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임자운의 반도체 소송기
② 은주씨의 접착제
② 은주씨의 접착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난소암을 얻어 숨진 은주씨의 아버지·어머니가 2016년 3월15일 같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와 함께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어고 있다. 반올림 제공
몸 아파 회사 떠난 뒤 난소암 진단
삼성 “화학물질 사용하지 않았다”
산보연, 삼성 제출자료만 훑어봐 삼성, 1심 패하자 ‘자체 검증’ 주장
제조업체·성분물질 모두 공개 안 해
법원 “유해 화학물질에 지속적 노출”
산보연 역학조사 문제점도 꼬집어 은주씨는 만 17살에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6년2개월간 일했다. ‘금선 연결’ 공정을 맡았다. 23살 되던 해 건강 이상으로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 다음해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은주씨를 처음 만난 2011년 11월, 그녀는 이미 오랜 투병 생활로 지쳐 있었다. 옛 공장에 관한 기억도 희미했다. 다행히 은주씨 동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료 중 한 명도 난소 종양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앞 공정부터 다 살펴봐야 해요. 어태치(접착공정)에서 나온 연기라든지, 오븐에서 나는 냄새를 다 맡았거든요. 에폭시가 굳으며 나는 냄새가 있어요. 본드 냄새랑은 좀 다른…. 국그릇 크기의 플라스틱 용기에 공업용 알코올이 담겨 있었어요. 그걸 솜뭉치에 묻혀서 오염을 닦아내는데 그것도 냄새가 안 좋았어요. 은주는 가끔 구역질 난다고 화장실 가서 구토하기도 했어요.”(동료들 진술)
20대 초반 난소암에 걸려 3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은주씨. 반올림 제공
산보연의 엉터리 역학조사 고인의 아버지가 반올림과 함께 산재보상 신청을 하자, 근로복지공단(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그 조사에서 유족 쪽은 동료들이 기억하고 있는 화학물질, 에폭시 냄새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은 고인의 업무와 관련해, “어떠한 화학물질도 사용하지 않았다”, “에폭시가 노출될 수 없었다”, “실제 에폭시 냄새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핵심 물질인 ‘에폭시 접착제’를 둘러싸고 유족 쪽과 회사 쪽 진술이 엇갈렸다. 은주씨 동료들은 ‘EN 4065’, ‘8351C’라는 이름을 기억했지만 삼성은 ‘EN 4066’만을 취급했다고 했다. 여기서 산보연의 대응은 간단했다. “근로자 쪽에서 진술한 제품들은 어느 사이트에서도 검색되지 않는다”며 삼성이 주장한 EN 4066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산보연은 또 은주씨 업무환경을 조사한다고 해놓고는 온양공장에 가서도 자체적인 분석이나 측정은 하지 않고 삼성이 제출한 자료만 살펴봤다. 재해자 쪽이 주장한 유해물질 노출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공단은 이처럼 엉터리 역학조사 결과에 근거해 “난소암과 업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소송을 결심했고 나는 소송 대리인이 됐다. 나는 ‘에폭시 접착제’부터 파고들었다. 은주씨 동료들이 강조한 “이상한 냄새”의 원인 물질이어서다. 반도체 공장에서 취급하는 에폭시 물질은 가열했을 때 발암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연구가 있는데(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12년), 은주씨는 에폭시 접착제를 고온으로 가열하는 설비를 담당했다. 산보연은 은주씨 동료들이 기억하고 있는 EN 4065, 8351C가 “어느 사이트에서도 검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럴까. 무심결에 구글 검색부터 해봤더니 여러 기술문서가 쏟아졌다. 같은 이름을 가진 화학제품이 반도체 공장에서 쓰이고 있었다. 제조업체도 나왔다. 그 업체들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더니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EN 4065와 8351C를 생산해 삼성전자에 납품한 사실이 있다.” 제조업체들은 해당 제품의 성분도 밝혔는데, 발암물질과 생식독성물질이 눈에 띄었다. 더 놀라운 건 삼성이 주장한 EN 4066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한 품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접착제’에 관한 진실이 밝혀졌다. 은주씨 동료들의 말이 맞았고 삼성이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산보연은 삼성의 말만 믿다가 은주씨가 취급한 접착제를 파악조차 못했다. 그래 놓고는 “난소암과 관련있는 물질을 취급하지 않았다”고? 욕설이 튀어나왔다. 삼성 직업병 사건이 늘 그러했듯이, 이 사건 역시 많은 것이 은폐되기도 했다. 법원의 요청에 따라 삼성전자가 제출한 ‘물질안전보건자료’(공장에서 취급하는 유해 화학물질의 성분, 유해성 등이 기재된 문서)에는 성분 정보가 대부분 “영업비밀”로 감춰져 있었다. 어떤 제품은 성분의 90% 이상이 “영업비밀”일 정도였다. 삼성은 제조업체의 영업비밀이어서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제조업체들 중에는 삼성에스디아이(SDI)와 같은 계열사도 포함됐다. 그리고 ‘2013년 안전보건진단보고서’. 고용노동부가 은주씨가 근무했던 공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진단한 결과다. 법원이 이 보고서의 제출을 거듭 요청했음에도,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삼성전자가 모두 거부했다.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다”거나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특히 삼성은 은주씨 동료들이 강조했던 또 다른 유해인자인 ‘세척제’에 대해서는 취급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법원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자 “세척제를 사용한 적 없다”며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은주씨는 세척제를 취급했고 그 역시 생식독성이 있는 유해물질이었다. 이처럼 고인의 업무환경에 존재했던 유해 요인들이 조금씩 밝혀지자, 이제는 유해 요인들과 난소암의 의학적 관련성에 대한 전문가 분석이 필요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공감해오던 직업환경의학, 산업보건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특히 경희대 직업환경의학과 임신예 교수님의 도움이 컸다. 오랜 교대근무 경험이 난소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최근 논문을 찾아주셨는데, 그에 따르면 은주씨의 근무이력은 발병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러자 근로복지공단도 전문가를 동원했다. 우리 쪽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어느 대학 교수의 소견서를 냈다. 무심결에 기억하고 있던 그 교수의 이름은 이후 뜻밖의 곳에서 다시 등장했다. 2015년 9월, 삼성이 교섭 약속을 파기하며 강행한 자체 보상 절차의 보상위원 중 한 명으로. 삼성은 보상위원들이 보상 대상을 심사하고 지급액을 결정하는 등 “보상의 전 과정을 총괄”한다고 주장했다. 산재소송에서 피해자의 반대편에 섰던 교수에게 그런 역할을 맡긴 것이다. _________
1심 승소…뒤집기 노린 ‘정경유착’ 2016년 1월, 소를 제기한 지 2년8개월 만에 1심 판결이 나왔다. 우리가 이겼다. 유해물질 노출과 교대근무, 과로·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난소암의 원인이 됐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특히 접착제 가열 공정에서 노출되는 독성물질에 주목했다. 몹시 춥던 날, 참 따뜻한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변호사 단체와 몇몇 언론사로부터 ‘이달의 판결’, ‘올해 가장 주목할 판결’로 선정되기도 했다. 같은 해 나온 유엔 인권이사회 방한 보고서도 이 판결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승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뜻밖의 주장을 했다. “1심 판결 내용처럼 접착제로부터 정말 독성물질이 노출되는지, 삼성이 검증했을 수 있습니다. 삼성에 사실조회를 신청합니다.” 이상한 주장이었다. 만일 그런 검증이 가능했다면 산보연이 역학조사를 할 때 관련 자료가 제출됐어야 하고, 산보연이 직접 검증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고 어떠한 검증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검증 결과란 말인가. 법정에서 그렇게 반박하자 공단 변호사의 답은 간단했다. “삼성이 최근에 조사했을 수 있잖아요.” 정말 그랬다. 삼성은 1심 판결이 원고 승소로 나오자 오로지 그것을 뒤집기 위한 자체 검증을 실시했고, 공단은 그러한 검증 결과가 법원에 제출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삼성은 2014년 5월 기자회견을 통해 더 이상 산재소송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 등으로 여론이 한창 좋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재판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자, 은근슬쩍 다시 소송에 개입한 것이다. 다른 사건에서도 그랬다. 매번 근로복지공단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동자의 산재보상을 가로막기 위해, 삼성과 정부는 이처럼 서로 도왔다. 그런데 법원에 제출된 삼성의 검증 결과라는 게 너무 부실했다. 먼저 삼성은 고인이 취급했던 접착제와 유사한 제품을 특정해 그 성분을 분석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제품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제조업체도 알 수 없었고 성분 물질도 대부분 ‘영업비밀’이었다. 원고 쪽으로서는 그 제품이 실재하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또한 삼성은 고인의 업무환경과 “사실상 똑같은” 공정에서 유해물질 노출 여부를 측정했다고 주장했는데, 해당 공정이 고인의 업무환경과 유사하다는 주장부터가 억지였다. 고인이 퇴사한 지 무려 17년이 지난 공장에 고인의 업무환경과 유사한 곳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생산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반도체 공장에서. 또 한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삼성은 유사 제품의 성분분석을 A라는 외부 기관에 맡겼다고 했다. 그런데 A는 지난해 떠들썩했던 ‘갤럭시 노트 7 폭발사태’ 때 등장했던 회사다. 당시 삼성은 1차 폭발 때는 배터리 결함을 인정하고 전량 회수했지만, 2차 폭발 때는 외부 전문기관의 검증 결과를 앞세워 판매를 강행했다. 그 외부기관이 A였는데, 검사 두시간 만에 “배터리 결함이 아닌 외부 충격에 의한 발화”라고 발표해 의혹을 더 키웠던 곳이다. 그 이후에도 폭발이 계속되자 삼성은 결국 판매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A한테도 책임론이 불거졌었다. 솔직히 나는 삼성이 1심 판결을 뒤집어 보겠다며 제출한 자료가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에 놀랐다. 법원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우리 사회에는 삼성과 싸운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나는 삼성의 실체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 정도로 대단치 않고 때로는 어이없을 정도로 형편없다고.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그들의 대응 수준을 보면 분명 그렇다. _________
서울고법 “망인의 난소암은 업무상 재해” 2017년 7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이 나왔다. 항소 기각. 다시 한번 우리가 이겼다. 서울고등법원은 “망인이 업무 중 발암물질과 생식독성물질인 유해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상당 기간 교대근무를 하며 피로,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 난소암 진단을 받았고, 망인에게 다른 건강상의 결함이나 유전적 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히 산보연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하여 근로자를 불리하게 취급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리고 삼성이 제출한 자체 검증 결과에 대해서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던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근로복지공단도 승복했다. 그렇게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난소암도 직업병이 되었다. 은주씨 아버지는 80이 다 된 연세에 막내딸을 먼저 떠나보냈다. 은주씨 사망 후 속세와 연을 끊겠다며 산속에 칩거하셨고, 지금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움막 같은 곳에서 살고 계신다. 그런데 1심 판결 선고 이틀 전, 삼성 보상위원회 쪽이 아버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회유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이 일방적으로 정한 사과와 보상의 내용을 그저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고인의 오빠가 “아버지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며 따졌지만,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 채 합의만 종용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현재까지 삼성과의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 은주씨 아버지·어머니께서 반올림 농성장에 오신 적이 있다. 고 황유미씨 아버지와 함께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감정이 솟구쳤다. 같은 공장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나란히 앉은 모습에 마음이 참 아팠다. 하지만 그날도 삼성은 유족들 뒤로 펜스를 쳤다.
▶임자운 변호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최근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사회적 참사다. 피해자들이 막강한 정부와 기업에 맞서 법정에서 무엇을 겪었고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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