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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피해자를 대변한다는 것 : 그 많던 ‘할머니’는 다 어디로 가셨을까

등록 2020-05-27 05:01수정 2020-05-27 17:00

전문가 릴레이 기고
①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세월 자신이 감내했던 고통을 드러내며 시민사회와 정부에 던진 메시지는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할머니의 호소를 계기로 <한겨레>는 우리가 무엇을 성찰해야 하고, 남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가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지 모색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 조사 연구를 진행한 바 있고, 현재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첫번째 글을 보내왔다.

5월7일에 이어 5월25일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님의 인터뷰가 있었다. 첫 인터뷰에서 ‘이제 수요시위는 필요 없어. 윤미향은 국회에 가면 안 돼’와 같이 거친 말들이 튀어나왔다. 25일 인터뷰에서는 ‘30년의 정대협 운동이 피해자들을 이용했다. 우리 증언을 들은 적도 없다’ 등 여러 말씀을 하셨다. 위안부 증언과 피해자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로서 이런 말들을 접하고 보니, 할 말을 잃었다. 잘못 해석을 했다가는 할머니 증언을 무시했거나 곡해했다 할 것이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이 증언만 가지고는 그 의미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어느 티브이 보도의 멘트처럼, ‘우리 국민이 ‘위안부’ 문제와 피해자 증언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청취한 적이 있었나’ 싶다. 김학순님의 등장 이후 한국에서는 피해자 증언 수없이 이루어졌음에도 왜 하필 이 ‘증언’을 많은 시민들이 함께 듣게 되었는지 지금의 상황이 가슴 아프고 먹먹하다.

이용수님의 인터뷰를 크게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하 정대협)의 회계 불투명 의혹과 정의연의 운동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나눌 수 있다면, 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정의연에 대한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에게 주목되는 부분은 정의연이 ‘할머니들을 팔았다’ ‘할머니들을 이용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할머니들과만 활동했다’는 이용수님의 운동방식에 대한 발언 부분이다. 필자는 정의연과 함께 피해생존자를 돕는 등의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대협 산하에서 피해생존자의 증언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용수님의 이런 지적이 올바른 것인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 준비의 일환으로 피해자들을 만나 증언조사연구를 하였다. 이 증언연구를 수행했던 ‘증언팀’은 묻기에서 듣기로, 증언자가 기억하는 방식과 비중에 따른 증언 재현, 즉 피해자의 ‘기억의 지도’를 재현하기, 한숨과 웃음과 같은 표정과 표현들, 투사와 도치와 같은 구어적 텍스트 작성법 등 방법론적 원리들을 세워나갔다. 우리는 수차례 피해자를 만나면서 깊은 각인의 흔들리지 않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연구자들이 알고 있는 ‘위안부’상(像)에 걸맞은 증언만을 ‘위안부’ 증언이라고 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의 피해자’ 혹은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그녀들과 실제 우리가 만났던 그녀들이 풀어놓은 이야기의 구조와 초점은 많이 달랐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 가난과 배고픔, 귀국 후 한국전쟁과 삶을 헤쳐나갔던 이야기 등을 풀어갔고 ‘위안소’에서의 체험은 이 이야기들과 실타래처럼 엉켜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연구자의 질문이 중심이 아니라 증언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하되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구조를 놓치지 않는 질문과 청취를 통해 ‘증언자 중심주의’ 증언방법론을 만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녀들은 더 이상 무력하고 슬프기만 한 피해자가 아니라 그 많은 곤경과 고통을 뚫고 살아낸 ‘생존자’가 되었다. 증언팀은 할머니들을 그저 편한 ‘할머니’로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피해자, 생존자, 혹은 이름을 가진 어떤 개인, 거기다 할머니로도 가끔 불리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주체성의 존재로 재현하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피해자들은 다 똑같은 피해자일 수 없고, 개성을 가진 영혼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들 간에도 차이들이 많았다. 개개인의 차이와 미시적 개인사에 주목한다고 해서 ‘위안부’의 피해가 무엇인지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개개인의 피해 속에서 가부장제 식민주의의 큰 구조적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식과 질병, 고독과 소망의 디테일에 식민주의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는 체액처럼 스며들어 있었고, 분진(粉塵)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증언팀은 이 증언 방법론을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이해하였다.

정의연의 지원 행위를, ‘팔았다’고 표현…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시민단체 조직을 위해 활용되었다고
생각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아픈 표현이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내외를 오가며 전시 성폭력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왼쪽부터 고 김학순, 고 강덕경, 고 황금주, 고 안법순, 고 한옥선 할머니. <한겨레> 자료사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받아 적고 따르는 ‘피해자의 성역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만이 ‘위안부’ 피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화자이며, 그녀가 말하는 것이 마치 절대 진리인 것처럼 성화(聖化)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존재이다. 수많은 피해자들 중에서 살아남아 우리 앞에서 증언해주는 소중한 존재, 스러져간 많은 이들을 대신하여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녀들 역시 수많은 힘들 덕분에 살아온 존재들인 것이지 영웅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그녀들을 영웅화한다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로서만 그녀들을 대하는 태도의 이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화하는 것이다. 주체화한다고 해서 그녀의 취약함이나 불완전함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언어는 소중한 것이지만, 그 안의 망설임, 언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체험, 침묵, 불명확한 기억, 감정과 욕망의 지대 등 다양한 굴곡이 존재한다. 이 비언어적 지대, 정동(affect)의 지대를 언어의 행간에 표현한다는 것은 당연히 많은 고민과 책임을 지는 일이다. 무엇보다, 피해자 ‘그 인간’을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이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를 재현한다는 것이 가진 복합성과 책임 그리고 그 불완전성을 나타내지 않나 생각한다. 이용수님은 정의연의 지원 행위를, ‘팔았다’고 표현하였다.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시민단체를 위해 자신이 활용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쓴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아픈 표현이다.

연구자(혹은 활동가)가 피해자와 인간적인 관계를 수십년간 지속하고 그들을 보살핀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자 윤리적 숙제이다. 고백하자면, 증언팀의 연구자들은 증언자들과의 관계를 지속한 경우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증언연구가 끝나자 우리는 각자 살길이 바빠서 할머니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것이다. 우리가 증언을 들었던 증언자 한분은 너무 외롭고 살아갈 이유가 없어서 혼자 목숨을 끊으셨다. 이것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추구했다는 우리 연구팀의 실상이다. 필자는 정대협의 피해자 대우가 온전히 공정하고 따뜻하기만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 간에는 많은 의견과 개성의 차이들이 있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의 피해자들을, 그것도 수십년간 꾸준히 보살피고 인권운동가로 함께해온 정의연과 전국의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들에 대해 우리 사회와 국가는 깊은 경의를 표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수님은 정대협이 문제 해결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지만 문제 해결의 중심 주체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정부이다. 일본 정부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던 주체는 한국 정부이고, 개인(피해자)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것에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개개인이 일본 정부와 일본 법원에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생경한 외침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가. 시민단체 활동가, 법률가, 연구자들이 부족하나마 이들의 청구를 매개하는 대리자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단체 활동가들이 봇짐을 싸서 일본과 세계를 누빌 때, 허름한 숙소에서 새우잠을 잘 때, 대한민국의 외교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와 법·정책을 입안해야 할 국회는 어디에 있었나. 이용수님이 인터뷰에서 정의연이 아니라 우리 정부에, 무관심한 국회와 시민에게 ‘증언’을 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본다.

1993년에 출간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 1집에서부터 증언 6집(2004)까지
정대협은 ‘한국정신대연구소’와 함께 증언집을
공동 출간하거나 단독으로 출간하였다
요컨대 ‘강제로 끌려간’ 시리즈에 정대협이

출간 주체로 빠졌던 적이 없었다

참고로 증언의 연구는 정대협의 꾸준한 역할이었다. 1993년에 출간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 1집에서부터 증언 6집(2004)까지 정대협은 ‘한국정신대연구소’와 함께 증언집을 공동 출간하거나 단독으로 출간하였다. 요컨대 ‘강제로 끌려간’ 시리즈에 정대협이 출간 주체로 빠졌던 적이 없었다. 이용수님의 증언은 1993년 증언 1집에 실려 있다. 필자는 무조건 정의연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은 움직이지 않는 진실이다. 이 기회에 생존자 100여명의 증언을 담은 한국의 증언집들을 초중고,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하고 시민들도 읽어보시기를 강력히 권한다. 그 속에서 할머니들의 절규와 울림을 들을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웃음과 해탈도 맛볼 수도 있으리. 필자는 이용수님의 인터뷰를 들으며 많은 ‘할머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학순, 강덕경, 황금주, 문옥주, 석복순, 김복동, 최갑순, 한옥선, 안법순, 강일출, 길원옥과 같은 별 같은 이름들. 그 많던 할머니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 그동안 한국 정부에 신고한 한국의 피해자는 2019년 현재 240명이지만, 오늘의 생존자는 17명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살아서 모국에 귀환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8만에서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피해자들의 대다수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들은 타국에서 디아스포라가 되거나 혹은 유명을 달리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이 많은 피해자들의 부모와 형제, 자식, 이웃과 친구들도 피해의 간접체험, 그 전이와 대물림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는 조선을 넘어 아시아와 태평양 군도(群島)에 살았던 수많은 피해자들을 포함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렇게 동심원적이고 역사적으로 구축된 피해자성에 기초해야 하고, 피해자의 회복이란 지금 살아계신 개인들에게 위로금으로 결코 가능하지 않은, 진실규명과 법적 해결의 방향성 위에서만 구현될 수 있다. 2005년 유엔에서는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권리의 기본원칙’을 채택한 바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서 사법절차에서의 접근, 적절하고 효과적이고 신속한 회복조치, 정보의 접근, 원상회복, 배상, 재활조치, 만족, 재발방지 보증 등을 규정하고 있고, 여러 하위 요소들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에서 이런 국제기준과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것으로 합의하고야 말았다. 그런데도 이용수님의 인터뷰 이후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 관계자들은 정의연에 합의 내용을 피해자에게 전달하지 않은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다.

어쩌면 우리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 국회, 시민단체, 그리고 우리 같은 연구자와 시민들 모두가 식민주의 유산을 법적으로 정신적으로 청산하지 못한 ‘포스트식민’ 사회 속의 ‘거류자들’인가 보다. 시민단체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겸허하고 진지하게 노력해야 하지 않나. 그것이 이 이름 없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응답하는 일이 아닐까.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들이 편하게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 자신의 이 뜻 모를 슬픔과 서러움을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시민단체에 원망과 질책을 돌리는 이용수님의 손가락 뒤에 가린 더 큰 정의와 진실의 달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하자. 그것이 이용수님과 정의연, ‘그 많던 할머니들’과 이 포스트식민 사회를 모두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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