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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용균 떠난 지 1년, 발전소는 여전히 캄캄하다

등록 2019-12-04 19:12수정 2019-12-07 23:58

현장 점검원들은 지금도 랜턴에 의지해 점검다녀
2인1조 근무 도입됐지만 뿌연 먼지 그대로
“죽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다행스럽다”
스물네살 청년 김용균은 몸을 구부려 컨베이어 벨트 밑에 쌓인 ‘낙탄’을 긁어내다 바스러졌다. 아직도 그 현장에는 1급 발암물질인 ‘비산’ 먼지가 짙은 안개처럼 피어있다. 김용균씨가 떠난 지 1년, 현장은 그대로 어둡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4일 여전히 절망적인 발전 노동 현장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고 김용균이 그랬던 것처럼 발전소 현장 점검원들은 랜턴을 켜고 점검에 나선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조명이 조금 더 설치되긴 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어둡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고 김용균이 그랬던 것처럼 발전소 현장 점검원들은 랜턴을 켜고 점검에 나선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조명이 조금 더 설치되긴 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어둡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그가 떠나고 정부와 발전업체들은 부랴부랴 나섰다. 5대 화력발전소 모두 ‘노사정 안전 티에프’(TF)를 꾸렸다. “어제는 용균이였지만 내일은 내가 될 수 있겠다”던 현장 노동자들은 절박했고, 기대를 품었다. 용균씨가 고꾸라지기 전까지는 “뭐가 위험하고 뭐가 안전한 건지도 모르고 일만 했다”던 이들이었다.

김씨가 채 1미터 앞도 가늠하기 힘들었던 공간에서 랜턴 하나에 의존해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 단순해서 야만적이다. 그 긴 컨베이어벨트 공정에 “조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김용균이다’를 외치는 노동자들에게 정부와 발전소는 부랴부랴 ‘조명을 설치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부, 남동, 서부, 동서발전에는 조명시설이 없다. 김씨가 그랬던 것처럼 현장 점검원들은 지금도 랜턴에 의지해 점검을 다닌다.

그나마 전보다는 조명이 늘었다. 김씨와는 달리 2인1조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현장 노동자들이 그에게 진 빚이다. 나머지는 그대로다. 비산 먼지는 석탄 발전소가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한 번도 가라앉은 적이 없다. 육안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방법이 제한적이다. 어디에 발이 걸리고 손이 끼일지 보이지 않는 상황은 그대로다. 내딛은 발이 30센티미터 넘게 쌓여있는 바닥 잔해로 푹 꺼졌다 겨우 끌어올려질 때는 “죽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노동자들은 말했다.

“다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죽으면 안돼.” 김용균씨의 죽음을 세상에 처음 알렸던 발전 노동자 이태성씨의 부인은 4일 말했다. 김씨가 떠나고 1년, 티에프가 꾸려지고 특조위의 조사가 진행됐다. 정부와 여당은 “진상 규명을 약속”했고, 22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구조적-근본적 개선 방안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김용균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와 원-하청의 책임회피에 있다”며 “정부는 특조위의 권고를 최대한 존중하며 발전사 노동자의 안전 강화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분당 화력발전소 노동자 노웅민씨는 그 이유를 안다. 발전소 노동자들은 모두 하청업체 직원이다. 원청이 고용한 정규직들은 현장에 섞여 일하지 않는다. 그 ‘주인들’이 정말 위험을 ‘내부화’하려고 할까. “전세를 살아도 못하나 박을 때 주인 눈치가 보이는데, 모든 설비들이 발전사 소유인 상황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들어와 시키는대로 일만 하는 형편”이다. 일은 하지만 권한은 없다. 태안 발전소에서 일하는 한태규씨는 “처음부터 모든 안전 개선이 그 사람들 눈높이에 맞춰져 개선됐다”고 말한다. “컨베이어 벨트 사고 났으니 안전펜스 치자, 조도 확보 안 되니 조명을 켜자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를 알고 있는 하청업체 직원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책임 회피를 위해 잠깐 들었다가 치워버릴 목소리들. 거기 설비가 있고 또 그 노동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스물네살 청년 김용균은 몸을 구부려 컨베이어 벨트 밑에 쌓인 ‘낙탄’을 긁어내다 바스러졌다. 오늘도 노동자들은 그 일을 하는 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스물네살 청년 김용균은 몸을 구부려 컨베이어 벨트 밑에 쌓인 ‘낙탄’을 긁어내다 바스러졌다. 오늘도 노동자들은 그 일을 하는 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발전소들은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현장에서 일을 하기 귀찮을 정도”로 행정 절차를 만들긴 했다. 어떤 발전소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았던 “무쓸모 장비가 안전 장치라며 다시 입고”됐다. 현장에 감독관으로 내려온 2~4년차 정규직 직원들은 현장의 작업 방식에 익숙치 않아 “정비를 끝내지 못한 컨베이어벨트에 기동 오더를 내려” 사고를 부를 뻔 하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죽음의 사슬을 끊자”고 요구했는데, 정부와 발전소들은 회피와 면피 사이에서 책임을 외면했다.

중부 발전 노동자 남상부씨는 ‘마스크’를 둘러싸고 벌어진 촌극을 지금도 기억한다. 김씨가 숨지고 특조위가 현장을 조사하고 나서야 ‘결정형 유리 규산’ 이야기 나왔다. “지금도 그게 정확히 뭔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1급 발암물질이고 기준치 8~19배가 나온다고 하니 특급 마스크를 써야 된다고 하니 달라고 요구했다.” 돌아오는 발전소 쪽의 답변은 간단했다. “이미 안전 관리비를 다 지급했기 때문에 또 지급하면 이중지급으로 감사에서 지적을 당한다.” 안전에 관한 문제가 돈 문제라는 걸 그때 알았다. 특급 마스크는 원래 착용하던 방진 마스크에 견줘 2~5배 비싸다. 회사는 예산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가선 답변이 달랐다. “화력 발전소 안전 문제가 나오고, 1급 발암물질 지적이 나오자 지급이 쫙 됐다.” 국회의원 말 한마디가 노동자의 목숨보다 값어치 있었다. 남씨는 발전소 안전 문제가 그래서 시설 개보수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 사업을 꾸려가는 이들의 기본적인 생각들이 바뀌어야 한다.”

저질탄이 들어오면 불이 많이 붙고 자연 발화가 심하다. 하청 노동자들이 소화수를 사용해 진화하는데 노동자들에게 저렴한 방진 마스크만 지급된다. 유리규산, 벤젠, 수은, 납 등 1급 발암물질들은 10킬로미터까지도 날아간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저질탄이 들어오면 불이 많이 붙고 자연 발화가 심하다. 하청 노동자들이 소화수를 사용해 진화하는데 노동자들에게 저렴한 방진 마스크만 지급된다. 유리규산, 벤젠, 수은, 납 등 1급 발암물질들은 10킬로미터까지도 날아간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사람이 깨져 나가는 협소한 현장에서 아등바등 제 살 깎아 먹으면서 일하는 스스로가 딱하고 비참”했던 영흥 발전소 노동자 신대원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용균 특조위가 만든 22개 권고안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김용균 이전에 정부와 원청은 수년째 같은 요구를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노동자를 개돼지 취급하며 사람 갈아 넣고도 처벌받지 않고 돈만 잘 벌었기 때문이다. 용균이가 왜 죽었나. 외주 하청을 줬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을 만든 정부 여당 발전사 모두다. 만약, 권고안이 흐지부지 된다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광장의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이 노동자들의 간절함에 응답할 수 있을까.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만 하면 될 일이다. 발전소 노동자들은 오늘도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한 채 유리규산, 벤젠, 수은, 납 등 1급 발암물질을 그대로 마신다. 그 연기는 공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멀리는 10킬로미터까지 날아간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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