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떠도는 69시간 근무표. 자료 온라인 화면 갈무리
6일 정부가 현재 1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돼 있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칸막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 1주일에 최대 80.5시간(주 7일 근무 기준·6일 기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연장근로 활용 등을 유연화해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장기 휴가를 독려하는 제도”라고 설명하지만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내몰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의 삶을 흔드는 정책임에도 제도가 복잡한 것도 문제다. 노동부 설명을 바탕으로 궁금증을 정리했다.
정부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근무→근무→기절→병원→또 근무’로 이어지는 ‘주 69시간 근무표’가 빠르게 확산됐다. 근무표는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토요일은 12시) 하루 16시간 회사에 머무는 것으로 짜였다. 점심·저녁 식사 시간 각 1시간을 빼고 14시간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해 69시간에 맞췄다. 하지만 제도가 바뀌어도 이런 근무는 불가능하다. 한 주에 64시간 이상 일할 경우 퇴근 시점과 출근 시점 사이에 11시간의 연속 휴식 시간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에 적힌 연속 휴식 시간은 8시간이다.
주5일이 아닌
주6일 근무를 하면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아침 9시 출근해 밤 10시 퇴근(휴게시간 포함) 뒤 11시간 연속휴식을 취한 뒤 다시 9시에 출근하면 된다.
물론 주6일 근무인 탓에 ‘기절’ ‘병원’ ‘치킨’ ‘넷플릭스’ 등 토요일 일정은 포기해야 한다. 개편방안은 한주에 69시간 몰아 일했다면, 나머지 기간은 적게 일해 4주 평균 64시간은 맞춰야 한다고 규정한다. 물론 그래도 현재 기준인 주 최대 52시간을 넘는 노동을 4주 동안 할 수 있다.
<한겨레>는 정부의 개편방안대로면 한 주 최대 근로시간이 80.5시간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는 주 7일 11.5시간 근무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개편방안에 따른 한 주 최대 노동 시간을 설명할 때 흔히 주 최대 69시간을 이야기한다. 주 6일 근무를 전제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주 최대 노동 시간을 69시간으로 강조한 적은 없다. 연속 휴식 11시간, 4주 평균 64시간만 지킨다면 노동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정부가 꾸린 전문가 위원회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설명 과정에서 ‘주 6일, 69시간’이라는 숫자가 처음 등장했다.
개편방안이 실현될 경우 주 7일, 매일 11.5시간, 한 주 80.5시간 노동은 현재 법 해석에 따르면 불가능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동시에 휴일 근로의 경우 가산 임금(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즉 수당만 지급하면 주 7일 근무가 법 위반은 아니다.
정부는 이에 대해 2022년 기준 1인 이상 사업체의 상용근로자 주 평균 연장 근로시간이 1.9시간에 그쳤다는 점을 근거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상용근로자 이외에도 다양한 노동 형태와, 평균을 벗어난 일터가 만연한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부는 개편방안에서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장기 휴가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연장 근로의 대가로 무조건 수당이 아닌 휴가를 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장·휴일 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5배, 휴일에 하는 연장근로는 2배의 가산 임금을 받는 제도는 현재처럼 유지된다. 저축계좌제는 휴가 제도를 구체화해 ‘수당 대신 휴가’를 독려하는 차원이다.
지금도 연장·휴일 근로 수당 대신 휴가를 지급하는 보상휴가제도가 있다. 다만 도입률이 5.1%에 그친다. 정부는 그 이유를 구체적인 운영 조건이 법에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이 제도를 저축계좌제로 대체하고자 한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수당과 같이 연장·휴일 노동의 경우 1.5배, 2배의 ‘시간’을 적립할 수 있다. 노동자가 임금과 시간 사이에서 적립 방식을 선택하고, 적립한 시간은 ‘저축 휴가’로 쓴다. 정산 기간이나 최대 적립 시간 한도 등은 앞으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실노동시간을 줄인다는 목표에 비춰 연장근로의 대가로 수당보다 휴가를 활성화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다만 실효성이 문제다. 기본급이 적어 연장근로 수당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휴가를 쓰려면, 쉬더라도 임금 손실이 적은 임금 체계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이번 개편방안에 이런 논의는 포함되지 않았다. 저축계좌제에 적립했지만 정산 기간에 사용하지 못한 시간은 수당으로 정산하거나 이월된다.
④ 주 69시간 이내로 일하면 과로 인정 불가?
근로시간 개편과 과로의 산업재해 인정은 무관하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에 따라 일을 했더라도 과로로 인정될 수 있다.
과로의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할 때 쓰는 노동부의 고시(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는
과로를 판단하는 다양한 참조 기준을 두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4주 평균 64시간 이상 근무인데, 개편제도는 같은 기준으로 노동 시간을 제한한다.
다만 고시가 과로를 판단하는 기준은 4주 평균 64시간 이외에도 다양하다. △발병 전 12주 동안 52시간 초과 근무를 한 경우,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의 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하는 경우 등 여러 상황이 과로 인정 기준에 포함된다. 개편방안에 따라 노동했다고 해도 이런 과로 인정 기준의 범위 안에 들 수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