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릴레이 기고
①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①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세월 자신이 감내했던 고통을 드러내며 시민사회와 정부에 던진 메시지는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할머니의 호소를 계기로 <한겨레>는 우리가 무엇을 성찰해야 하고, 남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가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지 모색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 조사 연구를 진행한 바 있고, 현재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첫번째 글을 보내왔다.
5월7일에 이어 5월25일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님의 인터뷰가 있었다. 첫 인터뷰에서 ‘이제 수요시위는 필요 없어. 윤미향은 국회에 가면 안 돼’와 같이 거친 말들이 튀어나왔다. 25일 인터뷰에서는 ‘30년의 정대협 운동이 피해자들을 이용했다. 우리 증언을 들은 적도 없다’ 등 여러 말씀을 하셨다. 위안부 증언과 피해자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로서 이런 말들을 접하고 보니, 할 말을 잃었다. 잘못 해석을 했다가는 할머니 증언을 무시했거나 곡해했다 할 것이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이 증언만 가지고는 그 의미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어느 티브이 보도의 멘트처럼, ‘우리 국민이 ‘위안부’ 문제와 피해자 증언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청취한 적이 있었나’ 싶다. 김학순님의 등장 이후 한국에서는 피해자 증언 수없이 이루어졌음에도 왜 하필 이 ‘증언’을 많은 시민들이 함께 듣게 되었는지 지금의 상황이 가슴 아프고 먹먹하다.
이용수님의 인터뷰를 크게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하 정대협)의 회계 불투명 의혹과 정의연의 운동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나눌 수 있다면, 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정의연에 대한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에게 주목되는 부분은 정의연이 ‘할머니들을 팔았다’ ‘할머니들을 이용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할머니들과만 활동했다’는 이용수님의 운동방식에 대한 발언 부분이다. 필자는 정의연과 함께 피해생존자를 돕는 등의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대협 산하에서 피해생존자의 증언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용수님의 이런 지적이 올바른 것인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 준비의 일환으로 피해자들을 만나 증언조사연구를 하였다. 이 증언연구를 수행했던 ‘증언팀’은 묻기에서 듣기로, 증언자가 기억하는 방식과 비중에 따른 증언 재현, 즉 피해자의 ‘기억의 지도’를 재현하기, 한숨과 웃음과 같은 표정과 표현들, 투사와 도치와 같은 구어적 텍스트 작성법 등 방법론적 원리들을 세워나갔다. 우리는 수차례 피해자를 만나면서 깊은 각인의 흔들리지 않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연구자들이 알고 있는 ‘위안부’상(像)에 걸맞은 증언만을 ‘위안부’ 증언이라고 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의 피해자’ 혹은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그녀들과 실제 우리가 만났던 그녀들이 풀어놓은 이야기의 구조와 초점은 많이 달랐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 가난과 배고픔, 귀국 후 한국전쟁과 삶을 헤쳐나갔던 이야기 등을 풀어갔고 ‘위안소’에서의 체험은 이 이야기들과 실타래처럼 엉켜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연구자의 질문이 중심이 아니라 증언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하되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구조를 놓치지 않는 질문과 청취를 통해 ‘증언자 중심주의’ 증언방법론을 만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녀들은 더 이상 무력하고 슬프기만 한 피해자가 아니라 그 많은 곤경과 고통을 뚫고 살아낸 ‘생존자’가 되었다. 증언팀은 할머니들을 그저 편한 ‘할머니’로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피해자, 생존자, 혹은 이름을 가진 어떤 개인, 거기다 할머니로도 가끔 불리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주체성의 존재로 재현하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피해자들은 다 똑같은 피해자일 수 없고, 개성을 가진 영혼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들 간에도 차이들이 많았다. 개개인의 차이와 미시적 개인사에 주목한다고 해서 ‘위안부’의 피해가 무엇인지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개개인의 피해 속에서 가부장제 식민주의의 큰 구조적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식과 질병, 고독과 소망의 디테일에 식민주의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는 체액처럼 스며들어 있었고, 분진(粉塵)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증언팀은 이 증언 방법론을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이해하였다.
정의연의 지원 행위를, ‘팔았다’고 표현…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시민단체 조직을 위해 활용되었다고
생각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아픈 표현이다
증언 1집에서부터 증언 6집(2004)까지
정대협은 ‘한국정신대연구소’와 함께 증언집을
공동 출간하거나 단독으로 출간하였다
요컨대 ‘강제로 끌려간’ 시리즈에 정대협이 출간 주체로 빠졌던 적이 없었다 참고로 증언의 연구는 정대협의 꾸준한 역할이었다. 1993년에 출간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 1집에서부터 증언 6집(2004)까지 정대협은 ‘한국정신대연구소’와 함께 증언집을 공동 출간하거나 단독으로 출간하였다. 요컨대 ‘강제로 끌려간’ 시리즈에 정대협이 출간 주체로 빠졌던 적이 없었다. 이용수님의 증언은 1993년 증언 1집에 실려 있다. 필자는 무조건 정의연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은 움직이지 않는 진실이다. 이 기회에 생존자 100여명의 증언을 담은 한국의 증언집들을 초중고,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하고 시민들도 읽어보시기를 강력히 권한다. 그 속에서 할머니들의 절규와 울림을 들을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웃음과 해탈도 맛볼 수도 있으리. 필자는 이용수님의 인터뷰를 들으며 많은 ‘할머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학순, 강덕경, 황금주, 문옥주, 석복순, 김복동, 최갑순, 한옥선, 안법순, 강일출, 길원옥과 같은 별 같은 이름들. 그 많던 할머니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 그동안 한국 정부에 신고한 한국의 피해자는 2019년 현재 240명이지만, 오늘의 생존자는 17명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살아서 모국에 귀환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8만에서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피해자들의 대다수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들은 타국에서 디아스포라가 되거나 혹은 유명을 달리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이 많은 피해자들의 부모와 형제, 자식, 이웃과 친구들도 피해의 간접체험, 그 전이와 대물림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는 조선을 넘어 아시아와 태평양 군도(群島)에 살았던 수많은 피해자들을 포함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렇게 동심원적이고 역사적으로 구축된 피해자성에 기초해야 하고, 피해자의 회복이란 지금 살아계신 개인들에게 위로금으로 결코 가능하지 않은, 진실규명과 법적 해결의 방향성 위에서만 구현될 수 있다. 2005년 유엔에서는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권리의 기본원칙’을 채택한 바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서 사법절차에서의 접근, 적절하고 효과적이고 신속한 회복조치, 정보의 접근, 원상회복, 배상, 재활조치, 만족, 재발방지 보증 등을 규정하고 있고, 여러 하위 요소들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에서 이런 국제기준과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것으로 합의하고야 말았다. 그런데도 이용수님의 인터뷰 이후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 관계자들은 정의연에 합의 내용을 피해자에게 전달하지 않은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다. 어쩌면 우리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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