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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싱크탱크 광장] “분단체제, 남한이 복지국가 되는데 걸림돌”

등록 2012-11-13 19:27수정 2012-11-14 08:51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 ‘분단과 복지: 시민참여형 평화복지국가 실현을 위하여’에서 평화담론과 복지담론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사회에서 ‘복지’와 ‘분단’의 상관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 ‘분단과 복지: 시민참여형 평화복지국가 실현을 위하여’에서 평화담론과 복지담론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사회에서 ‘복지’와 ‘분단’의 상관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참여사회연구소 국제심포지엄
‘시민참여형 평화복지국가’
‘평화’ 없이 ‘복지’가 가능한가? 18대 대선을 한달여 앞둔 상황에서 한반도의 복지와 평화의 관계를 묻는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등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연 ‘분단과 복지: 시민참여형 평화복지국가 실현을 위하여’는 평화담론 진영과 복지담론 진영이 국제심포지엄이라는 틀로 처음 만난 자리이다. 한겨레평화연구소가 후원한 이 학술대회는 그동안 복지국가 논쟁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왔지만, 중요한 변수인 한반도 분단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분단국이었던 독일과 스웨덴, 일본, 미국의 복지모델 사례 검토가 함께 이루어진 이번 심포지엄에 대해 참여사회연구소(소장 조흥식)는 “시민참여형 평화복지국가라는 비전 수립을 위한 첫 장”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주제: 한국-분단을 넘어 평화복지국가로
사회: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발표: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토론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장준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종합토론기외르기 스첼 독일 오스나브뤼크대 명예교수
스미자와 히로키 일본여대 가정경제학과 교수
스벤 호르트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웨슬리 위드마이어 호주 그리피스대 아시아연
구소 선임연구원

복지, 평화없이도 가능한가

“남한은 비정상 병영국가
만성적 우익독재 유지
노동세력 취약한데다
친북이데올로기가 복지동맹 저해”

“남한을 비정상국가
범주에 넣는 것은 지나쳐…
냉전체제 제약론은 이제는
100% 맞는 얘기 아냐” 반론도

“한국에서는 어떠한 복지국가 전략도 남북 평화체제를 전제하지 않는 한 동력을 갖기 어렵다.”

지난 5일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이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분단과 복지: 시민참여형 평화복지국가 실현을 위하여’에 발표자로 나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핵심 주장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남한은 △비정상국가, 즉 ‘병영국가’이면서 △만성적인 우익독재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노동세력이 취약한데다 △횡행하는 ‘친북 이데올로기’가 복지동맹을 저해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은 남한이 복지국가가 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데, 그 핵심에는 바로 분단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분단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어내는 것이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김 교수의 주장은 사실 남한의 평화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논리다. 통일·평화운동 진영에서는 지금까지 남북 분단체제를 복지뿐 아니라 남한의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로 꼽아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복지담론을 주도하는 그룹에는 어쩌면 낯선 얘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이들은 현재의 분단상황에서도 남한 사회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실제로 재정예산 증액 등 일정한 성과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분단 때문에 복지국가를 구현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미래에 대한 잘못된 전망이거나, 지금까지 이루어온 것에 대한 무시로 들릴 수 있을 법하다.

실제로 평화담론과 복지담론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이번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연명 중앙대 교수와 장준호 경인교대 교수는 김동춘 교수의 주장이 ‘과도한 환원론’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가 우선 “남한은 영토, 국민, 주권, 권력체제를 가진 정상국가인데도 이를 비정상국가라는 범주에 넣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김연명 교수도 “냉전체제의 복지국가 제약론은 이제는 100% 맞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 예로 국방비와 복지의 상관관계를 꼽았다. 김 교수는 “과도한 국방비가 사회복지에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는 1970~1980년대만 해도 맞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비는 32조원인데 복지비 지출은 125조원에 이르는 2011년이 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여러 지표를 볼 때 한국이 복지국가 초기단계”라며 “이는 남한 사회가 발전하면서 분단의 규정력이 약해지고 복지 강화를 위한 내부 논리가 강화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이기도 한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의 복지제도가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내면적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많은 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정착되었다고 믿었지만,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이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상황이 바뀌면 복지 성과들에 대해서도 기득권 세력의 반격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한반도 상황에서는 분단체제가 복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평화추구세력과 복지추구세력의 결합이 이런 반격을 예방하거나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포지엄 참가자들은 복지국가의 추진 주체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발표자인 김동춘 교수와 이남주 교수는 “시민사회가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는 복지의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세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역주민운동의 활성화와 시민참여로 보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 교수와 김연명 교수는 시민사회 역할론이 자칫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유럽적 복지국가도 19세기 이후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시작은 국가개입형이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도 “시민사회의 참여는 의미가 있지만, 이것이 국가의 복지 의무를 축소하는 쪽으로 이해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동춘 교수는 복지학 전문 교수들의 ‘복지환원론’ 문제제기에 대해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분단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환기시킨다는 의미에서 과도하게 강조한 측면이 있다”고 답변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재벌문제나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 등 분단체제가 우리 사회 곳곳에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평화담론과 복지담론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학자들은 이번 ‘첫 만남’에서 분단과 복지의 관계, 복지사회 건설의 주체 등에서 많은 이견을 보였다. 하지만 두 영역의 학자들의 만남과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와 ‘복지’가 모두 포기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가치라면 점에서, 이 둘의 관계 규명이 미래 한국 청사진 작성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남북통일 전제 안하면, 어떤 복지국가 전략도 동력 갖기 어려워”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김동춘 교수 발제문

남북한의 분단·전쟁체제는 남북 양쪽을 ‘비정상국가’, 즉 병영국가, 전시국가로 만들었으며 외부와의 전쟁을 위해 내부의 적과의 전쟁을 만성화했다.

남한에서 분단·전쟁체제는 반공주의, 즉 만성적인 우익독재체제를 의미한다. 한국의 재벌기업은 시장력만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조직노동 등 견제세력에 대한 효과적인 대리통제, 중소기업 등에 대한 약탈적 지배의 허용 등 국가의 자본편향적인 정책 덕분에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이후 냉전체제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이중적으로 규정력을 행사하게 됐다. 이 둘은 상호작용하면서 현상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김대중·노무현 두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중산층과 노동자층을 이반시켜 개발독재세력을 압도적 표차로 집권하게 만들었다. 사회연대의 기반은 허물어지게 되고, 따라서 복지를 위한 사회적 동력도 형성되기 어렵게 됐다.

기존의 복지국가 형성에서 볼 때, 사회 내부의 연대와 계급연대적 노동운동의 전통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반자본의 담론도 친북, ‘종북좌파’로 매도되는 현실이 존재한다. 따라서 소위 ‘복지동맹’ 형성이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분단체제에서 이탈하여 평화국가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한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전제라고 본다.

남북한 평화체제나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어떤 복지국가 전략도 동력을 갖기는 어렵다. 결국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 남북한의 경제적 상생 전략을 포함하지 않는 평화·복지국가의 구상은 이상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20세기 유럽식 국가개입형 복지국가라기보다는 시민참여형, 친환경적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복지의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세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역주민운동의 활성화와 시민참여로 보충해야 한다.

한국에서 평화·통일운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그것이 대중의 생활상 문제와 접점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통일문제의 경우 최근에는 자신의 현 경제수준이나 기득권을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일로 간주되기까지 한다.

이에 반해 복지 의제는 개인에게 매우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계급·사회적 연관성 없이 주로 정책 선택의 문제로 거론돼왔다. 그러나 실제 평화·복지 사안 모두 강한 계급·정치 연관성을 갖고 있다.

기존 정치세력이나 운동세력이 이 사안의 계급·정치 연관성을 좀더 강하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이 복지동맹·평화동맹을 강화시키는 길이다. 아직 이 복지동맹과 평화동맹이 자본의 힘에 맞서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동맹을 강화해야 한반도 문제가 자본 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1980년대까지 “모든 통일은 옳다”
1990년대들어 “통일은 부분 가치”
2000년대부터 “평화에 기여 해야”
2012년심포 “복지담론과 대화시작”

통일담론의 변화사

“모든 통일은 옳은가? 그렇다.”

1975년 의문사를 당한 ‘재야 대통령’ 장준하씨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에 한 말이다. 통일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이 말은 1980년대 말까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통일운동 담론에 투영돼왔다. 무엇보다 당시까지 남북통일은 이산가족 문제 등 혈연적인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추구해야 할 통일은 ‘모든 통일’은 ‘어떤 통일’로 바뀌었다. 특히 동서독의 통일 뒤 ‘통일비용’ 문제가 대두하면서 통일의 경제적 측면이 많이 논의됐다. 또 소련의 해체로 이념이 퇴색한 자리에 평화, 여성, 생태, 복지 등 다양한 가치를 가진 시민사회 영역이 확대되면서 통일도 ‘절대적 가치’에서 ‘부분적 가치’로 위상이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 통일담론 진영은 새롭게 성장한 시민적 가치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평화담론과 대화를 시작했다. 두 담론의 대화도 처음엔 매끄럽지 못했고, 때때로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진 크고 작은 대화를 통해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평화에 기여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며,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서 통일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조건”이라는 일정한 담론적 합의에 이르게 됐다.

그리고 이번 심포지엄에서 다시 평화·통일담론이 영역을 더욱 넓혀 복지담론과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평화·통일담론과 복지담론이 앞으로 10년 뒤 우리 사회에 어떤 합의와 전망을 던져줄지 기대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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