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왼쪽부터), 임승관 아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메르스 유행 원인을 짚고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을 길을 논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메르스의 경고 ⑤ 전문가 좌담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가 5월20일 진단된 뒤 두달이 다 되어가며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그동안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 가운데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14명이 격리돼 치료를 받고 있다. 초일류병원이라 불리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에 초토화돼 부분폐쇄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번 메르스 유행으로 한국의 병원들이 그동안 병원 감염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낱낱이 보여줬다는 지적도 많다. <한겨레>는 메르스 유행의 원인을 짚고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을 길을 찾으려고, 임승관 아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등 전문가 3인의 의견을 들었다. 좌담회는 지난 13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회는 김양중 의료전문기자가 맡았다.
임승관 아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실질적 권한’ 가질 주체가 중요
시·도는 끼어들 공간 없었고
보건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감염병 의심환자 증상 등 정보
중앙 전산망서 실시간 공유해야
응급실엔 별도의 이동경로 필요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 정책국장
한국 감염병엔 후진국 양상
공공인프라 제대로 안 갖춰진 탓
다인실·가족간병 환경도 개선을 사회 5월20일 첫 환자가 확진됐을 때 처음엔 대부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186명의 환자가 생겼다. 왜 이렇게 확산됐나?
임승관(이하 임) 초기에 격리의 범위를 잘못 설정한 것이 이후의 모든 사태를 낳았다. ‘비말(침방울) 전파’나 ‘2m 이상 퍼지지 않는다’는 모두 맞는 말이고 지침대로 한 것이다. 문제는 첫 환자가 해당 병실 바깥으로 사흘 동안 나가지 않았으리라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가정이 그 뒤 여드레 동안 통했다는 점이다.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됐을 때 질병관리본부장이나 역학조사과장 등이 평택성모병원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전문가들을 만나러 서울역으로 갔다. 질병관리본부가 전문가한테 의존하고 수동적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정형준(이하 정) 임 교수의 지적에 동감한다. 정부가 병원의 경영 문제에 초점을 맞춰 5월20일부터 6월7일까지 19일간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바로 이 점이 메르스 확산을 증폭시켰다.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일선 의료진이나 환자가 감염됐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하게 됐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다 대규모 감염원이 된 14번째 환자도 메르스가 완치된 뒤에야 자기가 14번째 환자인 줄 알게 됐지 않느냐. 첫 환자를 진단한 삼성서울병원에서도 해당 의료진이 아닌 다른 의료진은 메르스 관련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황승식(이하 황) 국외 유행 감염병 정보가 제대로 취합돼 있지 않았다. 메르스 매뉴얼은 있었다. 하지만 그 매뉴얼에 병원 감염이 실제 어떻게 나타나고 유행하는지는 담겨 있지 않았다. 중동에서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중동에 인력을 파견해서 직접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모았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택성모병원에서 격리 범위를 너무 좁게 잡은 실수를 삼성서울병원에서 되풀이한 것도 문제다. 대책본부를 질병관리본부에서 보건복지부로 격상하며 오히려 평택성모병원에서 대처하던 경험을 활용하지 못했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사회 보건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지침대로 대응했다고 한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메르스 확산을 부추긴 건 아닌가?
황 메르스 대응 지침(매뉴얼) 자체보다 매뉴얼 지상주의가 더 문제다.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에 집착해 실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적용하지 않았다. 대비 훈련을 통해서 매뉴얼을 계속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해설서처럼 매뉴얼을 갖춰놓고만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감염병 위기 대응이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여러 상황을 가정해 대비 훈련을 하며 매뉴얼 내용을 개선하고 있다.
임 훈련이 부족하다는 황 교수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병원 의료진이나 보건소 공무원이 훈련을 한다고 실제로 잘할지는 의문이다. 현실에서는 요식적인 훈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메르스 유행 사태로 감염병 확산 방지 시설·장비 강화, 보건부의 독립부처 신설 등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 주체의 권한이다. 평택성모병원을 보자. 질병관리본부와 평택시보건소만 움직였다.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움직여야 할 허리가 없다. 시·도는 끼어들 공간이 없었고, 끼어들었다면 오히려 간섭이나 경쟁으로 비칠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보건소에 책자를 주고 실행하라고 하는데 보건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정 한국은 결핵 발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7배 수준이다. 보건소를 기반으로 한 공공방역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감염병에 대해선 후진국 양상을 보인다. 관련 전문가를 만들어내는 체계도 없다. 감염내과 전문의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다. 방역 체계에서 감염병 예방을 맡은 공무원은 한직이다. 현장에서 훈련받은 사람조차도 그 위치를 벗어나고 싶게끔 만든다. 이런 현실에서는 매뉴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현장에서 구동이 되지 않는다.
사회 병원 정보 공개는 국민들이 원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정부는 늦어도 너무 늦게 공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 정부가 메르스 사태를 비밀에 부치고 좌충우돌하며 메르스를 확산시킨 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정부는 시민들을 과도하게 불안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 병원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위험대응전략에서 시민의 신뢰 확보를 강조하며, 모든 정보를 조기에 발표하도록 한다. 시민들이 투명하다고 믿게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보를 구하고 다닌 것이다. 정부가 민주적으로 결정하거나 시민과 소통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자문한 전문가도 비밀주의에 빠졌다. 이런 게 계속 불신을 낳았다.
임 우리 사회가 감염병 유행 등에 쉽게 들끓고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건 인정해야 하는 사실일 것 같다. 정부나 전문가도 메르스 유행 병원 이름 등 정보를 공개하는 게 좋다는 걸 몰랐겠나. 투명한 공개는 ‘절대선’이고 미공개는 민주주의 훼손으로 여기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의료진한테만 정보를 공개하는 등 정보 공개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잘 정하고 집행하는 게 바로 행정력이다. 대한감염학회에서 정보 공개에 반대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이 아니다. 감염학회는 의료기관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황 미국의 사례는 정보의 공개·공유가 강조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연방정부-주정부 체제라,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연방 전체가 알 수 없다. 위험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려면 정보 공개·공유가 필수다. 모든 정보의 공개·공유가 절대선은 아니더라도, 어느 단계에서 어찌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정보 공개·공유가 더 이득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아직 시민, 심지어 전문가들도 공중보건 위험에 대한 독해력이 떨어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이분법으로만 배워 확률적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 공개가 오히려 과도한 불안을 낳을 위험도 있다.
사회 초일류병원이라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유행지가 된 사실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음압병실이나 방호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점은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찌 된 일인가?
임 의료진의 잇단 감염 등 메르스 유행이 나타난 삼성서울병원은 우리가 아는 그 삼성서울병원이 아니었다. 메르스 유행에 따른 대응인력 부족으로 의료진들이 과도하게 근무하게 됐다. 감염 예방 지침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고 벗을 때 지침대로 하지 못하는 등 실수도 하게 돼 감염됐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이 병원에 메르스 진료를 계속 맡기기보다는 다른 병원에 이송하는 게 바람직했다. 문제는 그 이송 시기가 늦었다는 점이다.
황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환자가 잇따라 나와도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메르스 환자 진료를 계속한 것도 이 병원의 자존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아마 다른 대형병원들이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처지였더라도 문제를 자체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일부러 정보를 감추려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병원 내 감염을 차단해본 경험이 없어 실패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째 환자는 응급실의 모든 구역을 돌아다녔지만, 병원 쪽은 이 환자가 있었던 구획만 소독할 정도였다.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대처 과정에서 초기에 질병관리본부가 배제됐는데, 어떤 이유로 그리됐는지 밝혀져야 한다.
정 보건의료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사장이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해 내부적으로 의료진이 경직돼 메르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같다. 이 병원 의료진의 메르스 감염 경로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데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응급실에서 메르스 환자가 양산될 때 역학조사관들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 삼성서울병원 또는 삼성 쪽이 어떻게 관여했는지 꼭 밝혀져야 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137번째 환자인 이송요원 문제다. 그 환자는 비정규직인데, 메르스 증상이 드러나면 해고될까봐 (이를 숨기고) 계속 일을 했다고 한다. 병원이 수익 중심으로 운영돼 벌어진 일이다. 개선책이 꼭 필요하다.
사회 메르스처럼 국외에서 유입되는 감염병의 유행이 또 올 수 있다. 시급하게 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황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신종 감염병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다른 나라가 정보를 정리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발병 현장 방문 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자체 수집·정리해야 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 지휘할 사령관도 필요하지만 정보를 수집·취합할 정찰병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선 응급실이 감염병 대응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고 있다. 밤이 되면 작은 병원이든 대학병원 응급실이든 모든 환자가 응급실에 오게 돼 있어서다. 감염을 확산시킬 위험이 큰 호흡기 질환자는 다른 응급 환자들과 별도 경로로 응급실을 이용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감염병을 의심할 만한 환자 증상 등의 정보는 실시간으로 중앙응급의료전산망에 입력해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감염병 통계 발표만으로는 정보 공유가 효과적이지 않고 실시간 대응이 어렵다.
정 메르스 유행이 주로 병원 감염으로 촉발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 병실에 여러 환자가 모여 있고, 환자 보호자들도 함께 있어 북새통을 이루는 현실이 문제라는 뜻이다.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4월까지 건강보험 누적 재정흑자가 17조원이라는 정보가 있다. 다인실을 당장 없애거나 대폭 줄이기 어려울 테니, 우선 1~2인실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환자 간병을 가족 등 보호자가 아니라 간호사 등 의료진이 하도록 포괄간호서비스를 모든 병원에서 해야 한다. 그래야 병원 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임 기본기가 너무 없었다. 감염병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했는데, 그동안 현란한 치료 기술을 키우는 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첫 환자가 나온 경기도가 메르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경기도에 수원의료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이 없었다면 그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할 지역 거점이란 관점을 잃지 않으면 어떤 의료 인력을 키워 배치할지 길이 보일 것이다. <끝>
정리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실질적 권한’ 가질 주체가 중요
시·도는 끼어들 공간 없었고
보건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감염병 의심환자 증상 등 정보
중앙 전산망서 실시간 공유해야
응급실엔 별도의 이동경로 필요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 정책국장
한국 감염병엔 후진국 양상
공공인프라 제대로 안 갖춰진 탓
다인실·가족간병 환경도 개선을 사회 5월20일 첫 환자가 확진됐을 때 처음엔 대부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186명의 환자가 생겼다. 왜 이렇게 확산됐나?
왼쪽부터 황승식 교수, 정형준 국장, 임승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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