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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태안화력 김용균 동료들 ‘정규직화’ 무소식…“탈출구가 없다”

등록 2019-12-10 04:59수정 2019-12-11 09:46

[김용균 1주기]

1급 마스크가 ‘특급’으로 바뀌고
2인1조 근무수칙 준수
일부 설비 개선 등 좀 나아졌지만
원하청 안전책임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 해결되지 않아

‘비정규직, 직접 고용으로’
특조위 권고안 나온 지도 4개월
“이젠 솔직히 지쳤어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의 동료들이 6일 용균씨의 생일을 맞아 용균씨가 생전에 좋아했던 가수 나얼의 음반을 그의 영전에 생일선물로 바쳤다. 권지담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의 동료들이 6일 용균씨의 생일을 맞아 용균씨가 생전에 좋아했던 가수 나얼의 음반을 그의 영전에 생일선물로 바쳤다. 권지담 기자

“석달 전쯤 노조 국장님이 발전소에 와서 ‘특급 마스크로 바꿔주겠다’고 하길래 ‘해봐라, 될 것 같냐’고 속으로 비웃었거든요. (웃음) 원래 여긴 백날 얘기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어주니까…. 그런데 2~3주 전부터 진짜 특급 마스크를 주더라고요. 저희끼리 ‘오, 국장님 세다’라며 웃었죠.”

3년6개월 전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 취업한 이준형(27·가명)씨는 얼마 전 지난 8월 발표된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안대로 특급 마스크가 지급되자 놀라워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원청(서부발전)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하청노동자 이씨에게 발전소는 “뭐 하나 사는 데도 ‘돈 없다’며 두세달씩 버팅기”고, 그 결과 “사람을 체념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발전소에서 “다 내려놓고 사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2인1조로 근무할 인력이 없으니 위험 작업을 혼자 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화재사고로 번질 수 있는 낙탄이 과도하게 생기는 설비를 바꿔달라는 요구를 해도 다 묵살됐다. “그 국장님도 발전소에 다녔으면 나처럼 진작 포기했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이씨는 ‘학습된 무력감’에 빠졌다.

김용균 이후, 비정규직 사고사망

1월4일 경기 화성 철강공장에서 전기 배선 업무를 하던 남아무개(27)씨 고소 작업대에 몸이 끼여 사망
1월8일 경북 김천 화학물질 제조업체 폭발사고로 변아무개(27)씨 사망
2월2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이아무개(50)씨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
4월10일 경기 수원의 공장 신축 공사장에서 김태규(25)씨 화물용 승강기와 벽면 사이 틈새로 떨어져 사망
5월3일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강원도 인제 배전공사 현장에서 송아무개(31)씨 8m 높이의 전봇대에서 떨어져 사망
6월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탱크 수소가스 폭발사고로 배관 해체 작업 중이던 서아무개(61)씨 사망
7월22일 경북 경주 서진산업에서 장아무개(36)씨 협력업체 지게차에 치여 사망
7월31일 서울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빗물저류배수시설 점검하던 노동자 등 3명 사망
8월14일 서희건설의 강원도 속초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15층 높이의 건설용 리프트가 추락 노동자 3명 사망
9월20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가스탱크 기압헤드(철판) 절단 작업을 하던 박아무개(60)씨 철판에 목이 끼여 사망
9월26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선박블록 이송작업 중이던 지아무개(35)씨 블록에 깔려 사망
9월27일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자동창고 천장 보수작업을 하던 김아무개(50)씨 두개골 함몰로 사망. 노조는 작업 중이던 크레인에 치였다고 주장
10월4일 경남 고성 하이화력발전소에서 배관공사 하던 주아무개(47)씨 질식사
10월22일 밀양역 선로보수 작업 중이던 장아무개(49)씨 열차에 치여 사망

“국장님이 난리를 쳐서” 바뀐 특급 마스크는 용균씨 동료들이 기존에 사용했던 1급 마스크와 비교해 분진을 걸러주는 효과가 탁월했다. “특급이 좋긴 좋더라고요. 1급 마스크는 아무리 뒤에서 꽉 조여도 벗으면 코 주변에 탄가루가 묻어 있단 말이에요. 그걸 보면 ‘아, 오늘도 석탄 마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특급 마스크를 쓰니까 (마스크를 벗어도) 얼굴이 깨끗해요.” 이씨와 ‘절친’인 조기욱(28·가명)씨의 설명이다.

태안화력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진 고 김용균(당시 24)씨의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흘렀지만, 김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가 계속되는 발전소를 떠나지 못했다. 사고 당시 김씨가 소속됐던 한국발전기술(서부발전의 하청업체) 연료운영팀 60명 가운데 절반 이상(34명)은 20~30대 청년 노동자들이었다.(<한겨레> 2018년 12월15일치 ‘한국발전기술에는 김용균씨와 동갑인 ‘재하청’ 노동자가 있다’)

발전소에서 용균씨와 가장 친했던 동료이자 학교 선배인 황재선(26·가명)씨는 사고 이후 한달 동안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달 동안 멍했던 것 같아요. 용균이를 제가 가르쳤거든요. 3일 만에 업무에 투입해야 하니까 뭐가 위험한지, 안전하게 일하는 법 같은 걸 말해주지 못했어요. 지금은 2인1조로 일하는 부사수한테 그래요. ‘위험할 것 같으면 하지 마라’고.”

용균씨 사고 이후 1년, 동료들은 2인1조 근무 수칙 준수나 일부 설비 개선 등 이전보다 작업환경이 나아졌다고 설명했지만, 하청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원·하청이 서로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직접고용’ 논의는 좀처럼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7일 오후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대회를 마친 뒤 광화문사거리에서 고인의 영정 펼침막 앞에서 묵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후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대회를 마친 뒤 광화문사거리에서 고인의 영정 펼침막 앞에서 묵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냥 서울에서 (농성을) ‘존버’(‘악착같이 버틴다’는 뜻)했어야 됐던 것 같아요. 그때 대통령 말을 믿고 태안으로 돌아온 건데…. 용균이 어머니도 ‘정규직화’ 약속 듣고 장례 치르셨던 거잖아요. 처음엔 다른 사람들이 안 될 거라고 해도 ‘되겠죠’라고 했는데 요즘엔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해요.” 황씨는 “솔직히 지쳤다”고 토로했다.

지난 2월18일 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청와대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 평가 때 생명과 안전이 제1의 평가 기준이 되도록 하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약속을 한 지 10개월, 특조위의 권고안이 나온 지 4개월이 흐른 지금 용균씨의 동료들은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속을 믿었던 황씨에게 ‘직접고용은 어려울 테니 발전소를 관두라’고 조언한 건 두 살 위의 누나였다. “환갑을 넘긴 부모님은 옛날 분들이라서 제가 공기업 정규직이 될 줄 아시나 봐요. 일이 잘 풀려서 ‘우리 아들 좋은 데 다닌다’라고 자랑하고 싶으신 거겠죠. 부모님보다 정보가 빠른 누나 생각은 달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았던 것 같아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4월3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4월3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미숙씨는 사고 이후 각종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아들 또래의 청년과 동료들에게 “아무 회사나 가지 마라” “너네들 여기서(발전소) 나가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용균씨의 동료들은 언제 자기를 집어삼킬지 모르는 발전소를 떠날 수 없다. “위험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까”란 이유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한달 뒤 서른이 되는 조씨는 재취업에 대해 “문이 좁다”고 했다. 강원도 출신인 그는 ‘외환위기(IMF) 때도 안인화력은 망하지 않았다’는 고향 어른들 말을 믿고 발전소에 취업했다. “발전소에서 4년을 일했는데, 지금 다른 곳으로 가면 신입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면 또 발전소인데, 그곳 환경이 어떨지는 더 모르겠고요.” 직접고용이 안 될 경우 그의 유일한 대안은 2022년께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들어서는 민자 화력발전소로 이직하는 것이다. “고향에 가서 살고 싶어요. 취업 때문에 동해 끝에서 서해 끝으로 온 건데, 일은 힘들고, 퇴근해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요.”

용균씨 사고를 겪은 뒤 이직을 시도했던 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탈출구가 없다”며 한숨을 쉰 황씨는 “2년 전보다 자격증을 더 따는 등 스펙은 좋아졌지만 취업난 탓인지 올 하반기에 지원했던 기업들에선 서류전형부터 떨어졌다”고 씁쓸해했다.

조씨는 용균씨의 일이 있고 난 뒤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용균이랑 같이 술도 먹고 그랬는데 함께 찍은 사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회식할 때 사진을 많이 찍어요.” 이어 그는 “1년 전 엄청난 이슈가 됐던 용균이의 죽음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잊히는 것 같아 걱정이 됐는데, 1주기를 앞두고 많은 사람이 추모제를 준비하고, 관련 뉴스도 나오는 걸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물넷 하청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세상을 떠난 지 1년. 얼굴에 여드름 자국도 채 가시지 않은 ‘김용균의 친구들’은 여전히 자신의 안전을 책임질 주체가 없는 곳에서 ‘희망고문’을 당하며 일하고 있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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