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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다단계 하청에 독감 백신 ‘사고’…“정부가 배송까지 책임져야”

등록 2020-09-23 18:47수정 2020-10-21 16:58

보건사회연구원 지난해 용역 보고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아이스박스’ 제공
대만에선 보건소가 직접 의료기관 배송

구매부터 배분까지 일관체계 만들고
수송 안전한 용기·검증된 업체 선정해야
22일 오후 경기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신성약품 본사의 모습. 지난 21일 정부는 신성약품의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유통 과정에서 냉장 온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아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일시 중단했다. 연합뉴스
22일 오후 경기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신성약품 본사의 모습. 지난 21일 정부는 신성약품의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유통 과정에서 냉장 온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아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일시 중단했다. 연합뉴스

민간 도매상이 독감 백신 중 일부를 상온에 노출시켜 무료접종 일정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재발을 막으려면 국가가 책임지고 백신을 의료기관들에 배송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낸 보고서 ‘필수예방접종 백신 공급방식 변경에 따른 가격산정 및 조정체계 개선방안’(책임연구원 채수미)을 보면, 연구진은 중앙·지방정부나 보건소 등 공공의 백신 배분 책임을 강조하며, “공공이 의료기관까지 백신을 직접 배송하거나, 전문 유통회사에 위탁 배송, 공급사와 백신 가격 협상 때 배송비용 조항 포함 등 세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금처럼 백신 배송의 책임을 민간 도매상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당장 이번 사태도, 1259만도스(국가총액계약 물량)에 이르는 백신을 의약품 도매 중소기업 신성약품이 하청에 하청을 거쳐 의료기관들에 배송하던 중 발생했다. 신성약품 쪽은 경기 김포시의 회사 물류창고에서 각 지역 거점까지 배송을 11톤 냉장트럭을 갖춘 다른 위탁업체에 맡겼고, 이 위탁업체는 또 다른 1톤 냉장트럭 배송업체에 의료기관들까지의 배송을 맡겼다. 신성약품 쪽은 물류 체계 끝단에 있는 1톤 트럭 기사들이 냉장차 문을 열어두고 백신이 담긴 종이 상자를 옮기거나 바닥에 내려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독감 백신 접종 철이 되면, 온라인에 의약품을 배송할 1톤 냉장 지입차주 모집 공고가 여러개 뜨기 마련”이라며 “이런 배송 기사들에게 백신은 콜드체인(백신 품질 이상을 막기 위한 2∼8도 저온 유지 유통체계)이 어긋나서는 절대 안 된다는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채수미 연구원은 “정부가 백신 도매상 선정 때 배송의 질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가격을 중심으로만 입찰을 진행해 저온 유지 유통의 역량이 없는 도매상까지 유통망에 뛰어들고 있다”며 “독감 백신 무료접종은 국가 사업인 만큼, 별도의 도매상 없이 국가가 책임지고 제약사로부터 백신을 구매하고, 배분까지 해야 공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외 사례를 살펴보면 ‘국가 책임’의 방식은 다양하다. 대만은 한국의 보건소와 같은 위생소가 의료기관에 백신을 직접 배송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연방정부가 공급자(제약사)와 물량을 계약하고, 공급자는 주정부 창고로 백신을 배송하며, 그다음부터는 주정부가 콜드체인을 책임지고 일반 물류트럭에 배송을 맡긴다. 채 연구원은 “오스트레일리아는 배송업체가 반드시 냉장차를 써야 한다는 규제가 없고, 대신 정부가 내부 온도를 밖에서 상시 체크할 수 있는 아이스박스에 백신을 담아서 배송을 맡긴다”며 “국가가 일일이 직접 배송까지 할 수 없다면, 전 과정이 관리·감독될 수 없는 민간 운송 수단에 백신 배송을 기대기보다, 안전한 수송 용기에 투자하고 검증된 배송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등 냉장 유통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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