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에스피씨(SPC) 본사 앞에서 ‘제빵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사건 해결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 평택시 에스피씨 계열 에스피엘(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청년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를 당해 숨졌다. 연합뉴스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에스피씨(SPC)그룹 계열의 빵 반죽 공장에서 지난 15일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고등학교에서 제빵을 전공한 고인은 자신의 빵 가게를 차리는 꿈을 품고 묵묵히 일해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희생에 비통해할 뿐 아니라, 회사 쪽의 처사에 분노하고 있다. 사고 발생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노동자 인명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장에는 덮개를 열면 저절로 기계 작동이 멈추게 하는 자동방호장치(인터록)가 9대 가운데 2대에만 설치돼 있다고 한다. 이 장치가 안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최근 5년 동안 이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 37건 가운데 15건(40.5%)이 기계 끼임 사고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7일에도 노동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모든 기계에 안전장치를 설치했더라면 이번 참사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을 터이다.
국내 1위 제빵 기업이 돈이 없어 설비 투자를 못 했을 리 없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 좇기가 우선시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안전장치가 없는 7대에만 작업중지를 명령했다는 이유로 회사는 사고 이튿날 곧장 기계 2대의 가동을 재개했다. 노동자들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전날 비참한 사고를 당한 기계 옆에서 일을 해야 했다. 지난 7일 사고 때는 다친 노동자가 협력사 소속이라서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런 반노동적 행태에 정부의 책임이 작다 할 수 없다. 이 업체는 2020년 정부의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선정돼 올해까지 정기근로감독·세무조사 유예 등 212가지의 행정지원을 받았다. 모기업인 에스피씨는 반노동적 행태로 이미 비판을 받아왔다. 2017년 불법파견과 임금체불 등으로 물의를 빚다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문제를 바로잡기로 하고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소식을 접한 뒤 구조적 문제가 없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사고의 구조적 문제는 결국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 의무를 외면한 데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에 여념이 없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월 노동부에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규정의 삭제를 제안한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일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오히려 강화하라고 지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