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저임금 노동자들이 지난 14일 서울역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서비스연맹 제공.
강선영(가명·68)씨는 철저한 업무 스타일을 지닌 노동자라 일터에서 어김없다는 뜻으로 ‘자기앞수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지난 14일 선영씨가 <한겨레>와 만나 짚은 52년 일의 이력은 다양한 직업에 걸쳐 있다. 육아 기간 10여년의 공백을 빼면 대체로 당대에 사람이 가장 필요한 자리, 눈에 띄게 일자리가 늘어나는 영역에 속했다. 저임금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선영씨는 1971년 16살에 부산 섬유공장 노동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1974년부터 6년 동안은 서울 당산동 유리공장에서 ‘에이(A)등급만 받는’ 솜씨 좋은 노동자로 일했다. 1980년 고등학교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남편과 결혼하며 일을 그만둔 뒤, 2000년대 초 일터로 복귀해 시장과 병원에서 비정규직 서비스업 노동자로 일했다. 15년 전부터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지금은 시급 1만2천원(주휴수당 포함)을 번다.
“다 세상에 필요한 일들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선영씨가 말했다. 선영씨의 숙련도, 산업적 필요와는 대체로 무관한 ‘저임금’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여성·비정규직·고령이라는 각 시기의 처지, 노조의 낮은 협상력, 최근 물가에 견줘 인상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최저임금 등을 하나씩 떠올렸다. 끝내 선영씨는 “이 저임금이 정당한 것이냐”고 물었다.
1970년대 미성년, 여성, 7남매 맏이이던 선영씨의 취약한 처지는 노동집약적 수출 산업에서 생산성과 무관한 저임금을 합리화했다. 대규모 노동력을 공급해 산업 기반을 닦은 여성 제조업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남성의 약 42%(1975년 기준)였다.
아이를 초등학교까지 돌보고 돌아온 2000년대 초반의 노동시장에서 선영씨는 서비스업 비정규직이었다. 서비스업 확대와 비정규직 증가는 1990년대 이후 노동시장의 특징이다. 특히 2006년부터 2년 동안 대형 종합병원에서 비정규직인 간호 업무 보조원으로 일했다. “비정규직법이 바뀌어서 2년 일하면 정규직 전환해야 한다고 하데요. 수간호사님이 정말 내보내기 싫은데 보내야 한다고 했어요.”
저임금과 불안정을 특징으로 한 일터를 돌아 2023년 선영씨는 68살, 16년차 요양보호사다. 산업별 월평균 급여(전체 임금 총액)가 218만원으로 70개 산업 중분류 가운데 세번째로 낮다는 점은 평생 선영씨가 거쳐온 일의 속성을 닮았다. “돌봄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수당 떼면 최저임금 수준이에요. 나이가 많아서겠죠?” 고령이 선영씨가 현재 저임금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다.
선영씨가 저임금 일터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던 아주 짧은 두 순간이 있다. 한번은 ‘남의’ 노동조합, 한번은 2018~2019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때였다.
선영씨가 노조의 힘을 절감한 건 병원 업무원 시절이다. “병원 정규직들이 임금 협상을 하면서 자기들 임금 인상 대신 우리 비정규직 임금을 올려준 적이 있어요. 임금 협상이 타결돼 10개월치 200만원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 그 돈으로 특별히 무언가 사지는 않았다. “대출 원금 갚았죠. 그래야 나가는 이자가 좀 줄어드니까.”
두번째 순간은 2018~2019년 최저임금이 각각 16.4%, 10.9% 오른 때였다. 당시 기억은 저임금 노동자 대부분에게 인상적으로 남았다. 마트 노동자 진희자(53)씨는 “매장에서 환호성이 터졌다”고 했다. 진씨는 그 돈으로 쇠고기를 사며 “대한민국 평균의 삶에 다가간 느낌, 이만하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2023년 현재 남은 탈출구는 최저임금 인상뿐이다. 두 사람 모두 노조원이지만 노조를 통한 임금 인상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선영씨는 “재가요양보호사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일하는 탓에 불합리한 것을 좀 고쳐보자고 이야기하려 해도 도무지 모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진희자씨는 “노조 활동을 해도 최소한의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그 이상 임금 이야기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씨가 속한 마트노조가 그동안 해온 요구는 밤 10시까지 근무, 기본급 100만원에 나머지를 수당으로 채워 최저임금을 맞춘 비합리적인 임금 체계의 정상화 등이다. 유일한 탈출구인 최저임금은 2020년 이후 정체 상태다.
선영씨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빚 갚으려 태어났나, 왜 내 삶은 늘 이럴까 싶어 우울하다가도 조금 힘이 나게 해주는” 그의 ‘자부심’, 일을 향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어요. 인증된 전문가라는 거고, 그렇게 일하려고 해요. 그런데 워낙 임금이 낮으니 무시당하고, 그럴수록 제대로 일해보겠다는 사람이 오기 힘들어지잖아요.”
그나마 돌봄 노동은 선영씨 같은 고령·여성 노동자가 저임금을 감내하며 버틴다. 울산의 석유화학공장 하청 노동자인 강유형(가명·36)씨의 일터는 당장 인력 문제에 놓였다. 유형씨는 “힘들고 임금은 낮으니 들어왔다가 3개월 이상 버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데다 체력적으로도 힘든 그의 일도 최저임금 수준이다. 지난해 30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의 빈 일자리는 6만5173개였다. 2020년 3만여개에서 두배 이상 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저임금, 그로 인한 일과 생활과 미래를 두루 짚고서 선영씨가 말했다. “참 속상해요. 그런데 이제 일 가야 돼요.” 매일 그랬듯 어김없이, 성실하게 일하러 선영씨는 현재 일터인 서울 대림동 아흔아홉살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