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재개발 공사현장에서 열린 임금체불·불법하도급 근절 간담회에서 ‘건설업 임금체불 합동단속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정부가 추석을 앞두고 잇따라 임금체불 대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직장인 44%가 여전히 임금체불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질적인 임금체불을 끊어내기 위해선 노동자와 합의만 하면 죄를 면해주는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는 등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24일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임금체불 경험을 물어보니 437명(43.7%)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생산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체불 경험이 특히 잦았다. 생산직 노동자 가운데 임금체불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중은 51.5%였고, 비정규직 중에 이 비율은 49%였다. 체불된 임금의 종류는 기본급(30.2%), 퇴직금(28.1%), 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27.8%) 순이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온라인을 통해 이뤄졌다.
조사 대상 직장인 66%가 “한국사회의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지난해 기준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임금체불 액수만 1조3470억여원(피해 인원 23만7501명)에 이를 정도로 임금체불은 광범위하게 벌어진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추석대비 체불예방 및 조기청산 대책’을 발표하며 “임금체불은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불법행위”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 대책이 한시적인 기획 감독이나 당장 체불 임금 지급에만 집중하는 탓에 제도적으로 임금 체불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직장갑질119 분석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여당이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임금체불 대책에는 반의사 불벌죄 폐지나 임금 채권 소멸 시효 연장, 체불 임금 지연 이자제 전면 적용 등 사용자에게 직접 불이익을 가하는 제도가 언제나 빠져 있다”고 짚었다. 이번 조사에서 직장인 69.9%가 임금체불 원인으로 ‘사업주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서’를 꼽았지만,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적 방안을 정부 대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체불 금액이 고액이고 상습적인 일부를 제외하면, 체불 사건 대부분에선 노동자가 신고해도 체불 임금을 사후 지급하거나 노동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사용자에 대한 별다른 처벌 없이 사건이 종결 처리된다.
이 때문에 임금체불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제도로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임금체불 신고 후 합의해도 사업주 처벌(반의사불벌죄 폐지)’(26.7%)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임금체불이 반의사불벌죄로 남아 있는 한 범죄를 저지른 사용자가 오히려 ‘체불임금 중 일부만 받으면 돈을 빨리 주고 상황을 끝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황당한 합의안을 피해자에게 제시하고,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이 이를 수용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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