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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할망 해녀들의 드센 물질 쓸어내리는 고기국수 한그릇

등록 2020-03-02 05:01수정 2020-03-03 15:22

[2020 노동자의 밥상] ⑭제주 해녀들의 ‘고기국수’
“그저 오몽하게 손 놀림 됨수다”
하례리서 태어나 물질만 43년째
‘제일 짱짱한’ 상군 해녀 김복희씨
‘물때’ 만나면 4~5시간씩 자맥질
찬 파도에 종일 맨몸으로 부딪혀
막바지에는 견딜 수 없는 허기가
‘베지근하게’ 우려낸 고기국수 오찬
‘뭍에서 난’ 제주 백돼지 앞다릿살
뭉근히 끓인 뒤 밥상 둘러앉으면
바람·짠물에 시달린 온몸에 생기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들이 20일 오후 하례리 해변에서 소라와 홍해삼이 든 망사리와 테왁을 들고 나오고 있다.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들이 20일 오후 하례리 해변에서 소라와 홍해삼이 든 망사리와 테왁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게 메께라(제주말로 놀랐을 때 쓰는 감탄사)!”

김복희(58)가 잠수복 허리춤에 연철(납덩이)을 차려다 놀란 듯 소리쳤다. 연철을 꿰어놓은 고무가 찢어져 있었다. 지난 설 이후 한달 가까이 물질을 쉬다 길을 나선 참이라 장비가 삭은 모양이다. “날이 계속 우쳐서 물질 안 간생이우니 간만에 감서(날이 계속 좋지 않아서 물질을 안 가다 간만에 가는데)…”라고 투덜대면서도, 그는 능숙하게 납덩이의 위치를 바꿔 장비를 추슬렀다.

무게가 5~10㎏가량 되는 연철은 해녀의 몸을 바다 깊이 가라앉혀 지탱하는 구실을 한다. 먹고살기 위해 연철을 매달고 바다에 들어가지만, 시커먼 바닷속에서 연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올라오지 못할 수 있다. 최근 5년 동안 40명의 해녀가 제주 앞바다에서 조업 중에 숨졌다. 그러니 해녀에게 바다는 삶터이면서 무덤이 될 수 있는 곳이고, 연철은 필수 장비이면서 굴레가 될 수 있는 도구다. “그저 촐람생이(촐랑거리는 사람)처럼 굴지 않고 오몽하게(부지런히) 손을 놀림 됨수다.” 43년 동안 현역 해녀로 물질했어도 여전히 두려운 마음을 숨으로 다스리며, 바다 노동자 김복희는 뭍에서 멀어져갔다.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한 해녀가 20일 오후 하례리 망장포구에서 잡은 소라와 홍해삼을 상인들에게 판 뒤 받은 돈을 수경에 넣어두고 있다.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한 해녀가 20일 오후 하례리 망장포구에서 잡은 소라와 홍해삼을 상인들에게 판 뒤 받은 돈을 수경에 넣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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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에서 태어나 바당에서 보낸 60년

김복희를 비롯한 제주 서귀포 하례리 해녀들이 작업에 나선 지난 20일 아침 제주 바다는 담요를 덮어놓은 듯 잔잔했다. 해녀들의 작업은 ‘물때’가 결정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작을 때인 ‘조금’이 해녀들의 작업 기간이다. 하례리의 경우 보통 음력 8일과 23일 이후 닷새가 물에 들어가기 가장 좋은 때다.

바다가 수확을 허락해주는 길지 않은 시간, 해녀들의 몸놀림은 다급하다. 일단 물질을 시작하고 나면 뭍사람의 눈은 도통 해녀들의 몸짓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이날 오전 10시 해녀들이 입수한 자리엔 한참 동안 ‘테왁’(물질할 때 튜브 구실을 하며 해녀들의 몸을 띄우는 둥근 뒤웅박)만 동동 떠다녔다. “호오이, 호오이!” 숨이 차오른 이들이 물 밖에 내뿜는 숨비소리만이 이따금 그들의 생존을 알렸다. 4시간여 물질을 마친 오후 2시께가 돼서야 해녀들이 하나둘 물 위로 고개를 내민다.

나이 든 할망(할머니) 해녀들이 먼저 수확물이 담긴 그물 ‘망사리’를 끌어 올렸다. 몇 시간의 물질 끝에 묵직해진 망사리를 육지까지 들어 옮기는 일도 중노동이다. 이날 해녀들은 한 사람당 10㎏ 안팎의 소라와 씨알 굵은 홍해삼들을 채집했다. 경력이 길어 깊은 바다까지 잠수할 수 있는 상군 해녀들이 캐어온 것은 무엇이나 더 크고 실했다. 나이 열여섯에 물질을 시작한 김복희는 그 가운데서도 “제일 짱짱한 상군 해녀”다. 반장인 그는 해녀들의 작업 날을 정하고, 바람의 방향과 조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작업 방향을 잡는다.

하례리에서 태어난 김복희에게 물질은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었다. 제주에서 평생을 보낸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모두 맨몸으로 마을 앞바다에 뛰어들어 조류와 싸우고 자식을 먹였다. “저승엣 돈 벌어다 이승엣 자식 먹여 살린다”는 말에 꼭 들어맞는 삶이었다. 김복희도 철이 들고부터는 채집을 금지하는 여름철을 빼곤 매달 보름씩 망장포 ‘바당’(바다)에서 살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하례리 앞바다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김복희더러 해녀들을 관리하는 어촌계장은 “바당에 손만 대면 전복 잡고, 모살(모래) 훑기만 하면 홍해삼 부른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들의 고기국수와 김치 밥상
제주 해녀들의 고기국수와 김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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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의 노곤한 몸 달래는 냄비국수

제주 바당에서 태어난 이의 소명으로 받아든 일이지만, 해녀의 삶은 절대 쉽지 않다. 수산업법은 해녀를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일하는 여성 잠수업자’로 정의한다. 잠수복, 테왁, 망사리, 수경을 빼면 해녀를 시커먼 바다에서 지켜줄 장비는 없다. 맨몸뚱이로 나선 해녀들은 한번 조업에 나서면 연철까지 몸에 매달고 4~5시간 자맥질을 이어간다. 한번 잠수하면 최대 1분 정도 숨을 참아야 한다. 찬 물살에 몸살이 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해녀들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건 파도”라고 입을 모았다. 파도에 부딪히고 또 부딪혀야 일이 끝난다. 그러다 보면 조업 막바지엔 견딜 수 없는 허기가 찾아온다.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들이 고기국수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들이 고기국수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물질을 끝낸 해녀들이 서둘러 민물에 몸을 헹궈 온몸에 밴 짠내를 씻어냈다. 그러곤 어촌계 사무실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해녀 국수’ 간판을 단 제주의 식당들이 대개 해녀가 캐어 온 성게나 해산물, 횟감으로 국수를 말지만, 네댓 시간 바닷물을 들이켜며 파도와 싸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뭍에서 난 먹거리다. 뼈까지 깊게 고아내 ‘베지근한’(고기를 푹 끓여서 깊은 맛이 나는) 고기국수는 해녀들이 물질을 마친 뒤에 즐겨 마주하는 땟거리이다. 뼛국물까지 우려내 기름기가 둥둥 떠다니는 진한 국물이 오랜 잠영에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파도와 싸우느라 기력이 쏙 빠진 몸을 꽉 채운다.

“작업이 끝나면 보통 이렇게 국수를 먹어요. 서귀포 사람들은 장례식에서도 이 고기국수를 먹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면 모두 가사노동자인 해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준비에 나서니 밥상은 뚝딱 차려졌다. 여럿이 조리에 나서도, 고기국수 끓여내는 법은 누구나 안다. 이날은 물질을 하지 않은 어촌계장 사모님이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육수를 말아뒀다. 제주 백돼지 앞다릿살로 수육을 삶는 듯 육수 냄새 자욱하게, 뭉근해질 정도까지 끓인 육수다. 양파만 넣고, 소금 간만 해도 깊은 맛이 난다. 제주 섭지코지 바람으로 말린 면발은 양은냄비에다 따로 끓여 뒀다가 국물에 토렴한다. 여기에 각자의 입맛에 맞게 고춧가루와 후추를 더한다. 한 그릇 들이켜면 바닷바람과 짠물로 시달린 기관지와 위장이 단박에 꾹 눌리는 느낌이 된다.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들이 지난 20일 오후 하례리 해변에서 잡은 홍애삼을 망사리에서 비닐봉투로 옮기고 있다.
물질을 마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들이 지난 20일 오후 하례리 해변에서 잡은 홍애삼을 망사리에서 비닐봉투로 옮기고 있다.
물질을 마친 하례리 어촌계 상군 해녀 김복희씨가 지난 2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망장포구에서 잡은 전복의 무게를 재고 있다.
물질을 마친 하례리 어촌계 상군 해녀 김복희씨가 지난 2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망장포구에서 잡은 전복의 무게를 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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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해녀들…사라지는 숨비소리

이렇게 일해 김복희와 같은 상군 해녀들은 한 번 조업에 나서면 25만~40만원 안팎을 번다. 어촌계장이 각자의 수확량을 기록하고 나면, 포구에서 곧바로 거래해 해녀들은 각자의 수확량만큼 그날 벌이를 손에 쥔다. 소라는 10㎏에 5만원, 홍해삼은 10㎏에 20만원이다. ‘똥군’으로 불리는 초보 해녀들의 수입은 그나마 상군 해녀의 3분의 1 수준이다. 날마다 나가는 일이 아니기에 수입은 일정치 않다. 부족한 수입을 할망 해녀들은 밭일로 메꾼다. 김복희도 농번기엔 새벽 5시에 일어나 밭일을 하고 동틀 무렵부터 낮까지 물질하다 저녁에 밭으로 돌아온다. ‘잠녀(해녀)는 아기 나뒹 사을이민 물에 든다’(잠녀는 아기 낳고 사흘이면 물에 들어간다)는 제주 속담은 해녀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격언 같은 것이다. 제주 지역에서 3천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해녀가 점점 사라져가는 까닭이다.

하례리 어촌계에도 16명의 해녀가 등록되어 있지만 현역 해녀는 김복희를 포함한 10명 정도다. 해녀들과 달리 해녀들의 딸은 바다에 뛰어들지 않으니, 해녀들은 점점 늙고 있다. 8천명이 넘던 해녀는 해마다 줄어 이제 3800명 안팎이다. 제주도가 젊은 외지인들을 해녀로 육성하는 ‘해녀학교’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착률은 높지 않다.

할망 해녀들이 세상을 떠나고, 똥군 해녀들이 마을을 떠나도 하례리 해녀 반장 김복희는 바당을 떠날 생각이 아직 없다. 90살까지 바당에 들고 싶다고 했다. “이루후제(이다음에) 성게 잡을 때, 또 오소. 내 계속 바당서 물질하고 이성께(있을 테니).” 주름진 해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망장포 앞바다엔 어느새 담요를 뒤엎고 파도가 올라왔다.

제주/글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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