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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정부, 공무원 단결권·해고자 노조가입 보장 권고 ‘모르쇠’

등록 2013-11-25 20:14수정 2013-11-26 16:12

<b>새누리당사앞 “해고공무원 복직”</b>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해고노동자들과 조합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새누리당사앞 “해고공무원 복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해고노동자들과 조합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부, ILO·인권위 권고 무시
고용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ILO)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나라 안팎 기구들의 권고를 무시하는 행태는 한국이 진정한 ‘글로벌 국가’로 발돋움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이들 기관의 권고가 노동권의 뿌리에 해당하는 단결권 보장에 쏠려 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가장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조합원의 자격은 조합이 결정한다’는 국제기준을 무시하고 지난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화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 ‘단결권 보장’ 권고조차 외면 고용부 자료를 보면, 국제노동기구는 2004~2009년 모두 4번에 걸쳐 공무원의 단결권 보장, 실업자·해고자의 노조 가입 보장,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에 입법적으로 관여하지 말 것 등을 권고했다. 단결권 보장의 고갱이다. 하지만 고용부에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는 해고자의 조합원 가입 자격을 이유로 법외노조화했고, 노조 전임자의 임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근거로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를 통해 제약하고 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처럼 노동자에게 유리한 정책에 대해선 법원의 일관된 판결이 나오고 있음에도 “노사 자율 사안”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반면, 노조를 약화하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에서는 ‘노사 자율 교섭’이라는 국제기준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노조 결성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제노동기구는 이주노동자 노조의 즉각 등록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보장을 네차례나 권고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불법 체류자’의 조합원 가입 등을 이유로 외국인 노조를 허가하지 않기 위해 14년째 법정 싸움을 이끌어가고 있다. 서울고법에서 노조가 승소한 사건은 정부가 상고한 뒤 대법원에서 무려 7년째 계류중이다.

■ 청소년 노동권 개선 권고, 고용부 장관이 “불수용” 2010년 인권위는 청소년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 청소년의 주간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1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연장근로 한도를 현행 1주 6시간에서 5시간으로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또 청소년 노동자의 45%가 종사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를 무시했다. 인권위는 <한겨레>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답변서에서 “(고용부가) 연소자의 노동인권 개선 관련 법령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인권위는 교육부 장관에게도 중·고교 필수 교과과정에 노동기본권 등 노동인권에 관한 교육을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교육부 장관은 수용 의사를 밝혔고, 현재 일부 진보 교육감은 노동권 관련 교육을 실제 시행하고 있다. 청소년 노동권 문제를 일부 학교에서 교육은 하는데도, 보호 강화를 위한 법개정은 고용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꼴이다. 현재 청소년을 고용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의 노동관계법 위반율은 86.5%에 이른다.

※ 클릭하면 이미지가 크게 보입니다.

‘조합원 자율 결정’ 국제기준인데
전공노·전교조 법외노조화 강행
노조 전임자 임금도 법적 제약
이주노동자 조합 결성도 막아

방송·영상 스태프 노동권 보장은
일부 수용했지만 알맹이 쏙 빠져
“대통령 코드 맞추는 고용부” 비판

■ 알맹이만 쏙 빠진 ‘일부 수용’ 인권위 권고에 ‘일부 수용’ 의사를 밝힌 경우도 찬찬히 살펴보면 알맹이는 빠졌다. 방송·영상 스태프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2012년 인권위 권고에 고용부는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보장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일부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장시간 노동의 주범인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방안이나 근본적인 해결책인 ‘노동자성 인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제도만 개선해도 방송·영상 스태프의 처우는 한결 개선될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하지만 고용부는 근로시간 특례 업종 축소에 불만을 나타내는 산업계의 눈치를 보거나, 노동자성 인정이 골프장 경기보조원이나 학습지 교사 등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로 파급되는 것을 우려했다. 오히려 당시 문화부 장관은 표준계약서 제정 같은 처우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수용 의사를 밝혔다. “고용부가 아니라 사용부”라는 노동계의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또 무분별한 정리해고자 양산으로 큰 사회적 파문이 일었지만 고용부는 관련 권고의 일부만 수용했다. 특히 해고 대상자 선정 때 사용자 쪽의 의견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의견도 공평하게 반영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라는 권고에는 “경기 불황시 기업 회생 수단을 제한하며, 해고 대상자 선정은 상대적 선택의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재계 의견과 일치한다.

■ “노동자 아닌 대통령과 코드 맞추는 고용부” 고용부가 ‘불수용’한 인권위 권고 7건 가운데 5건이 이명박 정부 때 몰려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내용을 보면 △외국인 노동자 인권침해 최소화를 위한 법률 개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조건 개선 △청소년 노동인권 개선 법령 및 정책 개선 △‘노조 아님’ 통보의 근거인 노조법 시행령 삭제 등 최근 첨예한 노동계 이슈가 된 것들이다. 노동계는 이런 결과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운 정권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김은기 정책국장은 “인권위 초창기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겠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친기업 정책이 국정 기조가 되자, 인권위 권고를 받은 기관들이 이를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고용부가 노동자와 코드를 맞춰야 하는데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다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도 고용부는 대통령과 같이 ‘불통’의 코드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 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기구나 인권위의 권고는 현재 정부 정책보다 앞서 선도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현실 정책에서 적용이 힘든 점이 있다. 이런 차이는 건전한 긴장관계가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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