팀장은 “건강보험 흑자가 13조원이나 쌓여 있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 외에는 환자들한테 의미있게 다가올 보장성 확대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4대 중증질환 외의 다른 질환은 건강보험 보장 비율이 60%대 초반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한 건 병원비가 걱정돼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돌을 하루 앞둔 24일 ‘민주수호 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박 대통령 재임 중 일어난 주요 사건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돌을 하루 앞둔 24일 ‘민주수호 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박 대통령 재임 중 일어난 주요 사건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더불어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갈팡질팡 행보도 불신을 키운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지역가입자나 직장 은퇴자 등에 대한 보험료 부과 방식이 직장가입자와 달라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를 손보겠다며 2013년 7월 복지부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을 꾸려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연말정산 파동 등이 이어지자 지난달 말 하루아침에 이를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부과체계 개편으로 보험료가 오르는 고소득층 45만명의 반발을 의식한 선택이다. 정부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결국 당정 협의를 거쳐 재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빚어진 정책 혼선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국민연금 100% 지원한다더니…‘잊혀진 공약’

한달 임금 130만원 미만 200만명
‘고용보험 전액 국가부담’ 약속 외면
‘의료 상업화’는 졸속 밀어붙이다
부적격 중국계 병원 승인 망신도

아예 ‘잊혀진 약속’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보험 적용 확대’ 공약이 그 하나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직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및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가 100%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공약집을 보면, 그 대상은 한달 임금이 13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2013년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로, 200여만명에 이른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가입률은 40% 수준으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저소득 노동자가 내는 고용보험·국민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으로 10인 미만 사업장의 월급여 125만원 이하 노동자한테 사회보험료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주고 있으나 아직도 미가입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됐지만, 정부는 이 공약을 실천하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유독 브레이크 없는 질주로 사고 위험을 키우는 분야가 있다. ‘창조경제 활성화, 서비스 분야 투자 활성화’의 모토 아래 추진되는 의료 상업화다. 병원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자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지난해 6월부터 병원이 영리자법인(영리자회사)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보건의료단체와 야당 쪽이 병원의 영리 추구 행위를 법률(의료법)이 금지하는 만큼 위법하다고 반발하자, 정부는 성실공익법인에 한정해 자회사 설립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꼼수를 부렸다. 성실공익법인이라는 기본 요건을 채우지 못한 두 곳의 의료법인에 지난해 12월 서둘러 ‘조건부 자회사 설립’을 허용한 것이다. 복지부가 실적을 과시하려는 청와대나 기획재정부 등의 압력에 밀려 스스로 만든 가이드라인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제주도 외국 영리병원 승인 추진은, 정부가 졸속으로 의료 상업화를 몰아붙이다 망신을 당한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제주도에 첫 외국 영리병원을 신청한 중국계 산얼병원을 승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산얼병원에 투자하는 모기업의 대표가 사기 혐의로 중국 공안에 구속되는 등 투자자 자격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는 사실이 언론 취재로 알려지자 결국 지난해 9월에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최성진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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