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0일 밤 서울광장의 희망시국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얼굴 가면을 쓰고 ‘우리가 김진숙’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진중 노사 잠정 합의
6월뒤 네차례 부산행…수천명 자발적 참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정치권까지 압박
“희망버스 에너지 ‘이성적 동력’으로 체계화돼야”
6월뒤 네차례 부산행…수천명 자발적 참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정치권까지 압박
“희망버스 에너지 ‘이성적 동력’으로 체계화돼야”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11개월간 지속된 한진중공업 노사 분쟁을 타결로 이끄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은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였다.
희망버스는 지난 6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고공시위를 하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차례나 ‘연대의 장’을 펼쳐, 사쪽의 부당한 정리해고 등 노동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희망버스가 만들어낸 동력은 정치권을 움직여 사쪽의 양보를 압박했고, 결국 시민들이 각성하고 힘을 합치면 노동자의 희생만 강요하는 ‘자본의 폭력’에 맞설 수 있다는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만들어냈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자리잡으면서 노동자와 시민이 이분법적으로 갈라졌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도 따로 움직였다”며 “그러나 희망버스는 김진숙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서로 연대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연대를 이끈 건 위기의식이었다. 끊임없이 생존권을 위협받는 고용불안 사회에서 ‘나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처럼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국 각지로부터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정리해고 노동자의 파업현장으로 달려가 힘을 보탠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이러한 연대 활동에 윤활유 구실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기존 언론에 나오지 않은 정보를 서로 빠르게 공유했다. 노조나 시민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혹은 친구와 함께 희망버스를 탄 시민들이 많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희망버스가 평행선을 달리던 한진중공업 노사 합의의 견인차 구실을 해내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회적 연대 활동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회 곳곳의 약자들이 서로 손을 맞잡으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세차례 희망버스를 탄 동화작가 김혜원씨는 “개인적으로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이 잘 안 될 거라 생각했다”며 “그렇지만 노사가 합의에 이르렀다니 아이들한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될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본의 폭력으로 상처받은 곳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이런 곳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 희망버스는 또 떠나야 하고, 나도 기꺼이 동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희망버스만으로는 한진중공업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부당한 정리해고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과 제도를 고치는 데 한계가 있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이런 이유로 희망버스를 ‘감성적 동력’이라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희망버스의 에너지가 사회적 조직·정당·노동조합 등 ‘이성적 동력’으로 체계화돼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할 조직이 없다”며 “한진중공업 노사분쟁 타결은 문제 해결의 종착점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현정 이경미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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