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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싱크탱크 광장] 1주에 1번 두세시간 말동무…죽고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등록 2012-11-20 19:24수정 2012-11-20 21:04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린 ‘제1회 한겨레 지역복지 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린 ‘제1회 한겨레 지역복지 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제1회 ‘지역복지 대상’
지역복지 환경은 열악하다. 그럼에도 지역 단위에서 ‘작지만 강한’ 사업으로 주민들에게 우수한 평가를 받는 사업이 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이런 사업을 발굴해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전국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제1회 한겨레 지역복지 대상’을 마련했다. 19일 열린 시상식에서 경상남도의 ‘보호자 없는 병원사업’(광역부문)과 서울 노원구의 ‘자살 예방사업’(기초부문)이 대상을 차지했고, 충남 등 최우수상 6곳, 마포구 등 우수상 13곳 등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 21곳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가운데 대상을 받은 경남도와 노원구의 사업을 소개한다.

대상/ 서울 노원구 ‘자살 예방사업’

별 얘기도 아니었다
그저 편하게 부담 없이
살아가는 얘기였다
떡과 죽을 사오기도 하고
김치를 담가주기도 하고

자살률, 서초구의 두배였다
이틀에 한명꼴, 한해 180명…
구민 61만명중 6만명 우울증검사
자원봉사 500명 방문상담 2년
자살률, 서울시 7위서 21위로

파닥파닥, 파다닥~. 서울시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 13층. 베란다에서 서 있는 김미희(가명·74)씨의 치마가 바람에 날렸다. 12월의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깜깜한 밤, 달빛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떨어지는 몇 초의 순간이 지나면, 한없이 자유로워질 것 같다. 김씨는 베란다 난간을 움켜잡았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베란다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 밤이 새도록 그는 울었다.

지난해 겨울, 김씨는 몇 번씩 13층 베란다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빈곤, 고독, 병마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외로웠다. 분가한 아들은 먹고살기에 바빴다. 그에게 아무도 손을 건네주지 않았다. 당뇨, 고혈압, 허리디스크가 심해지면서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이 깊어만 갔다. 몇 해 전 숨을 거둔 남편이 떠올랐다.

자살을 고민하던 김씨에게 어느 날 통장이 집을 찾아와 설문지를 건네주었다. 우울증 테스트였다. 설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하영미(가명·33)라는 사람이었다. 하씨는 ‘노원구 생명지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시큰둥하게 오라고 했다. 하씨를 만나고 난 뒤, 김씨의 삶은 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씨는 김씨를 찾아와 두서너 시간 말동무를 해줬다. 별 얘기도 아니었다. 그저 편하게 부담 없이 살아가는 얘기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김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어떤 날은 하씨가 떡과 죽을 사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러면 김씨는 하씨에게 김치를 담가주기도 했다. 요즘 김씨는 동네 사람들한테서 “얼굴이 밝아지셨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식사도 꼬박꼬박 잘하고 있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노원구민체육센터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다. 김씨는 하씨를 보고 “딸같이 잘한다”고 얘기하고, 하씨는 김씨에게 “엄마같이 편하다”고 말한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사람의 마음을 되돌려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 지자체의 작지만 강한 복지 프로그램이었다. 한겨레 지역복지 대상을 수상한 서울 노원구의 ‘생명 존중 문화와 자살예방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불명예스럽게도 세계 1위다. 2009년 기준 자살률은 31.0명(인구 10만명당)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1.2명보다 3배가 많았다. 자살률은 지역 간에도 차이가 난다. 같은 기간 서울 노원구의 자살률은 29.3명이지만, 서울 서초구는 15명에 그쳤다. 두 배 차이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2010년 취임하자마자 노원경찰서 이용표 서장한테서 “노원구에서만 연간 180명이 자살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틀에 한명꼴로 자살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김 구청장은 서초구와 자살률 차이가 나는 이유를 “빈곤과 고독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임대주택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가장 많은 자치구로 경제위기에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서초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더 발달돼 있었다. 김 구청장은 “서초구 같은 부자 구처럼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따뜻한 이웃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서로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구청장은 자신의 임기 안에 노원구의 자살률을 서초구 수준으로 낮추기로 목표를 정했다.

곧바로 구청에 ‘생명존중전담팀’이 신설됐고,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가 전국 최초로 만들어졌다. 노원구는 구민 61만명 중 자살 시도자, 자살자 유가족, 홀몸 노인, 실업자, 학생 등 자살 가능성이 있는 15만명을 분류했다. 이 가운데 6만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검사를 했다. 각 동의 통장은 노원구에 살고 있는 모든 홀몸 노인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진단을 했다. 학생들은 교육청의 도움을 받고, 실업자는 고용안정센터에 우울증 검사를 의뢰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증이 의심되는 이들은 주의군과 관심군으로 분류됐다. 주의군은 노원정신보건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았다. 관심군은 종교계 인사로 꾸려진 500여명의 ‘노원구 생명지킴이’ 자원봉사자들이 주 단위로 방문해 상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2009년 노원구 자살자 수는 180명이었으나, 2011년에는 128명이었다. 50명 이상 줄어든 것이다. 노원구는 서울시 자살률 7위에서 21위로 내려왔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전국 지자체 공무원들 행사장 ‘청암홀’ 가득

수상식 표정

19일 오후 1시 ‘제1회 한겨레 지역복지 대상’ 시상식을 앞두고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 로비 앞에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대거 모였다. 시상식을 위해 지자체 단체장과 국장, 과장, 팀장, 실무자들이 삼삼오오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것이다. 시상식 직전에는 100여석에 이르는 청암홀이 꽉 찰 정도였다.

가장 먼저 양상우 한겨레신문사 사장이 축사를 했다. 양 사장은 “오늘 수상을 한 생활밀착형 복지사업의 성공 사례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롤모델이 되길 기대한다”며 “지역마다 이런 알차고 효율적인 사업들이 뿌리내린다면 온 국민의 삶의 질은 자연스레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용 나눔과 미래 이사장의 환영사가 뒤따랐다. 송 이사장은 “이번 시상식은 우리나라 지역복지 역량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서로 격려하는 의미 있는 자리”라며 “수상을 하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헌신적인 복지 활동을 통해 지역복지 역량을 증진시켜 나가는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은 경과보고에서 “지역 고유성을 살릴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1차 심사에서 최종 수상작의 2배수인 42곳을 뽑아 현장조사를 거쳐 최종 21곳을 선정했다”며 “지자체의 우수 복지사업을 알리는 한겨레 지역복지 대상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는 심사 총평을 통해 “이번 한겨레 지역복지 대상 심사는, 지역 특성과 여건을 잘 살피고 지역에서 필요한 복지 수요에 초점을 맞췄는가(기획성), 다른 지자체와 창의적으로 차별화한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했는가(참신성), 깜찍하고 참신한 발상이라 하더라도 성과를 갖고 있는가(효과성)를 기준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날 이재완 공주대 교수는 ‘지역복지의 현재와 미래’란 주제의 기조강연에서 “앞으로 지역복지는 새로운 공공적인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공공적 패러다임을 창조해야 한다”며 “그동안 지방정부가 지역복지를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지방정부와 함께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과 협의와 협력을 통해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와 광역으로 나눠 진행된 시상식에는 대상을 받은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비롯해 지자체 단체장과 국장, 과장, 팀장, 실무자들이 수상을 했다. 수상식 뒤에는 대상 및 최우수상을 받은 8곳 지자체의 수상 사업 발표회도 열려 열띤 관심을 모았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우리 병원에선 환자가족들 하루종일 간병 필요없어요

대상/ 경남 ‘보호자 없는 병원사업’

전문 간병사들이 3교대로
24시간 간병해줘
비용은 하루 1만~2만원
나머진 도에서 지원한다
대상은 65살 이상

도내 19개 병원서 운영
간병사 모두 276명
고용창출 효과도…
서울시도 ‘벤치마킹’
한해 48억 재정문제는 남은 숙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의료원의 한 병실, 여섯 분의 어르신이 입원해 있다. 이 병실의 풍경은 여느 병실과 다르다. 입원환자들을 간병하거나, 또는 침대 근처에서 간병을 위해 늘 대기하고 있는 환자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간병사 두 명이 이 병실의 환자 모두를 돌보고 있기에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병원 쪽은 이 병실에는 1급 요양보호사 자격의 전문 간병사들이 3교대로 낮에는 2명, 밤에는 1명씩 돌아가면서 간병을 한다고 설명했다.

간병사들은 환자들의 세수에서, 대소변 보조는 물론 검사나 물리치료를 위한 이동 보조에 이르기까지 흔히 가족들이 치르는 수고를 도맡는다. 가족들은 물론 간병사들에게 일정액의 간병비를 치른다. 하지만 하루에 1만~2만원이면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간병사 비용은 지역마다 편차가 있긴 하나 하루 7만~8만5천원에 이른다. 한 여성 환자는 “비용이 싸서 무엇보다 좋고, 또 생업에 바쁜 가족 중 누군가가 하루 종일 침대 곁에 지키거나 새우잠을 자야 하는 고통을 덜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경남도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이다. 이는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할 간병사의 인건비를 도가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경남도는 2010년 지방자치단체로서는 가장 앞서 이 사업을 도입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공약에서 비롯한 이 사업의 취지에 대해, 경남도는 “간병서비스 수요는 늘고 있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가족들의 고통이 커, 가족의 간병 걱정을 덜어주면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실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업은 경남도에선 산청군을 뺀 도의 전 시·군에 걸쳐 19개 병원, 69개 병실에서 운영되고 있다. 지원 대상은 주로 65살 이상의 건강보험 환자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이다. 환자 본인은 보험환자의 경우엔 1일 2만원, 기초생보자는 1일 1만원만 치르면 24시간 간병을 받을 수 있으며, 행려환자나 노숙자는 무료다. 나머지 간병비는 도가 지원한다. 다만 지원 기간은 환자 1인당 15일이며, 한번 더 연장할 수 있다.

경남도는 순수 도비 100%로 2012년에 이 사업을 위해 48억여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조현둘 경남도 보건행정과장은 “이 사업은 또한 276명의 간병사가 참여함으로써 고용창출의 효과도 동시에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도의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이 사업은 다른 지자체로도 확산되고 있다. 마산의료원 관계자는 “많은 지자체에서 이 사업의 도입 검토를 위해 의료원의 병실을 둘러보고 갔다”고 말했다. 충남 등 여러 지자체에서 사업을 도입해 실시중이며, 서울시도 서울의료원을 중심으로 이른 시일 안에 실시할 예정이다.

2010년 시범사업을 벌인 바 있는 보건복지부도 효과적인 사업 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모색중이다.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은 그렇다고 마냥 장밋빛만 있는 게 아니다. 재정문제에 따른 사업의 지속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즉 지자체의 취약한 재정구조로 인해 사업을 지속하기가 만만찮고, 지원 대상을 더 넓혀야 하는 것도 숙제다. 이와 함께 환자들의 장기입원 등 부작용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다. 이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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