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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MZ노조’ 호출하다 허탕 친 윤 정부…‘새로고침’ 노조의 갈 길은

등록 2023-04-04 05:00수정 2023-04-04 14:36

“우린 MZ노조가 아니다”
국민의힘 김병민 최고위원과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이 24일 서울 종로구 한 호프집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내일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건배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간부들과 대통령실, 고용노동부 소속 청년 담당관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병민 최고위원과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이 24일 서울 종로구 한 호프집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내일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건배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간부들과 대통령실, 고용노동부 소속 청년 담당관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최근 윤석열 정부와 언론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엠제트(MZ)노조’로 부르며 이들을 중심으로 노동 현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스스로를 엠제트노조라고 칭한 적 없고, 노조 대표와 조합원 모두가 엠제트세대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엠제트세대를 대변한다고 할 수도 없다”며 정부와 언론이 붙인 명칭을 일축했다. 새로고침 협의회 위원 10명 중 2명은 50대, 1명은 40대, 나머지 7명은 30대다. 연령 범위가 너무 넓어 세대로 묶기 어색하다. 이들 연령대는 한국에서 노동하는 전체 인구 구성과 큰 차이가 없다. <한겨레>가 이들 10명을 3월23~24일 인터뷰했다. <편집자주>

“뭉칠 수나 있겠어?”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던 회사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상급단체의 도움 없이 노조를 세우자 조금씩 태도를 바꿨다. 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생산직 노동자에게만 제공되던 무주택자 대출 지원 등 여러 혜택이 올해부턴 사무직에게도 지원되기 시작했다”며 “전에는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불만이 생겨도 ‘곧 잠잠해지겠지’라며 회사가 모른 체했다면, 지금은 우리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노조가 힘을 가지려면, 직접 교섭권을 가지고 회사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했다.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우리 노조원도 2천명(1노조 1만명)으로 적지 않은데, 교섭창구가 1노조로 단일화돼 있다”며 “노사관계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반수가 넘는 노조가 근로자위원회 추천권, 노사협의회, 산업안전보건위 구성까지 모두 독점하는데, 불합리하다”고 했다. 

노조 설립해도 ‘산 넘어 산’

다수 노조가 아닌 이들은 회사와 교섭권을 갖기 어렵다 보니, 목표가 회사와 독자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 ‘교섭단위 분리’다. 그러나 신고만 하면 되는 노조 설립에 견줘 교섭단위 분리는 훨씬 험난한 길이다. 이는 기존 양대 노총의 산별노조가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장 유준환) 가운데 엘에스(LS)일렉트릭과 엘지(LG)전자 사무직 노조는 교섭단위 분리에 실패했으나,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지난해 9월 전남지방노동위원회가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직접 교섭권을 갖게 됐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금호타이어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거쳐 사건을 행정소송으로 가져갔다.

노조가 교섭권을 갖지 못하면 노조 활동이 제약된다. 회사와 다수 노조가 협조하지 않으면 회사 안에 노조 사무실을 차릴 수도 없고, 노조 활동을 위한 타임오프(노조 전임자 활동 시간)도 받을 수 없다. 유준환 엘지(LG)전자 사람중심사무직노조 위원장은 “노조를 만든 뒤 거의 모든 연차휴가를 노조 활동을 위해서만 사용해왔다.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교섭단위 분리 등 절차가 지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대오를 이탈하는 노조원이 생기면서 동력을 잃기도 한다. 엘지전자에선 타임오프를 신청하는 중에 회사와 다수 노조가 “노조원 수를 믿지 못하겠다”며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유 위원장은 “노조원 명단 공개 결정을 알리자 노조원 900명이 한번에 빠져나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회사는 그저 ‘불이익한’ 노조 중의 하나로만 우리를 본다. 필요한 지원을 반대하면서 노조 활동을 지연시키는 회사를 보며 절망했다.” 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위원장이 말했다.

정부·여당과 새로운 노조

정부 간담회와 온라인 등에서 만난 이들 노조 위원장은 ‘몸집을 키워보자’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이하 새로고침)를 만들었다. ‘새로고침’이란 이름은 인터넷 브라우저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 뜨는 파란색 ‘새로고침’ 버튼에서 따왔다.

목표는 △노조 설립과 교섭단위 분리 등 활동 정보 공유 △소수 노조에 불리한 법·제도 개선 노력 등으로 요약된다. 백재하 엘에스(LS)일렉트릭 사무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고용노동부 장관과 만났을 때 교섭창구 단일화에 따른 다수 노조의 교섭권 독식 문제를 이야기했다. 소수 정당이 의원 수에 비례해 입법 활동을 하듯, 소수 노조도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강성 노조를 대체할 참신한 청년 노조’라는 이미지를 씌워 이들을 소비했다. 또 양대 노총에 대한 반발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왜곡·축약했다. 박재민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노조 위원장은 “양대 노총에 적대적 입장은 아니다. 같은 노동자끼리 싸워 좋을 게 없고, 시간이 지나면 민주노총 산하 철도노조와 손잡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고민을 외면한다. 정부·여당은 ‘사무직’이라는 새로고침의 직역 특성을 ‘엠제트’(MZ)라는 세대 특성으로 어색하게 치환했다. 당사자들은 ‘엠제트 노조’가 아니라는데도, 끊임없이 그들을 ‘청년 대표’로 호명하며 양대 노총의 견제 수단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새로고침은 설립 직후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유연화에 반기를 들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새로고침은 정부의 노조 지원금도 거부하면서 또 한번 정부를 ‘고민’에 빠뜨렸다. 노동부는 지난달 23일 ‘노동단체 지원사업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조합비 회계장부 증빙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노동조합을 보조금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고, 지원사업 예산의 절반(약 22억원)을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체, 엠제트 노조’ 등에 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노동계에선 ‘사실상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에 주겠다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새로고침은 정부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이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이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탈진보 비보수’ 새로고침의 전망

새로고침은 최근 행보가 정부·여당과 교감에 집중되면서 노조원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준환 새로고침 의장은 “아무래도 노동 현안을 이야기하는 통로가 정부와 여당이다 보니, 노조 내부에서 특정 정당만 만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했다. 새로고침을 구성하는 조합원들은 정치적 중립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여당과 마냥 가까워질 수는 없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반노조 기조였던 윤석열 정부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노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고, 대안으로 새로고침을 내세워 민주노총을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며 “그러나 탈진보인 동시에 비보수 성향인 이들을 공략하는 정치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새로고침의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유 의장은 “대안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소수 노조를 조직하기 위한 교육 사업,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노동법 교육과 취업 컨설팅을 올해 안에 추진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사업 구상을 밝혔다. 새로고침이 사무직 노조라는 협소한 토대 위에 세워졌지만, 직역을 넘어서 모두가 합리적인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다수 노동 전문가들은 새로고침이 일시적인 협의체 활동을 넘어 중장기적인 노동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는 사무직 노조로만 이뤄져 다양한 목소리를 아우르지 못하는 구성의 협소함이 꼽힌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고침이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만을 대표해서는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고, 어떻게 다양한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 확장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양대 노총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기득권은 지키려는 논리적 모순도 과제로 꼽힌다. 조건준 아무나 유니온 대표는 “기성 노조를 귀족 노조로 규정하면서 반성을 촉구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고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새로고침은 또다른 귀족 노조일 뿐”이라며 “청년 세대가 초단시간 노동,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을 경험하는데,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다만 그동안 소외됐던 사무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새로고침을 통해 터져나온 것에 대해 양대 노총이 반성하고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기성 노조의 배타적 운영 방식이나 소통 부족 등 새로고침의 지적이 타당한 부분도 있다”며 “양대 노총은 운영 방식을 더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고, 노조원과 소통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장현은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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