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지난 15일 소스 교반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근로자 ㄱ씨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에스피씨(SPC) 그룹 계열사 빵공장에서 숨진 20대 노동자가
‘질식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부검의 구두 의견이 나왔다. 사고 발생 뒤 구조 시점이 생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커, 중대재해법 수사에서 회사가 ‘2인1조’ 근무 규정을 준수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유족 측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찰 조사관으로부터 부검의가 ‘사인 판단 보류하되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기관지와 폐 내부에 이물질이 발견됐고, 머리 손상이나 뇌 손상은 없다’는 구두 소견을 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에스피엘(SPL) 평택공장에서 일하던 ㄱ씨(23)는 지난 15일 야간작업을 하다 새벽 6시15분께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교반기)에 끼어 숨진 사실이 알려졌는데, 사인이 다발성 골절이 아닌 ‘질식사’라는 부검의 구두 소견이 나온 것이다. 사고 직후 에스피엘이 작성한 ‘안전사고 발생 경위 및 경과 보고서’에는 “발견 당시 교반기에는 내용물(소스)이 가득한 상황이었고 동료작업자들이 내용물을 비운 후 재해자를 확인했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적혀 있다. 지난 18일 유족은 사체 검안서에 사망의 종류가 ‘외인사’가 아닌 ‘기타 및 불상’으로 분류된 사실을 확인하고,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경기도 평택 에스피엘(SPL)공장에서 끼임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인 지난 16일, 정의당 의원들이 공장을 방문했다. 관계자들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사고가 발생한 교반기 공간을 가린 흰 천을 걷어내고 있고, 뒤에서는 동료 노동자들의 작업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정의당 이은주의원실 제공.
법의학 전문가들은 최종 사인이 ‘질식에 의한 사망’이라면 늦은 구조가 생명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한겨레>에 “다발성 골절 등이 있었다면 (기계에 의한) 압착을 풀더라도 회생 가능성이 적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질식에 영향을 주던 것을 제거하면 생존 가능성이 높았을 상황”이라며 “폐 내부에 이물질이 있다면 ‘기도 폐쇄 질식’일 수 있고 빨리 구조해 이물질을 제거하는 게 생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 역시 “질식도 압박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기도가 막혀서 일수도 있는 등 종류가 다양해 구체적인 부검 결과를 봐야할 것”이라며 “코와 입이 소스에 묻혀 질식 사망한게 맞다면, 조금 일찍 발견했으면 죽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ㄱ씨의 작업이 “2인1조로 운영됐다”고 주장했지만, 사고 당시 ㄱ씨는 혼자 작업 중이었고, 뒤늦게 동료 노동자에게 발견됐다.
유족 쪽은 “최종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기도가 막혀 사망한 거라면 주변에 사람만 있었어도 살았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며 “발견 뒤 구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신고도 늦었다. 회사가 사고 대응 매뉴얼 등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책임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에스피엘의 경과 보고서를 보면, 사고 사실을 확인하고 119 신고까지 10분이 지체됐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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