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회 노동절을 맞은 1일 오후 서울 대학로. 휴일의 단잠을 반납한 채 ‘비정규 확산법 무효,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쟁취 노동자 결의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초청 연사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쏟아지는 피로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회사 맘대로 기간 정하고 자를 수 있어”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전 초단기계약 극성
유통·금융·공공부문까지 생존권 위협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전 초단기계약 극성
유통·금융·공공부문까지 생존권 위협
2005년 6월부터 서울 강남의 한 할인마트에서 파트타임 계산원으로 일해 온 황아무개(45)씨. 그는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회사가 내민 뜻밖의 근로계약서를 보고 어안이벙벙했다. 그는 이미 지난달 초 회사로부터 5월18일까지만 일하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회사 쪽이 다시 내놓은 근로계약서엔 고용계약 기간이 5월19일부터 6월19일까지 단 한 달이었다. 황씨는 하루 7~8시간씩 일한 대가로 월 86만원을 받아왔다.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는 ‘초단기 계약’ 사례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7월부터는 2년이 넘게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이를 피하려는 사용주들이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22년 동안 서울 경기여고에서 청소일을 해 온 천옥자(61)씨는 2월28일, 학교로부터 2개월의 단기계약을 강요받았다. 이유는 청소업무를 외주 용역으로 돌리겠다는 것이었다. 천씨가 이를 거부하자, 학교 쪽은 천씨가 머무는 휴게실 자물쇠를 바꿔 출입조차 못하게 했다. 천씨는 “쓰러지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학교는 냉정하게 거절했다”며 “너무 분하다”고 말했다.
초단기 근로 계약을 넘어 사실상 ‘0개월 계약’도 등장했다. 황씨는 “이미 그동안 1개월짜리 계약서를 여러 차례 썼고, 아예 근로계약 기간을 비워둔 채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같은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한 사무직원은 “계약이 만료되기 1~2주일 전에 아예 계약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근로계약서를 나눠주면 비정규직들이 인적사항만 적어 넣고 서명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며 “윗분들이 결재를 할 때 계약기간을 임의로 정해서 추가로 기입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박성우 공인노무사는 “회사가 계약기간을 공란으로 비워놓고 추후 동의 없이 임의적으로 기간을 정하는 것은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일부 시내버스 회사에서도 계약기간을 비워놓고 나중에 적어 넣은 사례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전국비정규노조 연대회의 오민규 집행위원장은 “비정규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우려했던 해고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유통부문은 물론이고, 금융산업, 심지어는 공공부문까지 많은 계약직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며 법까지 만들었지만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대량해고란 칼바람을 피해 가긴 힘든 처지다. 3월 현재 ‘서울시 투자기관의 무기계약 전환대상 자료’를 보면,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식당 종사원, 모터카 운전원, 매점 종사원 등 142명 가운데 한 명도 무기계약 전환대상자가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에 불리한 비정규직법 조항을 회피하는 요령이 담긴 ‘비정규직 법률 및 인력관리 체크포인트’라는 실무지침서를 일찌감치 만들어 회원사에 나눠준 바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