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빈소와 할머니 영정. 윤미향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 고인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생전 고인과 함께 인연을 맺었던 활동가와 배우 등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김복동 할머니 장례의 상임장례위원장을 맡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29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빈소 앞에서 설명회를 열어 “28일 오후 10시41분께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눈을 감으셨다”고 밝혔다.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는 생전 함께 인권·평화 운동을 했던 활동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전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셨다”며 “눈이 안 보여 목소리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받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28일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 윤미향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페이스북 갈무리
윤 이사장은 고인의 유지에 대해 “임종하시던 날 오후 5시께 눈을 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줬으면 좋겠다’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맡길 테니 열심히 해달라’고 말씀하셨다”며 “기력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사력을 다해 유지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윤 이사장은 그러면서 “마지막으로는 일본을 향해 절규에 가까울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분노를 표출하셨다”고 강조했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배우 나문희씨가 조문을 마친 뒤 빈소를 나서고 있다. 나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007년 미국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피해 증언을 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출연한 바 있다. 공동취재사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실에 차려진 김 할머니의 빈소에는 고인을 기억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오후 1시께 빈소에 와서 “7일 전에 뵈었을 때 김복동 할머니는 저랑 손을 붙잡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평양도 함께 같이 가자’ 그런 얘기 나눴었다”며 “주무 부서의 장으로서 할머니께 너무 죄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힘을 내서 제가 성폭력 문제나 여성인권 문제나 할머니가 계속 관심을 가지셨던 문제에 대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 가시는 할머니가 외로우시지 않도록 관심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빈소에서 상주를 맡아 조문객을 맞이하기로 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나문희씨도 이날 오전 11시30분께 빈소를 찾아 안타까운 심경을 내비쳤다. 나씨는 “뉴스를 통해서 김 할머니의 부고를 접했다”며 김 할머니를 향해 “너무 고생하셨다. 날개를 달고 편한 세상에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여성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는 활동가 박계정씨는 “수요시위 때 참여해 먼발치에서 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며 “그때마다 참 용기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해왔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도 돌아가셨는데 기둥 같던 김복동 할머니도 별세해, 할머니들의 운동이 시민들 사이에서 잊히면 어떡하나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회사원 이동호(52)씨는 “아침에 비보를 접하고 직원들과 함께 빈소로 왔다”며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씨는 “김 할머니는 굉장히 열심히 사셨던 분이다. 힘겨우셨을 텐데 본인이 당한 일을 밝히고, 같은 할머니들과 연대해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기도 했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서울 선정국제고 2학년이라는 김지원(17)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알아가고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는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단체로 왔다”며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제가 더 열심히 활동했었어야 했는데 더 열심히 활동해서 살아계실 때 사과를 받게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양은 “일본 정부에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싸우신 것은 물질적인 걸 원해서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와 진심 어린 배상때문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6시30분이다. 같은 날 오전 8시30분에는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는 노제가 열릴 예정이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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