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21세기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사회보험체제 정립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논의를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백영환 민주노총 사회보험노조 중앙정책위원, 박민수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 박원석 무소속 의원, 김용익 민주당 의원,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문진영 서강대 교수,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 김선희 한국노총 사회정책국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제6회 한겨레사회정책포럼
‘사회보험체제 정립 방안’
‘사회보험체제 정립 방안’
4대 사회보험은 우리나라 복지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보험제도다. 하지만 4대 보험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낮은 가입률 등 사각지대와 빈약한 대국민 서비스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지난 12일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현직 국회의원과 시민사회단체 등을 초청해 보편적 복지시대에 맞는 사회보험의 체제 정립 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 해결방안과 사회보험의 서비스 확대와 기구개편 방향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사회보험 사각지대 크다
‘다음 중 4대 사회보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①국민연금 ②건강보험 ③고용보험 ④산재보험 ⑤생명보험. 입사 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제다. 답은 ⑤생명보험이다. 4대 보험은 우리나라의 복지를 이루는 근간이다. 하지만 비용부담 등의 이유로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부지기수다. 사회보험에 가입했다고 해도 질 높은 혜택이나 서비스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12일 토론회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찾는 자리였다.
■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 해결 방안은?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발제문 ‘21세기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사회보험체제 정립방안’에서 “현행 사회보험제도는 노동자의 대다수가 정규직이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져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낮은 가입률을 보이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의 말로는, 2012년 3월 현재 정규직의 4대 보험 가입률은 80% 안팎인 반면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50% 미만이다. 고임금 노동자의 4대 보험 가입률은 90%를 넘었지만, 5인 미만 기업 저임금 노동자의 가입률은 35% 안팎에 그쳤다. 사회보험은 불평등 완화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공적 이전소득(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무상으로 얻는 연금 등 수입)을 통한 ‘빈곤 개선율’은 전체 가구의 13.9%에 그쳤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49.1%)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문 교수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기 위해선 사회보험에 보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중소기업, 영세사업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보험료 할인이나 경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자영업자 가입률 낮아
정규직은 80% 보험 들었지만
비정규직은 50% 미만
고임금 노동자는 90% 넘었지만
‘5인 미만’ 노동자는 35% 안팎” 백영환 민주노총 사회보험노조 중앙정책위원은 “미가입 노동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20만원 안팎인데, 이들의 평균임금은 123만원에 그치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입을 권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인 사회보험 미가입자의 경우 사회안전망에 포함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선희 한국노총 사회정책국장은 “정부가 행정편의적인 차원에서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사람이 자발적으로 사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임의가입제를 도입했지만, 임의가입제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만을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부 쪽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을 6개월 이상 체납한 가구는 150만가구로, 가구 구성원을 3명으로 치면 450만명이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다”며 “인구 5000만명 중 10% 정도가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계층으로, 이는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치”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투입되기 때문에 사회보험에 보편주의를 도입하기 위해선 정부의 책임을 얼마만큼 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 사회보험의 서비스 확대와 기구개편 방향은? 문진영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제도가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그랜드 디자인 없이 그때그때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 도입돼 사회보험이 서로 연계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그 결과 주무부처가 나뉘어 있고 서비스도 개별 사안으로 취급돼, 국민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부과·징수 중심의 사회보험이 대국민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조직과 기구를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 교수가 내놓은 개편안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를 통합해 가칭 ‘사회정책기획원’으로 재편하는 게 뼈대다. 사회정책기획원은 4대 보험 적용과 징수를 담당하는 ‘사회보험공단(소득보장기구)’ 의료서비스와 돌봄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회서비스공단’으로 이원화돼 운영된다. 문진영 교수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분석할수록, 그 원인은 비정규직 증가와 같은 노동시장 문제에서 기인했다”며 “이 때문에 복지부와 노동부가 함께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통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두 부처가 통합이 되면 자연스럽게 공단 업무와 정보, 데이터가 효율적으로 일원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노동부 통합해
사회정책기획원 만들어
문제 풀어나가자”는 제안엔
“조직통합 옳다고 생각안해”
토론자들 치열한 논쟁 문 교수의 방안을 놓고 토론자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백영환 민주노총 위원은 “문 교수 안은 사회보험의 행정 업무와 서비스 업무를 연계시키자는 취지에서 비롯됐지만, 안 자체는 반노동조합적, 반시민적인 방안”이라며 “사회보험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준비와 노동조합의 참여가 절대적”이라고 반박했다. 대신 백 위원은 국회 안에 노동자·사회보험공단·정부·사용자단체·가입자단체 등이 함께하는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사각지대 해소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선희 한국노총 국장은 고용부와 복지부의 통합에는 반대했지만 장기적으로 사회보험 관련 조직을 통합하거나 사회보험청을 신설하는 등 사회서비스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사회보험 시스템 일원화를 통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받을 수 있는 파편화된 사회보험 서비스가 아니라, 국민들이 생애주기별로 적절하게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과장은 “사회보험 통합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부담이 궁극적으로 어디에 귀착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사회보험을 통합할 경우 국고에 부담이 될 수 있어 반드시 조직 통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새누리 안종범 의원 “소규모사업장 보험료 50% 지원”
민주당 김용익 의원 “일자리 확대안되면 해결 어렵다”
무소속 박원석 의원 “경제정책 등 큰 틀 변화가 해법”
정치권 ’3인3색’ 목소리
현역 국회의원들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해소와 대국민 서비스 확대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 3명은 사각지대 해소와 대국민 서비스 확대라는 총론에는 같은 목소리를 냈지만, 각론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사각지대 해소와 관련해 안종범 의원(새누리당)은 미시적인 해법을 내놓았다. 안 의원은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인 ‘두루누리 사회보험 지원 사업’도 사각지대 해소와 소득 파악의 불평등 문제를 푸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두루누리 사업은 10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의 저임금(월평균 보수 35만~125만원) 노동자가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을 수급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보험료를 최대 50%까지 지원해 주는 제도다. 안 의원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저소득 근로자, 소상공인을 사회보험 체제로 옮겨오기 위한 조그만 노력이지만 의미 있는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안 의원은 “지난해 12월29일 본회의를 통과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 법률안’이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복지 지원을 소득보장 중심에서 소득과 사회서비스의 혼합형으로 전환하는 것을 취지로 마련됐다.
김용익 의원(민주통합당)은 거시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김 의원은 “4대 보험이 고용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자리가 확대되지 않으면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라며 “고용구조에 있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정책, 산업구조에 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등 기업 간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정책은 경제민주화의 한 부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중층적인 대책도 제안했다. 그는 “저소득층·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에게는 현재 좀더 집중적인 보장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공적부조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적부조란 국민의 최저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이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박원석 의원(무소속)은 정책 당국의 과감한 조처를 제안했다. 박 의원은 “안 의원이 두루누리 지원 사업을 통해 조금씩 사회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 같은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좀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사각지대 해소는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구조적인 시스템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 이상 한두 가지 정책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며 “근본적인 해법은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정책, 복지정책의 큰 틀에서 변화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보험 서비스 확대와 기구개편 방향과 관련해 김용익 의원은 “사회보험과 일자리 문제가 워낙 밀접하게 돼 있어 복지와 노동 분야가 연계할 필요는 있지만, 그 대안으로 부처 통합방식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미래 복지국가의 핵심은 급격히 증가하는 보건의료·돌봄·교육서비스에 대한 인프라를 얼마나 잘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안종범 의원도 부처 간 통합에 대해 반대했다. 안 의원은 “각 부처와 공단 간의 하드웨어 통합보다 소프트웨어적인 융합이 더 중요하다”며 “부처 간 정보 공유를 통해 부처와 공단간의 벽을 허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부처와 공단의 정보를 공개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소득 파악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원석 의원 역시 기구개편보다 사회보험의 서비스 확대에 초점을 두었다. 박 의원은 “문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사회보험이 단순 부과·징수에서 서비스 강화를 위한 기구개편을 향후에는 고려해 볼 만하다”면서도 “다만 현재는 기능적인 기구개편 논의보다 사회보험 서비스의 확대에 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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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책기획원 만들어
문제 풀어나가자”는 제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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