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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민주노총 분열로 ‘코로나 노사정 합의’ 끝내 좌초

등록 2020-07-01 22:29수정 2020-07-02 02:44

강경파 반발에 노사정 합의 불발
“해고대책 부실” 문제 삼았지만
‘정파 갈등의 연장선’ 시각도
취약노동자 지원 논의 통로 막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 마련된 노사정 대표자협약식에 협약서가 놓여있다. 이날 민주노총이 참석을 취소하며 협약식 또한 취소됐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 마련된 노사정 대표자협약식에 협약서가 놓여있다. 이날 민주노총이 참석을 취소하며 협약식 또한 취소됐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2년 만에 민주노총까지 참여한 사회적 대화로 기대를 모았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민주노총 내 강경파의 반발로 끝내 불발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도입이 포함된 노사정 합의안을 수용했던 ‘상처’로 20년 넘게 장외투쟁을 이어온 민주노총은 이번에도 조직 내부의 분열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라는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아 노동 취약계층 지원 등을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가 좌초됐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1일 오전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등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들의 협약식을 앞두고,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직 내 승인 절차로 임시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소집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안에 반대해온 강경파 조합원들은 “노사정 야합을 즉각 폐기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오전 9시로 예정된 중집을 앞두고 조합원 수십명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인 데 이어, 회의장 안에선 시작 10여분 만에 고성이 오가는 등 김명환 위원장에게 협약식 불참을 종용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회의장 바깥에서도 100여명이 김 위원장과 이번 합의에 대한 비판 발언을 이어가며, 사실상 김 위원장의 협약식 참석을 막기 위해 대기했다. 10시30분 협약식을 앞두고, 김 위원장 및 대리인(부위원장)의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은 국무총리실은 행사 15분 전 언론에 협약식 취소를 발표했다.

이번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노사정 잠정합의안에 ‘해고 금지’ 같은 노동자 보호 대책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정부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항공·해운업종 등에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에 ‘90% 고용유지’ 등의 조건을 내걸지 않는 등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을 실질적인 대책이 빠져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휴업수당 삭감 인정 △노동계의 근로시간 단축·휴업 협력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 차등적용 가능성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한 이행 점검 조항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에 대한 민주노총 내 반대 목소리가 합의 내용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기존 정파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부터 노사정 대화를 통해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며 거부감을 보여온 강경파가 이날 중집에서 김 위원장의 협약식 참석을 막는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에서 정부와의 교섭(대화)에 열려 있는 ‘국민파’로 분류된다. ‘노사정 대화 복원’은 2017년 12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김 위원장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 취임 약 1년여 뒤인 지난해 1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도 불참도 결정하지 못했다. 한 노동계 인사는 “김 위원장이 당선될 때만 하더라도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노동계의 기대치가 높아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공약한 김 위원장에게 공감한 대의원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에 대한 이런 기대감은 불신으로 바뀌었다”며 “올 연말 김명환 위원장 임기가 끝나는데다 그동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볼 때, 조직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2일 다시 중집을 열어, 잠정합의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날 김 위원장이 강경파에 의해 5시간 가까이 사실상 감금 상태로 있다가 스트레스로 병원에 이송되는 등 ‘소동’이 벌어진 상황을 감안하면 최종적인 노사정 합의 성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 민주노총 지도부는 향후 ‘거취’를 거론하면서까지 합의 도출에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성사시킬 수 있는 조직 장악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애초 이번 사회적 대화는 코로나19로 고용위기에 처한,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라는 취지에 따라 민주노총의 요구로 마련된 것이었다.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이 핵심 의제로 논의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 때문에 노동계 안팎에선 조합원 규모에서 1노총으로 올라선 민주노총이 앞으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힘써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은 상황인데, 이번 사태로 자칫 발언권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민주노총이 취약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등 사회적 대화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인데, 그런 통로를 스스로 막아버린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선담은 김양진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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