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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싱크탱크 광장] “복지, 아무리 효율적으로 집행해도 예산 부족”

등록 2012-07-17 19:38

지난 2일(현지시각) 스웨덴 고틀란드에서 열린 ‘2012년 스톡홀름 포름’ 본행사에서 우리나라와 스웨덴의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스웨덴 고틀란드에서 열린 ‘2012년 스톡홀름 포름’ 본행사에서 우리나라와 스웨덴의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2012년 스톡홀름 포럼

‘삶의 질’ 지방정부 역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와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소장 최연혁)가 함께 마련한 ‘2012년 스톡홀름 포럼’의 또 하나의 주제는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이었다. 지난 2일(현지시각) 스웨덴 동쪽 섬 고틀란드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스웨덴과 한국의 지자체 관계자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비록 그 역할의 정도와 처지가 다르지만, 고민의 주제는 비슷했다. 바로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재원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두 나라 관계자들은 또한 지역복지를 강화하기 위해선 시민의 정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국민소통의 창구, 정치의 축제’로 떠오르고 있는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시민의 정치 관심과 참여를 위한 대안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스웨덴 지자체의 고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지역주민의 복지를 위해서 제각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2012년 스톡홀름 포럼’의 핵심 화두 중 하나였다. 스웨덴과 한국의 지자체는 주민을 위한 복지 서비스에서 그 역할이 상당히 다르다. 스웨덴의 지자체는 상당수의 세금을 직접 거둬들여 주민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우리나라 지자체는 대체로 중앙정부의 대리인 또는 단순 집행인 구실에 그친다. 이런 뚜렷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스웨덴과 국내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의 고민은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부족한 재원을 어떻게 더 마련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질 높은 복지 서비스를 주민들에게 제공할 것인가 등의 고민을 놓고 두 나라 관계자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얀손 고틀란드 도의회 의장
“잘사는 지자체보다
가난한 지자체에
더 많은 복지 수요 있지만
세원 낮아
복지 서비스에 질적 차이”

부족한 예산과 고령화, 스웨덴의 고민
스웨덴 지자체는 국내 지자체에 비해 재정자립도가 아주 높다. 하지만 스웨덴 지방정부 관계자들은 지자체간 격차와 세원 발굴의 어려움으로 복지 서비스가 떨어지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카롤라 군나르손 스웨덴 지방자치협회 제3부의장은 “스웨덴 전체 세금 수입에서 지자체가 거둬들이는 지방세 비율이 50%에 이르고,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지방세 비율은 20%에 이르며, 전체 고용자의 25%가 지방에서 창출된다”며 “지자체는 복지 전달 체계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기회와 책임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했다. 비에른 얀손 고틀란드 도의회 의장은 “부족한 지자체의 예산 탓에 어느 사업에 먼저 예산을 배분하느냐가 스웨덴 지자체의 고민으로, 대표적인 것이 노령화에 따른 노인 복지”라며 “중앙정부가 지시하는 노인 복지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아무리 효율적으로 집행하려 해도 예산은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덧붙여 얀손 의장은 “잘사는 지자체보다 실업률이 높은 가난한 지자체에 더 많은 복지 수요가 있지만, 가난한 지자체는 세원이 낮아, 보편적인 복지 서비스에 질적인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게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원칙은 있었다. 얀손 의장은 “스웨덴 시민 모두는 차별받지 않는 삶의 질을 누려야 하는 권리가 있고,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위해 보편적인 복지시스템을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편적 복지 부재와 고령화, 한국의 고민
포럼에 참가한 우리나라 지자체장들은 열악한 재정자립 환경 속에서 자체적인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노원구의 1년 예산은 4000억원인데 그중에 53%를 복지예산으로 쓰지만, 복지예산 중 95%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비율로 재정을 분담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집행된다”며 “전국 어디에서 살든 상관없이 국가가 모든 이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고, 지자체는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편적 복지를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지역사회에 특화된 복지 서비스를 지방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나소열 충남 서천군수는 “서천군의 고령화 인구가 27%에 이르고 있는데 많은 노인분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인 제가 당선이 됐다”며 “공약으로 내걸었던 노인 복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나 군수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분들은 젊었을 때 가장 고생한 계층이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들을 존엄하게 대해 드리는 것이 저의 책무였기 때문에 노인복지마을과 노인친화주택 등 노인 복지에 집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군나르손 지방자치협회 제3부의장
“스웨덴 지방선거 투표율 80%
주민 정치참여·관심 높아
이런 참여와 관심은
정치인이 시민들과 가까이하며
시민 목소리 듣게 만들었다”

한국형 복지모델의 실현 가능성은?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몇몇 지자체장은 ‘한국형 복지모델’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윤식 시흥시장은 “복지의 가치 중 하나가 공동체 정신인데 우리나라는 할아버지, 부모, 손자가 함께 사는 역사적 전통과 계·품앗이 등 상호부조의 공동체 정신을 갖고 있다”며 “이는 한국형 복지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자원”이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복지재단인 ‘1% 복지재단’을 시흥시는 설립해 개인과 기업의 소득 1%를 기부받아 복지재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돈과 물품의 기부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에서 도와줄 재능기부를 나누는 복지재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재원 부족을 겪는 지자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복지서비스를 공동체 전통을 기반으로 민간이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 군수는 “노인 복지와 관련해 서천군은 군 단위에는 노인복지관·노인친화주택 등을 만들고 마을 단위에는 노인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노인 복지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며 “여기에 자원봉사단체가 읍면마다 꾸려져 손길이 필요한 노인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복지 강화 위한 정치 참여가 중요
지역복지를 확대·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는 권고도 나왔다. 군나르손 부의장은 “스웨덴의 지방선거 투표 비율은 80%에 이르는 등 주민의 정치 참여와 관심이 높다”며 “이런 참여와 관심은 정치인이 시민들과 가까이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듣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2010년 6·2 지방선거 평균 투표율인 54.5%에 견주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는 “예를 들어 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쇼핑 갈 때 시민을 만나고, 시민은 나 같은 정치인에게 늘 무언가를 요구한다”며 “정치인은 시민의 뜻을 관철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듣고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말했다.

고틀란드/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스웨덴 행정체계

중앙-광역-기초정부 3단계
‘기초’가 복지사업 주로 담당

스웨덴의 공공행정 시스템은 중앙정부, 광역 지방정부, 기초 지방정부의 3단계로 구성돼 있다. 중앙정부는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의 기구로 다수당의 대표가 그 수장인 총리를 맡는다. 중앙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입안하고, 전국적 관점에서 복지 서비스 체계, 소득 보장, 일자리 창출 등을 책임진다. 광역정부는 한국의 도와 비슷한 범주로 란드스팅이라고 불린다. 동쪽 섬도시 고틀란드를 포함하면 전국에서 21개다. 란드스팅의 가장 큰 사업 분야는 보건 및 의료 서비스다. 광역단위에는 란드스팅 외에 시민에게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구로, 15명으로 구성된 도위원회가 있다. 의장은 정부가 임명한 도지사다. 도위원회는 자연·환경·문화 보호 사업과 인증서·면허증 발급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기초 지방정부는 콤문이라 불리는 290개 기초 자치단체로 이루어져 있다. ‘콤문’은 ‘공동체’ 또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아동·청소년·노인·여성·장애인 등 주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각종 복지 사업은 이 콤문에서 주로 수행한다. 공공행정체계에서 드러났듯 스웨덴에서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대부분의 보건·복지 서비스는 우리와 달리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형태인 것이다.


지난 3일(현지시각) 고틀란드 섬의 주도 비스뷔에서 열린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각) 고틀란드 섬의 주도 비스뷔에서 열린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매년 7월 첫째주 스웨덴 고틀란드섬…‘정치인 만나는 자리’ 북적

‘알메달렌 정치박람회’

1968년 시작…모든정당 참여
세미나·질의시간 등 종일 행사

지난 3일(현지시각) ‘발트해의 여왕’으로 불리는 고틀란드 섬의 주도 비스뷔. 도시의 3면을 둘러싼 성벽 안에는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풍스러운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골목길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7월 북구의 태양은 뜨거웠고, 땅에 있는 사람 역시 열기로 가득 찼다.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열기는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나왔다. 정치관련 세미나와 정치인과의 대화,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 학계 및 연구소의 주요 연구결과물 발표, 즉흥 길거리연주, 열린 음악회, 연극, 춤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칼 빌트 스웨덴 외교부 장관 부인이자 유럽연합(EU) 의원인 안나 마리아 코라차 빌트가 한 카페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시민들과 대화하는 광경도 눈에 띄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로베르트 닐손(52·공무원)은 “정치적인 지향이 다른 사람들이 격의 없이 자연스럽게 한곳에서 만나 자신들의 관심 분야를 얘기하고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여서 매년 고틀란드를 꼭 찾는다”며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인 소통과 화합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며 미소 지었다.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1968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자 차기 총리로 내정된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정치 간담회를 하면서 시작됐다. 팔메가 즉흥적으로 픽업트럭에 올라가 정치연설을 하자 참가자 500여명이 환호했고, 이 장면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는 의회에서 토론되고 결정돼 정치와 국민이 단절된 ‘폐쇄정치’가 주류를 이룰 때였다.

이렇게 시작된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1970년대에 1~2개 정당이 참여하며 확대되다가 1982년부터 스웨덴의 여러 정당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1991년부터는 모든 정당이 매년 참가하는 정치행사로 승격됐다. 1994년 이후부터는 정당뿐만이 아니라 노조 및 경영자단체, 시민단체, 언론, 학계 및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전국 정치세미나 등으로 확대·발전했다.

매년 7월 첫째 주에 열리며, 스웨덴 국회 의석을 가진 8개 정당이 하루씩 배정받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정치 관련 행사를 개최한다. 정당들은 정책설명회, 당수와의 만남, 정책세미나, 국민과의 질의시간, 정당주관 문화행사 등을 통해 국민과 하나가 되는 친숙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신문 및 방송이 주요 행사로 보도하며, 참가한 언론인만도 400명이 넘는다. 알메달렌 정치박람회가 정당의 중요한 소통통로로 부상되면서 국민들도 휴가기간 동안 자유로운 복장과 휴식 분위기에서 격의 없이 정치인을 만나는 자리로 거듭났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더욱 활기를 띤다. 9월 셋째 주 일요일에 치러지는 의회선거 2개월 전부터 선거운동으로 돌입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스웨덴에서 선거가 있었던 2006년에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당시 각국 총리가 사민당의 초청인사로 참가해 유럽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알메달렌 정치박람회 조직위원회를 주관하고 있는 오셰 스벤손 고틀란드 시장은 “긴장을 풀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게 대화의 정치”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는 것이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의 모토”라고 강조했다. 스벤손 시장은 “알메달렌 정치박람회가 맨 처음 시작했을 땐 정치적인 이슈만을 다루었으나 현재는 경제문제를 논하기 위해 경제학자와 관료들을 데리고 오는 등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열린 채널이 됐다”고 밝혔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만족할까? “당연하다. 참가한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만족했다”고 스벤손 시장은 말했다.

최연혁 쇠데르퇴른대 교수는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의 의미에 대해 “시민들의 알 권리, 정치지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나아가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의식에 기여하고 있다”며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스웨덴 민주주의 메카로 자리매김했고, 국제적으로 고틀란드 섬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이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행사기간 동안 페리, 호텔, 식당, 쇼핑몰 등 특수를 유발해 2010년 기준으로 약 90억크로나(한화 160억원)의 지역 수입 창출 효과를 냈다. 소통의 통로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고틀란드/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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