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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4.2m” 추락사한 아빠…병원서 만난 건설사는 2m라더라

등록 2022-06-19 18:00수정 2022-06-21 10:08

[신다은의 일터삶터] 4회
산재사고 유족 정석채씨

2019년 경동건설 아파트 공사
하청노동자였던 부친 추락사
“안전 관리 회피 회사에 분노”
산재로 숨진 노동자 정순규씨 아들 석채씨가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디엠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산재로 숨진 노동자 정순규씨 아들 석채씨가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디엠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2019년 10월31일 이후 정석채(37)씨는 하루에 5시간 이상 자는 날이 별로 없다. 아침 8시30분에 눈을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경동건설’, ‘건설 추락사’ 등을 검색해 관련 기사를 찾아 읽는다. 점심 땐 거의 매일 있는 다른 산재 유가족 기자회견, 중대재해 관련 모임에 참석하거나 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식사는 거른다. 성명서 자료를 만들어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면 해가 진다. 저녁 방송 뉴스와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고 이튿날 있을 기자회견 발언문까지 준비하면 어느새 새벽 3시30분, 한참 뒤척이다 잠들면 다시 아침이다.

하루종일 분주히 뛰어다니는 석채씨의 머릿속은 한 가지 질문이 지배한다. “내가 지금 대응해야 할 게 있을 텐데, 뭘 놓치고 있지?” 그는 한때 17년 경력 의상 스타일리스트였지만, 건설업 하청노동자인 아버지 정순규(사망 당시 57살)씨가 숨진 이후 생업을 내려놓고 재판과 각종 산재 사고 대응에 온 삶을 쏟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날이면 석채씨의 이름으로 된 이메일이 어김없이 기자 메일함으로 날아든다. 매일 쌓여가는 그의 메일을 읽다 보면 묻게 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쓰고 말하게 만드는가. 순규씨 사고에 책임이 있는 경동건설(원청)·제이엠건설(하청) 관계자들의 2심 선고가 오는 23일로 예정된 가운데, <한겨레>가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석채씨를 만났다.

17년 스타일리스트 본업을 접었다

“한 번은 새벽 1시에 경동건설의 부실한 안전조처를 지적하는 인터넷 기사가 떴는데요, 제가 그걸 보자마자 바로 1시간 거리인 현장으로 달려가서 사진이랑 동영상을 다 찍었어요. 혹시라도 회사가 기사 뜬 거 보고 조치할까 봐서요.”

그는 지난해 5월부터 트라우마 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는 석채씨의 검사지를 보더니 “외상후스트레스가 심각한데 어떻게 견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석채씨는 “사고 초기에 유가족 대책위도 없어서 저희 가족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며 “아버지 죽음에 대한 분노가 가해자 기업한테 가지 못하고 서로에게 가니까 싸우고 뒤돌아서서 후회하고,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25년 이상 건설업 하청노동자로 일하며 어머니와 석채씨, 누나, 막냇동생을 부양했다. 지난 2017년엔 경동건설로부터 ‘우수 안전인’ 표창장도 받았다.

“아버지가 엄청 유쾌하시고 유머러스해서 제가 참 부러워하고 존경했고요. 저의 가장 친한 술친구이기도 하셔서 사회생활하는 법 여쭤보면 바로 명쾌한 답을 주셨어요. 또 낚시랑 목욕탕도 같이 다니고요. 코가 자주 막히셔서 맨날 호주머니에 이쑤시개를 넣고 다니셨는데 그 버릇이 얼마나 재밌는지….”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2019년 10월30일 석채씨는 방송국에서 의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 온 친누나가 울먹이더니 “아버지가 다치셨다”고 했다. 그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비행기를 탔다. 활주로에 내리는 순간 부재중 전화와 문자 수십통이 날아들었고 열어볼 틈도 없이 다시 누나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와라.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 그는 “순간 세상이 까맣고 멍했다.” 병원에 달려가 아버지 모습을 보고도 ‘왜 여기 누워계실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회사와 사고책임 진실공방

석채씨는 사고 이튿날 닥친 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일 겨를도 없이 ‘투사’가 돼야 했다. 사고 책임을 둘러싸고 회사와 진실공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버지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고 온몸은 골절상과 피멍이 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병원에 온 회사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2m(추후 2.15m로 측정)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거예요. (상처를 보면) 고작 그 높이에서 떨어질 수가 없는데….”

산업안전공단 재해조사의견서와 1심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순규씨는 그날 오후 1시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의 옹벽 고르는 일을 하러 4.2m 높이의 비계(건설공사를 위해 만든 임시 구조물) 위로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작업장엔 노동자가 사용할 안전 통로와 작업발판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안전난간과 추락 방지용 덮개도 여러군데 빠져 있었다. 회사 쪽은 미흡했던 안전조처를 사고 발생 사흘 만에 보완했다. 석채씨는 “회사가 현장을 출입해 증거를 은폐할까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걸 왜 이제껏 안 했나’ 하는 분노도 일었다”고 말했다.

석채씨가 확보한 산업재해조사표를 보면 경동건설은 “(순규씨가) 2m 높이 사다리에서 내려오다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노동청에 보고했다. 그러나 현장을 조사한 산업안전공단과 경찰은 추락 높이를 그보다 높은 3.8m∼4.2m로 봤다. 1심 재판부 역시 “피해자의 상처를 봤을 때 상당한 높이에서 추락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회사 쪽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고, ‘2.15m 이상'으로 봤다.

산재로 숨진 노동자 정순규씨 아들 석채씨가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디엠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19년 10월 30일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비계에서 안전망 미설치로 추락한 뒤 병원으로 옮겨져 이튿날 사망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산재로 숨진 노동자 정순규씨 아들 석채씨가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디엠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19년 10월 30일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비계에서 안전망 미설치로 추락한 뒤 병원으로 옮겨져 이튿날 사망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전문가·법원·현장 돌며 증거수집

석채씨는 아버지가 철제구조물 위에서 작업하다 안전조처 미비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본다. 반면 회사 쪽은 안전한 계단 대신 추락방지 장치가 없는 수직사다리를 이용해 무리하게 내려오다 사고가 났다는 입장이다. 수사 대응의 필요성을 느낀 석채씨는 직접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조사기관은 수사 사안이란 이유로 유족에게 진척 상황을 거의 알려주지 않았다. 석채씨는 알음알음 알게 된 변호사와 교수들에게 조언을 구해 산재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청구하고 형사 재판 기록을 신청해 받아봤다.

“법원에 하도 자주 가서 나중엔 직원이 제 얼굴을 알아볼 정도가 됐죠. 혹여나 놓치는 게 있을까봐 수천장 재판 기록을 차에서도 읽고 집에서도 읽고 그랬어요.” 이리저리 발로 뛴 결과 그는 원·하청이 대리 서명으로 현장 노동자인 순규씨를 관리감독자로 꾸민 사실 등을 찾아냈다.

그럼에도 사고 현장이 사라지고 수사가 끝난 상황에서 유족이 추가로 찾을 수 있는 증거는 많지 않았다. 순규씨 사고 관련 원·하청 관계자 3명은 1심에서 징역 6개월 2명, 금고 4개월 1명에 모두 1년 집행유예를 받았다.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석채씨가 보기에도 아버지를 잃은 대가로는 너무 가벼웠으므로, 그는 스스로 이들의 ‘가중 형벌’이 되기로 했다. “어차피 실형도 안 나온 마당에 차라리 내가 기자회견 때마다 회사 이름 거론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눈엣가시가 돼야겠다, 그렇게 마음 먹었습니다.”

산재로 숨진 노동자 고 정순규씨가 생전 가족들과 단란했던 모습. 정씨는 지난 2019년 10월 30일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비계에서 안전망 미설치로 추락한 뒤 병원으로 옮겨져 이튿날 사망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산재로 숨진 노동자 고 정순규씨가 생전 가족들과 단란했던 모습. 정씨는 지난 2019년 10월 30일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비계에서 안전망 미설치로 추락한 뒤 병원으로 옮겨져 이튿날 사망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꿈에 본 아버지 ‘걱정마라’에 큰힘”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아버지 사건을 알리기 며칠 전, 석채씨는 아버지와 함께 낚시하는 꿈을 꿨다. 석채씨가 잡지 못한 물고기를 아버지는 많이도 잡았다. 큰 고래를 잡은 아버지가 석채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가 잡아놓은 물고기가 많다.” 아버지가 꿈에서 해준 이 말은 지금도 석채씨를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된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석채씨는 “예전의 삶으로 완벽하게 돌아가진 못할 것 같다”며 “산재 사고 대부분이 회사가 미리 안전조치할 수 있었던 걸 방치한 결과라는 걸 알고 나니 작은 부조리도 참을 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사회가 안전하게 바뀌는 데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석채씨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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