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란 말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건 외환위기 때부터다. 앞서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개방은 이미 시대정신으로 여겨졌고, 개방의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1997년 환란이 닥친 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을 찾아 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등에게 구제금융 지원을 조건으로 아이엠에프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백지수표를 받아 간 일은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과도한 차입경영이 대세이던 때 아이엠에프가 제시한 부채비율 200% 초과 기업에 대한 정리 방침과 함께 국내에선 줄도산이 이어졌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후 이념의 지평선 너머 좌우를 가리지 않고 거부할 수 없는 ‘절대 명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철도노조 파업에 강경 대응으로 맞선 뒤인 2003년 7월 “앞으로 제도에 있어서 노동자에 유리한 것이든 사업주에 유리한 것이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편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자본의 이해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포장하는 행태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 다음 아고라에서 날카로운 경제 분석으로 필명을 떨친 미네르바는 국내 기업을 국외 자본에 마구잡이로 매각하는 등의 행태를 거론하며 “이것이 결국 한국 국내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포장되고, 미국 상무부와 월스트리트에서는 10년 동안의 수익을 단 1년 안에 한국에서 뽑았다느니, 아시아 외환위기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포트폴리오 투자 기회라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갈파했다.
노동 정책도 숙명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정부가 2009년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이른바 ‘타임오프’ 제도를 도입할 때도 명분은 국제 기준에 맞춘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의 가장 큰 간판도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정부가 이번에 노동시간 개편 방안을 내놓은 뒤 집중노동의 위험성과 노동시간 단축 역행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반박의 근거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이 1915시간(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 2021년 기준)인 상황에서 독일(1349시간), 프랑스(1490시간), 스웨덴(1444시간) 같은 나라의 수준에 어떻게 이를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
전종휘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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