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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한국은 ‘아동노동’과 무관? 과연 그럴까

등록 2013-03-12 19:22수정 2013-03-12 20:59

‘아동권리와 경영 원칙’은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에서 아동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사진은 캄보디아의 작업장에서 부모를 도와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는 12살 소년. 카린 비트 노스터루드/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아동권리와 경영 원칙’은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에서 아동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사진은 캄보디아의 작업장에서 부모를 도와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는 12살 소년. 카린 비트 노스터루드/세이브더칠드런 제공
기업 ‘아동친화 경영’

축구공을 만들려면 오각형과 육각형의 가죽 32조각을 1620번 바느질해 꿰매야 한다. 세계 수제 축구공의 70%를 생산하는 파키스탄 펀자브 지방의 시알코트라는 지역은 한때 ‘축구공 꿰매는 아이들’로 유명했다. 12살도 안 된 아이들이 좁고 더러운 공장에서 하루에 14시간씩 바느질을 하고 일당 2000원을 받았다.

기업 경영과 어린이 권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앞서 말한 축구공 꿰매는 아이와 같은 아동노동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이런 일은 후진국에나 있는 것이라 한국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2011년 12월 국내 한 자동차업체 공장에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1명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현장실습을 나온 특성화고 실습생들은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주말 특근과 2교대 야간근무에 투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12월에 울산에서 침몰한 바지선에는 현장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학생들도 함께 탔다. 12명의 사망자 중 3명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들은 야간·휴일근로 허락도 없는 상태에서 어른들에게도 위험한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국내기업 125곳에 ‘원칙’ 적용해보니

아동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도 알고
아동에 직간접적 영향 주는
다양한 활동 하지만
여전히 기업과 아동은
밀접한 관계는 없다고 생각…

하지만 특성화고 학생들
몇개월씩 고된 현장실습
정례화되어가는 현실
새로운 관점서 접근 필요

18살 미만의 아동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이 인구의 절반에 이르기도 한다.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기업은 직간접으로 아동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아동은 미래의 근로자, 소비자로서 기업의 주요한 이해관계자인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2012년 1월 유엔 전문기구인 유엔글로벌콤팩트와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 유엔아동기금인 유니세프는 기업의 모든 활동과 영역에서 아동이 고려될 수 있는 ‘아동권리와 경영원칙’을 발표했다.

여기서 아동이란 대체로 만 18살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말한다. 원칙은 모두 10개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포괄적 방향으로, 기업이 ‘아동권리 존중의 책임을 다하고, 아동권리 지원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나머지 9개 원칙에서는 △생산활동이 이뤄지는 작업장 △물품을 판매하는 시장 △환경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 등 네 영역에서 아동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2월14~1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세계 각국의 기업과 아동 전문가들이 모여 ‘아동권리와 경영원칙’을 소개하고 이를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 워크숍을 열었다. 이렇게 기업경영에서 아동권리를 고려하는 세계 추세에 맞춰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아동권리와 경영원칙’을 국내 기업에 적용해 현황을 점검해 봤다. 점검 대상은 최근 3년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거나,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기업이었다. 모두 125곳이었고, 이들이 낸 공개 자료를 활용했다.

먼저 기업의 작업장과 관련된 아동권리에는 아동노동 철폐(원칙 2), 양육자에게 양질의 일자리 제공(원칙 3), 모든 활동과 시설에서 아동의 보호와 안전(원칙 4) 등이 있다. 특히 18살 미만의 아동은 아니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교육, 보호 역시 강조하고 있다. 또한 양육자들의 일자리의 질도 고려하여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까지 고려하고 있다.

조사 결과 여성 근로자의 수유시간에 유급을 인정한다거나, 자녀 등하교 시간에 맞추어 2시간씩 휴가를 낼 수 있는 기업도 있었다. 복귀한 육아휴직자에 대한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업무평가 때 다른 평가기준을 마련한 기업도 있었다.

임직원 자녀의 재능 개발과 진로 컨설팅 등의 행사를 지원하여 아동들이 다양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도 있었다. 이와 같은 지원은 성인 근로자에게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충분히 관심을 쏟도록 한다.

아동노동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이를 금지한다는 선언적 공표는 있으나 구체적 활동을 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내 기업들은 아동노동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특성화고 학생들이 기업에서 몇달씩 실습을 하는 것이 정례화되어가는 현실이어서, 아동노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동권리와 경영원칙’은 또 시장에서 기업의 제품이 아동에게 안전하고 평등하게 제공되며(원칙 5), 홍보 및 마케팅 과정에서 아동이 올바른 사고방식을 키워나갈 수 있는지(원칙 6)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제품의 안전성을 아동이 아닌 성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제품 광고와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동들의 자아존중감 형성을 방해하거나 왜곡된 신체상을 갖게 하는 마케팅 도구들이 주변에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환경 및 토지 등(원칙 7)은 아동이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 살아가야 할 곳이기에 아동권리와 밀접하다. 조사 대상인 125곳의 80%가 넘는 기업은 각자의 환경경영 체제를 수립하거나 의지를 외부에 표명하고,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사회공헌 프로그램 중 나무 심기, 올바른 에너지 사용법 교육 등으로 아동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기업들도 있었다.

‘아동권리와 경영원칙’은 또 위험지역에서의 아동의 안전 보장(원칙 8), 자연재해 등의 위급상황에서 아동 권리 존중(원칙 9), 지역사회에서의 아동권리 발전을 위한 기업 노력(원칙 10)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아동들에게 문화·예술·경제·과학 교육을 진행하거나, 난치병 환아 혹은 소외계층 아동들을 지원하는 활동이 많았다. 다양한 아동 관련 사회공헌 활동은 기업들이 아동이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 보여준다.

조사 대상 기업 125곳은 대체로 작업장에서 근로자 안전과 복지(원칙 3), 환경(원칙 7), 지역사회의 아동권리 향상(원칙 10)을 위한 사회공헌 등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해당 기업들은 이러한 행동들이 이해관계자와 기업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동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곧 아동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아동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여전히 기업과 아동은 밀접한 관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y.yang@hani.co.kr


세계인구 3분의 1, 아동도 기업의 이해관계자

기고

요즘 세이브더칠드런과 유니세프는 세계 각국에 공표된 ‘아동권리와 경영 원칙’을 국내에 적용하는 방법을 한겨레경제연구소와 함께 궁리중이다. 성인들의 일터인 기업에 아동권리라니,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경영과 아동권리는 멀리 있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만큼 중요한 사회적 주체가 있을까. 일터와 지역사회에서, 제품과 서비스, 마케팅과 광고를 통해 기업은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양육자이다. 아동도 소비자이자, 미래의 근로자,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다.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기부와 후원을 떠올린다. 기부와 후원을 통해 기업은 좋은 일들을 많이 해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 본연의 경영활동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아동권리와 경영 원칙’은 일터에서 제품,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기업의 경영활동에서 아동권리를 존중해 보자는 권유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한 글로벌 기업은 개발도상국의 하청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할 때 아동노동을 활용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독하고 더 나아가 하청기업이 있는 곳의 아동 교육을 위해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떤 여행 관련 기업은 관광지에서 발생하는 아동 성매매 방지를 위해 모든 하청·협력 업체와 아동 성매매를 고발하는 의무 조항이 포함된 계약을 맺는다. 이들은 또 직원과 고객을 교육하며, 아동 성매매 근절을 위해 일하는 지역의 단체와 협력한다.

차량의 뒷좌석에 앉는 아동의 특성에 맞춰 안전장치를 개발하는 자동차 회사도 있고, 이주근로자인 직원들이 고향에 두고 온 자녀와 통화할 수 있도록 ‘러브카드’를 만들어주는 기업도 있다. 어떤 비누 회사는 아이들이 놀다가 지저분해질지라도 놀 권리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모에게 설득하는 광고 캠페인을 한다. 사업 목적으로 토지를 취득할 때 기존 주민의 재정착 지원 과정에서 아동이 교육받을 권리를 잃지 않도록 애쓰는 기업도 있다. 충실한 납세로 정부가 아동 보호의 의무를 다하도록 지원하는 것까지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서 아동권리를 존중하고 지원하고 있다.

아동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기업 경영활동이 외면할 수 없으며 상생을 위해 협력하고 지원해야 할 소비자요 직원의 가족이며 미래의 고객이다. 2011년 ‘아동권리와 경영 원칙’ 작성을 위한 자문 과정에 참여한 파라과이의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이 인권과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스스로 깨닫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김희경/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가구제조 다국적기업…제품개발부터 ‘아동안전’ 검증
원료구매처·협력업체들에게도 ‘아동노동 금지’ 요구

스웨덴 ‘이케아’의 경영

기업 경영 전 과정에서 아동권리를 고려할 수 있을까? 모범적인 사례는 스웨덴 가구 업체인 이케아를 들 수 있다. 미국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의 ‘가치사슬’ 개념을 통해 이케아의 경영 전 과정에서 아동을 고려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이케아는 가구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 전세계에 원료 구매지와 협력업체를 두고 있는 전형적 다국적 제조업체다. 그러나 다른 기업과 달리 기업의 운영 및 지원의 모든 단계에서 아동의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우선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아동의 안전을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다. 아동과 관련된 제품들은 국제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확인하고 독립적 제3자의 검증을 거치고 있다. 특히 이케아는 임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에게까지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사항들을 교육하는 ‘이케아 어린이 학교’를 운영한다. 제품 개발은 물론이고 생산에서 아동을 이해하고 아동권리의 중요성을 고려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원료 구매에서도 아동권리가 우선시된다. 이케아는 2005년 비정부기구들과 함께 면직산업에서 환경보호와 아동노동 철폐 등을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 ‘더 나은 면화 계획’(BCI, Better Cotton Initiative) 설립에 참여했다. 면화산업에서 아동노동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 등지의 면화 재배 지역이 아동노동과 아동권리에 취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2015년까지 1만5000개 지역을 이케아 재단을 통해 지원할 예정이다.

생산과정에서는 협력업체와 함께 아동권리를 보호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000년에 공표된 이케아의 행동강령 ‘이케아 원칙’(IWAY)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아동노동 금지다. 협력업체에도 아동노동 금지를 상품 제조 방식이나 납품 시기 못지않게 강조한다. 이케아는 모니터링 팀을 통해 협력업체가 ‘이케아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 관리하고, 제3의 검증기관을 통해 모니터링 과정과 방법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검증기관은 독립적 위치에서 이 과정을 확인하고 특히 아동노동에 주목하여 검증한다. 매장에서는 고객과 함께 아동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이케아 매장의 1유로짜리 천 인형의 수익금은 아동전문 국제기구들에 전달한다. 또한 고객들이 태양열 램프를 구매할 때 이케아는 또다른 램프를 전기가 필요한 지역의 아동에게 기부한다.

이케아는 사회공헌뿐만이 아니라 주요 제품의 개발에서 판매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동을 고려하고 모든 단계에서 반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아동권리 존중과 발전은 물론이고 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시너지를 내고 있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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