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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성과 낮다’는 이유로 쉽게 해고하자고요?

등록 2015-11-26 21:40수정 2015-11-30 14:37

<송곳>으로 보는 노동개편 쟁점 ③ 일반해고
노동 문제를 다룬 웹툰 <송곳>은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부장이 과장들에게 “(직원들을) 인격 모독이든 징계든 해서 제 발로 나가게 하라”고 지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장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한 명이 “아니, 근데 인원 감축을 할 거면 해고를 시키지 왜 사람을 괴롭히래요?”라고 투덜대자, 다른 과장이 대답한다. “절차 지켜서 해고하기가 쉬운 줄 알아? 이게 빠르고 싸게 먹혀.”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저성과자 해고’ 제도가 도입되면 푸르미는 구조조정을 위해 더 이상 이런 고민을 안 해도 될지 모른다. 직원들 성과평가를 해서 계속 나쁜 점수를 준 뒤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기업의 노동자 해고는 크게 집단해고(정리해고)와 개별해고로 나뉘고, 개별해고는 다시 징계해고와 일반해고(통상해고)로 나뉜다. 정리해고는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노동자를 집단적으로 해고하는 것이다. 징계해고는 노동자가 취업규칙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등 징계사유가 명확하게 있을 때 한다. 징계사유는 없지만 사용자가 보기에 고용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을 때는 일반해고를 한다. 이를테면 회사택시 운전기사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돼 1년 동안 운전을 못 하게 되는 때가 그렇다. 근로기준법 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고의 정당한 이유’를 기업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해고를 하기는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노동개편의 일환으로 ‘저성과자 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명시한 일반해고 관련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올해 안에 발표할 계획이다. ‘저성과’도 ‘정당한’ 해고사유에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기업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 노동자를 평가한 뒤 교정 기회를 주고 노동자의 직무나 배치를 바꾸는 등 해고 회피 노력을 해도 성과가 나아지지 않는 경우 일반해고를 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 윤곽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현장에서 일반해고의 기준과 절차가 불명확하다 보니 기업이 징계해고를 하려고 억지로 징계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여당 “해고 기준 명확히”
일반해고 사유에 저성과자도 포함
“억지 사유 찾아 해고해 논란 빈발”
전경련·경총 등 경영계도 숙원사항

노동계·야당 “해고 남발될 것”
사쪽이 나쁜 점수 준 뒤 해고 우려
정부 장담 달리 정리해고도 폭넓어
“지침이 해고가능 메시지 주는 것”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이 지침이 마련되면 기업이 저성과를 이유로 노동자를 일반해고하는 문을 크게 넓혀 해고가 남발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조 조직률도 낮고 노동자가 사용자와 동등한 지위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해고 지침은 사용자한테 일방적인 해고의 칼을 쥐여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해고가 더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1998년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될 때도 정부는 “엄격한 적용으로 남용을 막겠다”고 했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법원은 미래의 경영위기까지 정리해고의 사유로 인정하는 등 정리해고를 매우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저성과자 일반해고는 그동안 경영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것이다. 정부가 일반해고 지침 추진을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에도 전경련,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규제 기요틴 과제’ 153건에 포함된 바 있다.

정부·여당은 야당과 노동계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수차례 “일반해고 요건 확대가 아니라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려는 것일 뿐이다. 법체계상 행정지침은 법과 판례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고용부가 지침을 만들겠다고 발표하는 것 자체가 노동현장에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서비스와 엘지(LG)유플러스 협력업체 등이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려 한 바 있다. 일반해고가 회사와 대립하기 쉬운 노조 상근자들을 제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남신 소장은 “정부는 일반해고를 밀어붙일 게 아니라 사회적 공론화에 부쳐야 한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지만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는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관련한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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