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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동 존중’ 후퇴 조짐…ILO 핵심협약 ‘선 비준’ 팔 걷어야

등록 2019-05-09 04:59수정 2019-05-09 09:41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식 등
정책시행 과정서 원칙 훼손 잇따라

ILO 비준 행정조치 즉각 단행하고
후입법 절차 돌입 적극 검토해야

사회적 대화기구, 가시적 성과보다
대화·협의 살려나가는 데 집중을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노동 전문가들은 3년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가 각종 차별 해소와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선비준하고 이를 위해 국회를 설득하는 등 과감한 돌파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반면, 사회적 대화기구 운영에선 커다란 합의와 같은 가시적 성과를 내려 하지 말고 꾸준한 대화와 협의를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8일 <한겨레>가 의견을 물은 노동 전문가 10명 가운데 7명은 정부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상충하는 국내법을 먼저 고친 뒤 비준을 하겠다는 이른바 ‘선입법 후비준’이 여의치 않은 현재 상황에선 선비준을 위해 적극 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부의 선비준 뒤 책임 있는 후속조치를 강구하고 정부가 독자적인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나 “정부는 협약 비준을 위한 행정조치를 즉각 단행해 선비준 후입법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는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의견처럼 국회의 사전 동의가 없어도 행정부 자체적인 비준 작업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반면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국회 동의를 거친 ‘선비준 후입법’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일단 비준안을 마련하고 국회 동의를 얻도록 노력하는 한편, 법 개정 없이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 등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도 “정부가 국회에 비준하겠다는 의향을 전달하고 (핵심협약 비준) 동의를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본다”고 했다. 선비준을 주장하지 않은 전문가들도 행정부가 지금보다 국회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최저임금 인상 추이.
최저임금 인상 추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등 사회적 대화기구 운영과 관련해선 정부가 지금처럼 노사정 합의를 압박하는 대신 위원회 내부에서 대화의 불씨를 살려 나가는 데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경사노위는 최근 1주 52시간 노동제의 후속 입법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제도 변경을 본위원회에서 합의하려다 거듭 실패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정부는 주요 노동정책을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충분히 협의하되 합의가 어렵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며 “충분하고 성실히 협의했는데 합의가 안 됐다면 정부가 책임지고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고 짚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이전 정부와 같이 사회적 대화를 정부의 입법·정책 추진을 위한 들러리로 인식, 접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노사중심주의, 즉 노사단체의 주체적 역할을 보장하며 노동정책 의제 제안·협의 그리고 노사정 합의 도출이라는 큰 운영원칙을 분명히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 및 규제 강화”(노광표 소장)가 필요하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각론은 조금씩 달리했다. 한인임 ‘일과 건강’ 사무처장은 “과로사 예방법을 제정하는 등 국가가 나서서 과로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노동자 스스로 참여와 교섭으로 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통한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특히 250만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보장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이주희 교수는 “주 52시간제 입법이 전면적으로 시행되기도 전에 탄력근로제 확대를 시도하는 것은 저녁 있는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여당의 공약과 배치된다”고 짚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 분야에서 이뤄진 몇몇 시도와 관련해선 시작은 긍정적이나 진행되는 상황은 부정적이라는 비판적 의견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16.4%, 올해 10.9% 등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 관련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에 대해 “산입범위에 복리후생비 포함은 잘못”(정이환 교수)이라거나 “정책 진행의 과정과 방향에서 심각한 후퇴를 초래해 제도를 오히려 난해하고 복잡하게 만들었다”(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지적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과 관련해선 정규직화 과정에서 원청의 비정규직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문제 지적이 많았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사실상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만드는 것인데도 정부 가이드라인은 정규직으로 규정한다”며 “공공부문이 모범 사용자 역할을 보여줘 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한다는 취지와는 정반대로 민간부문에 간접고용 사용을 억제하고 불법파견을 해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고 말했다. 앞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민간부문 확대 방안을 강구”(노광표 소장)하는 동시에 “전환된 인력과 기존 정규직과의 격차 축소를 위한 임금제도 정비 노력”(이주희 교수)이 문재인 정부 남은 3년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된다.

전종휘 조혜정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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