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새벽 경기도 평택의 에스피씨(SPC) 계열 빵 재료 제조업체인 에스피엘(SPL)에서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 ㄱ(23)씨는 사고 당시 사실상 2인1조가 아닌 단독 근무를 했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나왔다. 에스피엘은 사고 직후 “ㄱ씨가 2인1조로 작업했다”고 밝혔지만, 서류상 같은 조였던 노동자는 ㄱ씨와 다른 업무를 했다는 것이다.
17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과 동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ㄱ씨는 에스피엘이 생산하는 냉장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를 만들던 중 재료를 배합하는 교반기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노조와 동료들은 “ㄱ씨가 교반기 앞에서 많게는 15~20㎏ 남짓 원료를 120㎝ 높이의 기계에 반복적으로 투입하는 작업을 혼자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 회사는 해당 작업이 “2인1조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ㄱ씨와 함께 배합 작업에 배정된 다른 노동자는 또 다른 샌드위치 재료를 만드는 작업에 투입됐고, ㄱ씨가 기계로 빨려들어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게 노조와 동료들의 설명이다.
17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에스피씨(SPC) 본사 앞에서 열린 ‘제빵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사건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청년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샌드위치 공정에서 함께 일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ㄱ씨의 남자친구 ㄴ씨는 이날 <한겨레>와 만나 “회사가 당시 2인1조로 작업했다고 하지만, 두명이 같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며 “옆에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 기계를 멈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설명을 들어보면, 해당 사업장이 반드시 2인1조를 해야 할 법령상 의무는 없다. 다만 내부 작업지시서나 매뉴얼 등에 2인1조 근무가 명시돼 있는데도 이를 어겼다면,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4조를 위반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겨레>가 확보한 에스피엘의 교반기 안전작업 표준서를 보면, 작업인원을 2명으로 적고 있다.
이에 대해 에스피씨 관계자는 “동료 작업자는 다른 공간에서 배합 작업에 필요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으며, 다른 작업에 투입된 것이 아니다. ㄱ씨와 다른 장소에 있었던 것은 사고가 나기 전 9분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 쪽은 “지금까지 현장 증언을 받은 결과, 실제 작업 당일 다른 한 사람은 배합실 바깥에서 다른 공정의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 문제는 폐회로티브이(CCTV)를 통해 경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받지도 않은 안전교육 서명, 한달치 몰아서 시켜”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에스피엘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야간근무 인력이 부족해 지속적으로 충원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2인1조가 불가능했던 배경을 설명했다. 강 지회장은 또 “회사는 무급으로 30분 일찍 출근해서 받도록 한 안전교육도 없애버렸고, 노동자들은 받지도 않은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서명을 한달치씩 몰아서 서명했다”며 회사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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