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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② 정규직, 그들만의 노동운동 : 절박한 비정규직 고통 외면

등록 2007-01-23 19:43수정 2007-01-25 10:11

전환점에선 민주노총
“솔직히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신병두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위원장)

“정규직의 배타적 태도가 비정규직에게는 (기업과 정부의 행태보다) 더 큰 상처가 된다.”(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기획국장)

지난 5일 현대차노조 대의원대회에선 사내하청 비정규노동자들을 ‘슬프게’ 한 결정이 내려졌다. 세간의 이목이 현대차 성과급 사태에만 쏠려 ‘조용히’ 묻혀버렸지만, 현대차노조와 민주노총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난 결정이었다. 그날 현대차노조 대의원들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한 노조의 울타리 안에 받아들이는 ‘1사1조직’ 안을 부결시켰다. ‘1사1조직’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규약인데도, 현대차노조는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대의원대회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서’를 고려해 비정규직의 조합원 가입(1안) 말고도 △정규직과 별개로 활동하는 ‘비정규직위원회’ 구성(2안)과 △운영위원회에서 조직통합 문제 결정(3안) 등 완화된 대안까지 제시됐으나 모두 ‘거부’됐다.

현대차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정규직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신병두 비정규직노조위원장은 “상당히 아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안건’을 처리하려 지난 2005년 2월 1일 서울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안건 처리에 반대하는 일부 노조원들이 단상을 점거해 대회 진행을 막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안건’을 처리하려 지난 2005년 2월 1일 서울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안건 처리에 반대하는 일부 노조원들이 단상을 점거해 대회 진행을 막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외환위기뒤 고용불안 ‘기득권 집착’…비정규기금 목표30% 그친 게 반증

정규직, 그들만의 세상=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은 민주노총 전반의 문제다. 민주노총 조합원 76만명 중 비정규직은 약 10%인 7만명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위한 투쟁에 나서고,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정규직 중심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까지 겹치면서 ‘일자리가 있을 때, 많이 벌자’는 정규직의 단기 실리주의가 급격히 확산됐다. 기업별 노조 아래 ‘공장 안 문제’에만 길들어진 정규직 노조원들에게 비정규직의 절박함과 고통은 ‘먼나라’ 얘기다.

비정규조직 활동가 양성 등을 위한 민주노총의 ‘비정규기금 모금 운동’이 2년 동안 대기업노조의 외면으로 목표의 30.3%(15억원) 밖에 달성하지 못한 것은 그 상징적 예다. 민주노총 안 비정규직의 발언권 확대를 위한 ‘대의원·중앙위원 비정규 할당제’도 1년째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 전체 대의원 1천여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고작 30여명(3%)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옛 명성’만 기억하며 민주노총에 의지하려 하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다. 지난해 하이닉스-매그나칩, 기륭전자, 르네상스호텔, 포항건설노조, 현대차 등에서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노조들이 벌인 격렬한 생존권투쟁은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일이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규직 고용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노동계가 살아남으려면 정규직 노조의 ‘힘’을 하도급 문제, 중소기업 육성, 임금체계 개편 등 전체 노동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은 연구위원은 “이는 노동운동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내부 의사소통 ‘동맥경화’…정책은 없고 구호만 요란 비아냥도

내부 민주주의, ‘기능정지’=민주노총의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모두 11차례 열렸다. 그 가운데 무난히 치러진 대회는 단 세 차례다. 그나마 그 가운데 두 차례는 임원선거를 위한 대의원대회였다. 과반수 성원이 되지 않아 처음부터 무산된 경우가 2차례, 대회를 시작했으나 중간에 대의원들이 빠져나가 유회된 게 3차례, 폭력사태 등 파행으로 치달은 대회가 3차례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당연히 내부의 의사소통도 꽉 막혀 있다. 조직혁신·사업평가 및 사업계획·투쟁방안·예산 등 굵직한 사안이 논의되어야 할 최고의결기구는 임원 선거 외엔 아무런 구실을 못했다.

민주적 의사결집이 실종된 상태에서 각종 사업과 총파업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민주노총은 11차례 총파업을 벌였지만, 총파업을 실감하기 어려울 만큼 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했다. 대신 ‘총파업 남발’이라는 비아냥만 늘어갔다.

재정상태도 이미 오래 전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조합원들의 의무금 납부현황을 보면, 2000년 71.3%, 2001년 73.4%에서 2002년 63.5%로 뚝 떨어졌다가 2003년 72.8%로 회복됐지만, 2004년에는 다시 61.9%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2005년에도 69%를 보이는 등 60~70% 안팎을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재정난이 내부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빈약한 정책으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민주노총의 주요 정책들이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 없이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는 민주노총엔 뼈아픈 지적이다.

특히 청년실업, 직업훈련, 고용서비스 등 우리 사회 최대 화두인 고용정책에는 민주노총이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전문가들 사이에서 민주노총의 정책은 ‘연대, 단결, 투쟁, 반대’ 등 추상적인 네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에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대기업노조의 각종 금품 비리 문제가 잇달아 터지면서 도덕성마저 ‘수렁’에 빠진 상태다. 민주노조운동의 위상을 회복하고, 등을 돌리는 노동자 대중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선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민주노총과 민주노동운동의 활로가 산별노조 체제의 정착이라는 데는 노동계 안팎에서 이견이 없다. 지난 2005년 2월1일 서울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의 공식 개회 전에 참가자들이 한 목소리로 노동가요를 부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민주노총과 민주노동운동의 활로가 산별노조 체제의 정착이라는 데는 노동계 안팎에서 이견이 없다. 지난 2005년 2월1일 서울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의 공식 개회 전에 참가자들이 한 목소리로 노동가요를 부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산별만이 희망” 한목소리

기업별 좁은 시각서 탈피…약자보호·공공성 더 확대

“최저임금을 월 83만원(시급 3570원)으로 올리고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한다. 직접생산 공정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월차 휴가, 생리휴가, 주휴 등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한다.” (2006년 금속산별 노사 합의서)

“노사가 보건의료 예산 확대와 건강보험 보장성 80% 확대, 공공보건의료 확충에 공동으로 나선다. 병원 식당에 우리 쌀과 농산물을 사용하며 국내외 재난사고 발생 시 긴급 의료지원 활동을 벌인다.”(2006년 보건산별 노사 합의서)

확실히 산별노조는 다르다. 산별노조가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큰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건 노동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해 금속·보건산별 노사 합의서를 보면 기업별 노사관계에선 볼 수 없는 내용들이 눈에 띈다.

금속은 산업별 최저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시급 3100원)보다 높게 끌어올렸고, 정규직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주노동자까지 적용해 노동자 간 격차를 줄였다. 보건의 경우는 ‘의료의 공공성 확대’라는 사회적 문제에 노사가 머리를 맞댔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조직형태가 기업에서 산업으로 바뀌니 시야가 넓어진 게 사실”이라며 “많은 조합원들이 ‘산별마저 성공하지 못하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믿고 있어 ‘산별다운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했다.

“산별협약, 전체에 적용…제도 개선 뒷받침 필수”

민주노총은 지난해 현대차·기아차 등 완성차 4사 노조 등이 대거 산별로 전환하면서 조합원의 75%가 산별노조 울타리로 들어갔다. 물론 조직체계가 미비하고 산별교섭이 본격화 되지 않는 등 아직 ‘무늬만 산별’인 조직도 많다. 그럼에도 산별노조 전환은 이미 대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나아가 이들 전문가들은 노사관계 안정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도 산별에 맞는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노동운동이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면 정부, 정치권의 몫도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프랑스·독일의 경우처럼 산별노조가 체결한 협약이 전체 산업에 적용될 수 있도록 산별협약 효력확장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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