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월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정부가 1호 노동개혁 정책으로 추진하는 ‘근로시간 개편’ 관련 주 최대 52시간제 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일방적인 제도 개편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구체안을 내놓는 대신 ‘대국민 설문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정책을 발표하며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다만 제조업과 건설업, 생산직 등 특정 업종과 직종에 한해선 연장근로 유연화를 추진할 방침을 내놔 근로시간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13일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지난 3월 정부가 현재 주 40시간제에서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단위 칸막이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편 방안을 발표한 지 8개월여 만이다. 1주일 69시간(주 6일 기준) 집중 노동이 가능한 당시 정부 방안이 시민 반발에 부닥치자 당시 정부는 대국민 설문조사를 거쳐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설문조사는 근로자 3839명, 사업주 976명, 국민1215명 등 6030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26일~8월31일 이뤄졌다. 이에 더해 정부는 7~8월 아이티(IT)·연구 개발직, 제조 생산직, 20~30대 노동자 등 총 11개 집단(집단별 6~7명)으로 나눠 그룹별 면접조사(FGI)도 진행했다.
이성희 노동부 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고 한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사정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3월 일방적으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논란이 됐던 만큼, 구체적인 논의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노사정 대화로 넘기겠다는 의미다.
이날 발표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근로시간제도(주 최대 52시간)로 장시간 근로가 감소했다는 의견에 노동자 48.5%가 동의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16.1%)의 세배 가까웠다. 주 최대 52시간제로 업무시간 예측 가능성이 커졌다는 응답은 45.9%로, 그렇지 않다(비동의 14.4%)는 응답보다 크게 높았다. 2018년부터 사업장 규모별로 순차적으로 적용된 연장근로를 주 12시간으로 제한하는 제도에 대한 호응이 여전히 높은 셈이다. ‘추가 소득을 위한 연장근로 의향' 질문에도 ‘없다'는 노동자가 58.3%로, 소득이 늘더라도 현재 주 40시간으로 정해진 근로 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을 거부한 노동자가 절반은 넘었다.
설문조사에서 정부가 올해 3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꺼내들며 배경으로 내놓은 “(주52시간 상한제로 인한) 현장의 충격”은 별달리 확인되지 않았다. 사업주 85.5%는 ‘최근 6개월간 현행 근로시간 규정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노동부는 다만 “업종과 규모에 따라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에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주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겠다면서도 “특종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1주로 한정하지 않고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업종과 직종을 두고 이성희 차관은 “업종·직종별 근로시간과 근로형태에 대한 객관적인 실증 데이터, 추가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며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선 제조업(55.3%), 건설업(27.7%)과 설치·정비·생산직(32%) 등에서 연장근로 단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제도 개편 대상이 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이마저도 작지 않은 규모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어 “정부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가 필요한 ‘일부’ 업종·직종으로 제조업·건설업, 설치·정비·생산직·기술직 등을 꼽았지만, 이는 일부 업종과 직종이 아니라 사실상 전부에 가깝다”며 “사용자 단체의 요구사항인 연장근로시간 확대의 의도를 숨기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국민혈세를 (설문조사로) 낭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