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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재원이 문제인데… ‘서울시 모델’ 답 될까

등록 2015-02-09 19:38수정 2015-02-10 08:41

4살 어린이들이 9일 오전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동 구립 대림늘푸른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의 구연동화를 들으며 활짝 웃고 있다. 나이를 묻자 어린이들이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 보이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2004년 민간 어린이집으로 개원했으나 2012년 국공립으로 전환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4살 어린이들이 9일 오전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동 구립 대림늘푸른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의 구연동화를 들으며 활짝 웃고 있다. 나이를 묻자 어린이들이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 보이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2004년 민간 어린이집으로 개원했으나 2012년 국공립으로 전환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서울시 ‘비용 절감형 모델’ 주목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와 더불어 영유아를 건전하게 보육할 책임을 지며, 이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영유아보육법 제4조)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보육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개입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현재는 정부가 보육 서비스를 민간 어린이집에 일임한 채 비용 지원에만 집중해, 막상 가장 중요한 문제인 보육의 질 관리엔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의 취지인 공공 보육을 구현해낼 수 있는 ‘최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의 최대 걸림돌인 재원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으로 서울시의 비용절감형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동시에 단순히 국공립 어린이집 개수만 늘리는 차원을 넘어 지역 내 ‘보육 거점’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어린이집 현실은
무상보육 불구 민간어린이집 의지
‘보육업자’ 양산뿐 서비스질 하락
보육교사 저임금 대책도 없어

서울시는 어떻게
민-관연대·공공기관·공동주택 활용
서울시, 신축비용 1/3 비용으로
3년새 국공립 296곳 새로 확보

보육 공공성 강화 목소리
국공립 양적확대도 중요하지만
가족지원-지역사회 서비스 병행
‘육아지원 원스톱 센터’ 역할 주장도

■ 왜 국공립 어린이집인가?

0~5살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양육수당 또는 보육료를 지원하는 무상보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동학대, 부실한 먹거리, 과중한 특별활동비 등 부모들의 불안과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육서비스를 민간 어린이집에 전적으로 의지하다 보니, 교사 인건비와 보육 비용을 짜내 돈벌이에 나서는 ‘보육업자’들만 양산될 뿐 서비스의 질은 계속 낮아지는 모양새다. 하루 12시간 근무에 100만원대 초반의 임금을 받는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형편이 아동학대 등 보육서비스 질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데도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김종해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정부는 어린이집에도 시장 방식을 도입하면 서비스가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만 있을 뿐,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직접 생산·제공하거나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을 정책 목표로 두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더욱이 지난해 6월에는 현재 정부가 부모를 통해 시설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바우처’(아이사랑카드) 제도는 정부의 보조금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서, 관리감독의 근거마저 실종된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보육교사의 처우 등 운영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보다는 민간 어린이집 지원과 양육수당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공공형 어린이집 지원 예산은 2011년 80억원에서 2014년 385억원으로 5배 가까이 늘었고, 부모에게 직접 지원하는 양육수당은 2009년 324억원에서 2014년에는 1조2153억원으로 38.6배 늘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아이에 대한 돌봄 책임을 정부가 함께 나누지 않고 가족과 민간 시설로 넘기면서, 보육을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로 전환시켰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비용지원 중심의 정책을 넘어 국공립 어린이집을 30%대로 확충하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국공립 비중을 30%로 늘릴 경우, 수용 아동이 전체 아동의 절반 정도에 이르게 되어 민간의 시장지배력을 축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은 지방자치단체가 교사들의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어, 초과보육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호봉제와 수당으로 인한 비교적 높은 보수, 고용 안정 등으로 만족도가 높다. 교사들의 안정된 근무환경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보육으로 이어진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일본의 경우 국공립 시설이 전체 보육시설의 60%를 넘어서고, 종사자는 모두 공무원으로 채워져 있다. 질 좋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뿐더러 보육서비스의 질 역시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 2년간 296곳 확충…서울모델의 힘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재원이다. 국공립 어린이집 한 곳을 새로 짓는 데 평균 10억원(전국 기준) 안팎이 소요되기 때문에, 재원 문제에 가로막혀 논의는 번번이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계획인 이른바 ‘서울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는 어린이집을 새로 지으려면 부지매입비와 공사비 등으로 전국 평균보다 높은 22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서울시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 296곳을 새로 확보했다.

서울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비결은 ‘비용절감’이다. 서울시는 어린이집을 새로 짓는 대신 교회·절 등 종교단체 시설을 무상임대하거나 기부채납받는 ‘민-관 연대’와 주민센터·문화회관 등 공공기관에 의무설치하는 방안, 삼성래미안 등 주택업체와 양해각서를 맺어 아파트 내 어린이집을 민간 대신 국공립으로 설치하는 방안, 기존 민간어린이집 매입 등을 활용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평균 소요 비용은 7.5억원으로 신축 비용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특히 민-관 연대, 공공기관, 공동주택을 활용한 ‘비용절감형 모델’의 경우는 평균 소요 비용이 3.5억원에 불과했다. 지난 2년간 늘린 296곳 가운데 72%(212곳)가 비용절감형으로 확충됐다. 앞으로는 비용절감형 모델로 도시공원 내 유휴공간을 활용할 예정이다. 조현옥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무상보육이 도입되면서 보육의 공공화 요구는 높아지고 있지만 재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국공립 확대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걸고 최소 한 동에 국공립 어린이집 2곳을 설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2018년까지 매년 단계적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1000개를 추가 확충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시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은 12.2%인데, 1000개를 추가하게 되면 전체의 30%를 차지하게 된다. 수용 아동 수 역시 현재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24만명 가운데 6만5000명을 국공립 어린이집이 수용하고 있지만, 성공적으로 확충하게 되면 3만5000명이 추가로 국공립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고광현 서울시 보육담당관 국공립확충팀장은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 가운데 80%가 0~2살 영아인 만큼, 영아보육의 특화기능이 있는 가정어린이집을 중점적으로 국공립으로 전환하고 운영모델을 개발해 국공립으로서의 품질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국공립 시설을 지역내 보육 거점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양적으로 늘리는 방안도 중요하지만 보육의 공공성 강화라는 목표를 위한 위상 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순히 아이를 맡아주는 ‘탁아’ 기능을 넘어 가족지원과 지역사회 서비스 지원을 함께 하는 이른바 ‘육아지원 원스톱 센터’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그 지역 보육정책의 적극적인 파트너 구실을 해야 한다. 예컨대 일-가정 양립을 해당 지자체에서 적극 추진한다면, 아빠의 육아 참여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정책이 현장으로 전달되는 주요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지역사회의 주요 자원으로 삼아, 부모에 대한 지원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보육 참여를 적극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영국의 ‘슈어스타트’ 프로그램은 지역사회 육아지원 원스톱 센터로서, 보육은 물론 부모교육, 일자리 등 가족지원 기능, 각 센터끼리의 협조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아동과 부모에게 제공하고 있다. 백 교수는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 역시 보육정책의 한 부분이다. 무상보육이 문제니 수혜 계층을 줄여야 한다거나, 학대 예방 대책으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야 한다는 등 땜질 정책이 아닌, 보육 공공성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전반적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육정책은 결국 가족친화적인 노동시장과 함께 맞물려 추진되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과 직장 문화를 만들지 않는 이상, 어린이집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idun@hani.co.kr


학부모 “선생님들 처우 좋아지니…아이들도 잘 봐주시지 않을까요?”

국공립 전환 ‘대림늘푸른어린이집’
교사들 처우개선·고용안전 보장
입소 대기자 수 5배 정도 늘어

“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이 너무 좋다면서 ‘할머니 될 때까지 어린이집에 다니겠다’고 하네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구립 대림늘푸른어린이집 만 5살, 3살 반에 두 아이를 보내고 있는 김영희(42)씨는 큰아이를 올해 유치원에 보내려다, 아이의 ‘반대’에 부딪혀 어린이집에 남기기로 했다. 김씨는 “어린이집이 국공립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린이집에 대한 믿음이 한층 깊어졌다”며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여유 있고 꼼꼼하게 아이를 잘 돌봐주신다”며 신뢰를 나타냈다.

2004년 민간 어린이집으로 개원한 대림늘푸른어린이집은 2009년 현재의 이경민 원장이 인수한 뒤, 2010년 서울형 어린이집(일정한 기준을 갖춘 민간 어린이집에 대해 서울시가 재정 지원을 해주는 방식)을 거쳐 2012년 12월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했다. 교사들의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고 “서울형보다는 학부모들의 신뢰를 더 받는 국공립이 낫겠다”는 생각에 전환을 결정했다. 전환 뒤에도 운영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주변의 ‘호감도’는 급상승했다. “입소 대기자 수가 5배 정도 늘었어요. 보육교사를 채용할 때도 예전에는 1명 뽑을 때 2~3명 정도 지원했는데, 국공립 전환 이후엔 10명 넘게 지원해요. 덕분에 양질의 인력을 골라서 뽑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근처 대림아파트 주민들은 국공립 어린이집이 단지 근처에 생기면서 임대가 더 잘된다며 반긴다고 한다.

무엇보다 국공립 전환 뒤 가장 큰 변화는 교사들의 처우 개선이다. 민간 어린이집은 교사와 원장의 개별 협상을 통해 임금이 정해지기 때문에 100만원대 초반의 저임금에 교사들이 노출되어 있다. 서울형의 경우에는 기존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1호봉(151만원)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들은 그 이전의 교사 경력 모두를 인정받기 때문에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이와 별개로 처우개선비(14만5000원)와 근무환경개선비(15만~17만원), 담임수당 등을 추가로 받게 된다. 대림늘푸른어린이집에서 4년째 아이를 돌보고 있는 장유정(37) 교사는 “서울형일 때는 기존 민간 어린이집에서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1호봉이었는데, 국공립으로 전환되면서 6호봉으로 뛰어올랐다”며 “무엇보다 고용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고 초과 보육에 대한 부담이 없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영희씨는 “선생님들에 대한 처우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선 ‘너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시간 여러 아이를 돌보는 고된 일이니 선생님들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선생님들에게 여유가 있어야 아이도 잘 봐주시지 않겠나”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또한 교사들의 이직률이 낮아 특히 2살 미만의 영아들이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경민 원장은 “정부가 어린이집을 책임진다고 하니 부모들의 기대 수준도 높아지고 그에 걸맞은 보육을 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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