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지난달 31일 새벽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 농성장에서 경찰에 진압당하고 있다. 한국노총 제공
불안한 조짐이 마침내 또 하나의 처참한 장면이 되었을 때, 그 장면 안에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달 31일 새벽 전남 광양 포스코 하청업체 포운 노동자의 농성을 찍은 동영상에서 김 처장은 망루에서 뽑아낸 쇠막대를 다가오는 사다리차와 방패를 향해 20초쯤 내리쳤다. 이후 1분여 경찰 곤봉에 맞고, 주저앉아, 허공에 막대를 휘두르다가, 붙들리고, 끌려 내려갔다.
한국노총 대변인 출신,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 위원인 김 처장은 노동계에서 “협치와 대화를 중시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최근 <내일신문> 등에 기고해 온 글만 봐도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 노사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탄소 중립과 산업 전환’을 사회적 대화의 기회로 삼길 바랐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복지와 최저임금 문제를 논의하고 싶어했다.
그런 그가 ‘위협하는’ 존재로 불리고 있다. 1일 단 5분 그와 통화했다. “경찰이 옆에 조사하려고 와 있다”고 했다. 자신의 상황을 해명하는 데 김 처장은 1분도 채 쓰지 않았다. 대신 하청 노동자 얘기를 더 하고 싶어했다. “하청 노동자한테 사실상 노동삼권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포운 조합원들은 400일 넘게 버텼어요. 그런 사람들 앞에서 힘들다 말 못해요. 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봐주세요.”
김 처장이 농성 가운데 틈틈이 적었다는 글은 역시 하청 노조 포운의 가로막힌 목소리에 대한 것이다. 김 처장은 대화를 가로막는 회사와 사회의 “뿌리 깊은 노조 혐오”를 느꼈다고 적었다. 그는 또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온전하지 않은 노동삼권이 이 투쟁을 400일을 넘게 만든 근원적 이유”라고 했다. 포운 노동자들은 회사 폐업 등에 맞서 2017년부터 시작한 싸움 끝에 2020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로 현재 회사에 고용이 승계됐다. 하지만 새 회사와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되지 않았다. 쟁의권은 원청의 대체근로 투입으로 무력했다. 원청은 물론 노동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관심 갖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400여일 농성을 버티며 포운의 조합원은 우울증에 걸리고 해고당하고 임금이 삭감됐다. 하청·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 대부분이 겪는 일이다.
목소리 내고 대화할 기회를 요구하다 혐오의 대상이 되고 다치고 절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식은 지난 2주 도처에서 이어졌다. 건설 노동자 고 양회동씨를 추모하는 시민 분향소 설치는 지난달 31일 경찰에 제지당했다. 노동자 3명이 이 과정에서 병원에 실려 갔다. 톨게이트 노동자는 이튿날 경찰청 앞에서 울면서 절규했다. “네, 저 민주노총이고 비정규직입니다. 왜 노조 가입했냐고요? 먹고 살고 싶어서요. 이렇게 비정규직 목소리 다 지우십시오. 그래도 알아줄 때까지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지난달 25일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투쟁 저녁 문화제에서 맨살을 드러낸 채 경찰에 들려 나가는 동료 사진을 들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기 전 김 처장은 망루 위에서 불어나는 경찰을 보며 “일을 키우려 하네요”(5월30일)라고 적었다. 그리고 2일 구속됐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탈퇴를 포함해 사회적 대화에 대한 입장을 7일 정리할 계획이다. 마침내 눈앞의 장면이 된 혐오 앞에 대화의 좁은 여지마저 닫힐 위기다. 일이, 커졌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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