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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민주노총
민주노총 전·현직 위원장 5명 모두 처음엔 인터뷰를 꺼렸다.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자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뜩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은데 자신들의 얘기가 되레 민주노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말문을 연, 전·현직 위원장들은 한결같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들은 점점 고립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민주노총을 향해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권영길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이갑용·단병호·이수호·조준호씨 등 전·현직 위원장들의 자성과 진단을 지상중계한다. 인터뷰는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개별적으로 이뤄졌다.
민주노총의 위기, 어떻게 보나? 권영길=민주노총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종합검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딱 꼬집어서 이게 문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민주노총의 생명은 민주성, 투명성, 도덕성이다. 세 가지 모두 크게 훼손됐다. 대기업노조의 채용비리 사건, 노조간부들의 뒷돈 받기 등 민주노총의 도덕성은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로 민주성에도 상처가 났다. 또한 지도부와 현장의 괴리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파가 ‘자리싸움’에만 골몰하는 것은 해악이다. 조합원들은 나날이 심해지는 정파갈등으로 민주노총에 대한 마음을 접고 있다. 이갑용=민주노총의 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내부 요인은 경각심이 사라진 것이다. 운동가들이 문제라고 본다. 노조활동가 및 간부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경각심, 책임감, 도덕성, 계급적 자각 등 모두 위태로운 상황이다. 비리사건, 폭력사태 등은 이런 것들이 누적된 결과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또한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단결과 혁신’이라는 ‘수사’만 남발하고 있다. 철저한 ‘돌아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병호=노동과 자본의 대립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볼 때, 노동운동의 위기는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노총이 자본의 공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조직력은 현저하게 약화됐고, 조합원들은 조직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상실했다. 아울러 노동시장이 양극화하는 속에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한 것도 뼈아픈 일이다.
이수호=사회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대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희망과 대안 세력으로 서지 못했다.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노조의 관료화, 권력화, 분파 사이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롯된 간부비리, 폭력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위기, 어디서?
비리로 도덕성 훼손
‘자리싸움’하는 정파
비정규직 연대 느슨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는?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전·현직 위원장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이들이 보는 민주노총의 소명도 대동소이했다. 조준호 현 위원장은 “전체 노동대중의 노동조건과 권리향상을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한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에 개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다. 물론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정화기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와 서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선 다소 차이를 보였다. 이수호=잘못된 정파운동과 과도한 노선갈등은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지점이다. 차이만 강조하는 정파조직 때문에 대의기구가 제구실을 못하고,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해 당선된 지도부가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다. 선명성과 운동논리를 앞세우다 실사구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병호=크게 세 가지를 지적하겠다. 지도력의 구축이다. 민주노총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도력이 절실하다. 그리고 조직 안에 존재하고 있는 정파 사이에 문제를 창의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조합원들은 나서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와 노선에 대한 대중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뢰회복이다. 이갑용=조합원 확대 노력이다. 비정규직, 실업자, 소수자 등 노조의 테두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하루빨리 조직해야 한다. 정규직 중심인 민주노총에게는 정체성과 사활이 걸린 문제다. 아울러 임원뿐만 아니라 대의원까지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 직선제가 가져올 현장의 변화와 역동성, 그리고 조합원들의 힘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이 될 것이라고 본다. 조준호=노동운동이 사회연대의식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양극화, 실업자,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비정규직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겠지만 산별노조 체계화가 중요하다. 해법, 어떻게?
운동좌표 분명히 설정
골 깊은 노선갈등 해소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새 위원장에 대한 기대 전·현직 위원장들은 이달 26일 선출되는 민주노총 새 위원장에게 책임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단병호 전 위원장은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면, 권력과 자본이 노동운동의 재편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에 선출되는 지도부는 이런 전환기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고 했다. 권영길 초대위원장은 “파업을 하는 것보다 유보할 수 있는 것이 더 큰 용기”라며 “조합원들의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결단이 요구될 때는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끝〉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이럴때 가장 힘들었다
권영길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
이갑용 “내부 기회주의 맞설때”
단병호 “노동자들 잇따른 분신”
이수호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
조준호 “한미 FTA·노사로드맵” 민주노총은 1995년 발족한 뒤 지난 12년 동안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각기 다른 조건과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이끌었던 전·현직 위원장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그들이 꼽는 ‘사건’과 ‘고충’은 오늘의 민주노총을 낳은 계기이자 변곡점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권영길 초대 위원장은 1996년 12월말부터 다음해 6월까지 이어졌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꼽았다. 권 위원장은 “연초 사흘의 연휴기간 동안 파업을 잠시 중단할 것을 결정할 때 가장 진땀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파업 재개가 힘들까봐 중단 여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국 조합원들을 믿었고 휴가 뒤, 총파업은 다시 불이 붙었다”고 회상했다. ‘강성’으로 분류되는 이갑용 2대 위원장은 외환위기를 맞아 정리해고에 도장을 찍고 집행부가 총사퇴한 뒤, 선출된 지도자다. 이 위원장은 “정부나 자본을 상대로 하는 투쟁은 두렵지 않은데, 조직 내부의 기회주의·개량주의에 맞서는 것은 참 어려웠다”고 말했다. 3대·4대 위원장을 지낸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노동자들이 분신 등 죽음을 선택했을 때,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참담하던 그 시절엔) 노동운동을 한 게, 또 하고 있는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수호 5대 위원장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두고 발생한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를 떠올렸다. 이 전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으나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6대 조준호 현 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포항건설노조 사태 등 너무 많은 과제가 1년 사이 집중돼 있었다”며 “많은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김소연 기자
권영길/이갑용/단병호/이수호/조준호
민주노총의 위기, 어떻게 보나? 권영길=민주노총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종합검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딱 꼬집어서 이게 문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민주노총의 생명은 민주성, 투명성, 도덕성이다. 세 가지 모두 크게 훼손됐다. 대기업노조의 채용비리 사건, 노조간부들의 뒷돈 받기 등 민주노총의 도덕성은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로 민주성에도 상처가 났다. 또한 지도부와 현장의 괴리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파가 ‘자리싸움’에만 골몰하는 것은 해악이다. 조합원들은 나날이 심해지는 정파갈등으로 민주노총에 대한 마음을 접고 있다. 이갑용=민주노총의 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내부 요인은 경각심이 사라진 것이다. 운동가들이 문제라고 본다. 노조활동가 및 간부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경각심, 책임감, 도덕성, 계급적 자각 등 모두 위태로운 상황이다. 비리사건, 폭력사태 등은 이런 것들이 누적된 결과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또한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단결과 혁신’이라는 ‘수사’만 남발하고 있다. 철저한 ‘돌아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병호=노동과 자본의 대립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볼 때, 노동운동의 위기는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노총이 자본의 공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조직력은 현저하게 약화됐고, 조합원들은 조직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상실했다. 아울러 노동시장이 양극화하는 속에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한 것도 뼈아픈 일이다.
이수호=사회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대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희망과 대안 세력으로 서지 못했다.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노조의 관료화, 권력화, 분파 사이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롯된 간부비리, 폭력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위기, 어디서?
비리로 도덕성 훼손
‘자리싸움’하는 정파
비정규직 연대 느슨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는?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전·현직 위원장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이들이 보는 민주노총의 소명도 대동소이했다. 조준호 현 위원장은 “전체 노동대중의 노동조건과 권리향상을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한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에 개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다. 물론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정화기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와 서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선 다소 차이를 보였다. 이수호=잘못된 정파운동과 과도한 노선갈등은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지점이다. 차이만 강조하는 정파조직 때문에 대의기구가 제구실을 못하고,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해 당선된 지도부가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다. 선명성과 운동논리를 앞세우다 실사구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병호=크게 세 가지를 지적하겠다. 지도력의 구축이다. 민주노총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도력이 절실하다. 그리고 조직 안에 존재하고 있는 정파 사이에 문제를 창의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조합원들은 나서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와 노선에 대한 대중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뢰회복이다. 이갑용=조합원 확대 노력이다. 비정규직, 실업자, 소수자 등 노조의 테두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하루빨리 조직해야 한다. 정규직 중심인 민주노총에게는 정체성과 사활이 걸린 문제다. 아울러 임원뿐만 아니라 대의원까지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 직선제가 가져올 현장의 변화와 역동성, 그리고 조합원들의 힘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이 될 것이라고 본다. 조준호=노동운동이 사회연대의식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양극화, 실업자,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비정규직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겠지만 산별노조 체계화가 중요하다. 해법, 어떻게?
운동좌표 분명히 설정
골 깊은 노선갈등 해소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새 위원장에 대한 기대 전·현직 위원장들은 이달 26일 선출되는 민주노총 새 위원장에게 책임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단병호 전 위원장은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면, 권력과 자본이 노동운동의 재편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에 선출되는 지도부는 이런 전환기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고 했다. 권영길 초대위원장은 “파업을 하는 것보다 유보할 수 있는 것이 더 큰 용기”라며 “조합원들의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결단이 요구될 때는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끝〉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전환기에 선 민주노총의 새 임원선거가 오는 26일 치러진다. 대의원 1천여명이 참여해 위원장과 사무총장 등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모두 3팀의 위원장-사무총장 후보들이 제각기 민주노총의 변신과 도약을 약속하며 나섰다. 민주노총 제공
이갑용 “내부 기회주의 맞설때”
단병호 “노동자들 잇따른 분신”
이수호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
조준호 “한미 FTA·노사로드맵” 민주노총은 1995년 발족한 뒤 지난 12년 동안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각기 다른 조건과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이끌었던 전·현직 위원장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그들이 꼽는 ‘사건’과 ‘고충’은 오늘의 민주노총을 낳은 계기이자 변곡점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권영길 초대 위원장은 1996년 12월말부터 다음해 6월까지 이어졌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꼽았다. 권 위원장은 “연초 사흘의 연휴기간 동안 파업을 잠시 중단할 것을 결정할 때 가장 진땀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파업 재개가 힘들까봐 중단 여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국 조합원들을 믿었고 휴가 뒤, 총파업은 다시 불이 붙었다”고 회상했다. ‘강성’으로 분류되는 이갑용 2대 위원장은 외환위기를 맞아 정리해고에 도장을 찍고 집행부가 총사퇴한 뒤, 선출된 지도자다. 이 위원장은 “정부나 자본을 상대로 하는 투쟁은 두렵지 않은데, 조직 내부의 기회주의·개량주의에 맞서는 것은 참 어려웠다”고 말했다. 3대·4대 위원장을 지낸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노동자들이 분신 등 죽음을 선택했을 때,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참담하던 그 시절엔) 노동운동을 한 게, 또 하고 있는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수호 5대 위원장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두고 발생한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를 떠올렸다. 이 전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으나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6대 조준호 현 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포항건설노조 사태 등 너무 많은 과제가 1년 사이 집중돼 있었다”며 “많은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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