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깡패다.
안녕하세요. 아직 세살짜리 회사인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의 고나무라고 합니다.
전 <한겨레> 기자였고 2015년엔 토요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겨레> 지령 1만호가 지난 18일 발행되었습니다. 관련 기획 가운데 하나로 온라인과 지면에 동시에 공개된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제1화 바보 노무현’ 편(
남들이 뭐라건, 노무현의 길)을 보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2일 오전 8시 현재 페이스북에 2241건 공유되었으니 이 칼럼을 읽고 계신 몇 분은 그 기획을 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설명드리려 합니다.
“나이가 깡패다”라는 말은 과거 꼰대 문화의 상징입니다. 요즘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번에 “나잇값 하라”는 지청구를 듣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나잇값 하는 어른이 진짜로 있다면 어떨까요?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언론의 나이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나이는 속성으로 먹을 수 없습니다. 나잇값 하는 나이 먹은 사람은 젊은이들과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경험과 기억입니다. 서른세살이 된 <한겨레>가 나이 어린 미디어 스타트업과 다른 점은 그동안 쌓아둔 사진과 기사 아카이브입니다.
2017년 말 한겨레신문사 자회사로 설립된 팩트스토리의 주 사업분야는 전문직, 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제작입니다. 요즘 웹소설 업계에서는 ‘전문직물’이라 일컫죠. 한편 팩트스토리는 다양한 실화 관련 부가 사업도 고민해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온라인 실화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고민입니다.
저널리즘은 백수십년간 실화 콘텐츠의 대표 장르로 군림해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웹소설·웹툰 작가, 영화·드라마 작가들이 실제 인물과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스토리를 창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스토리텔러들이 활용할 만한 실화 데이터는 사실상 언론 보도와 신뢰하기 어려운 인터넷 글들뿐입니다. 저는 이들 창작자들이 활용할 실화 데이터베이스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이 기성 언론의 방대한 사진과 기사 아카이브 활용 방안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겨레>가 33년간 쌓아온 사진과 기사 아카이브의 부가가치를 높일 방안을 생각했죠.
국내외 다른 언론의 아카이브 콘텐츠도 팩트스토리 기획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내년에 창간 200년이 되는 영국 신문 <가디언>은 시의성 있는 과거 지면을 간단한 설명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의 아카이브 콘텐츠 사이트에 들어가면 19세기의 런던 팬데믹에 대한 100년 전 <가디언>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패스트 텐스’(Past Tense·과거시제)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과거 사진을 사건별로 보여주는 아카이브 콘텐츠 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 중에서는 최근 <한국방송>의 ‘모던코리아-KBS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회자되었죠.
팩트스토리는 다른 언론의 아카이브 프로젝트와 무엇을 차별화할지 고민했습니다. 첫째, 지면에 소개된 적이 없는 비컷 사진 필름 발굴입니다. 둘째, 젊은 온라인 독자들에게 과거를 잘 설명해줄 해설자입니다. 일종의 문화유산해설사랄까요? 1회 해설자인 만화가 김태권 작가의 해설이 있었기에 아카이브가 더 흥미로워진 것처럼요.
팩트스토리가 이런 내용과 추진계획을 담은 제안서를 한겨레신문사에 제출했고, 편집국장 등은 흔쾌히 아카이브 프로젝트 추진을 결정했습니다. <한겨레>와 팩트스토리는 1회 주제를 여러차례 논의한 끝에 시의성과 상징성을 모두 고려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다른 언론이 관심 두지 않을 때 <한겨레>가 앞서서 보도하여 아카이브에 기록이 많은 인물을 생각했습니다. 마침 5월23일이 서거일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1회 정치인으로 선정한 배경입니다.
나이가 깡패는 아니지만, 나잇값 하는 어른은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올드 미디어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카이브에서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이 결코 올드 미디어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나이는 속성으로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극장> 시즌1은 2020년 5월18일부터 매주 월요일 모두 12회 나갑니다. 지금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사건과 인물들을 선정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 dokko@factsto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