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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메르스의 ‘경고’…더 센 놈들이 한국 노린다

등록 2015-07-07 20:05수정 2015-07-08 18:22

영화 <감기>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알 수 없는 치명적 전염병이 아무도 모르게 급속도로 번져 한 도시를 폐쇄해야 할 정도로 참극을 빚는다는 시나리오로 짜여 있다. 아이러브시네마 제공
영화 <감기>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알 수 없는 치명적 전염병이 아무도 모르게 급속도로 번져 한 도시를 폐쇄해야 할 정도로 참극을 빚는다는 시나리오로 짜여 있다. 아이러브시네마 제공
메르스의 경고① 미지의 감염병이 몰려온다

모기 매개 치쿤구니아에 SFTS…
신종 바이러스 창궐 ‘호시탐탐’
국제사회는 이미 전쟁수행 태세
“며칠 전 세계적인 감염병 권위자인 미국 국립보건원(NIH) 앤서니 파우치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한테 물어봤어요. 다음번엔 어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것 같냐고요. 자기도 모른대요. 에볼라가 그렇게 커지리라고도 예측하지 못했대요.”

한국-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합동평가단 공동단장인 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는 7일 ‘신종 감염병’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에둘러 말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대응방식은 보수적이 된다. 이 교수는 “국제사회는 완전한 민관군 합동 전쟁 수행 태세로 신종 감염병에 대비한 점검회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식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방역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한국과 달리, 미국 등 국제사회는 신종 감염병을 지구촌 안보의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대비한다.

5월20일 이후 한국에서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팬데믹’(pandemic)급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감염병 6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로, 세계적 대유행을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른 감염병에 견줘 메르스의 실제 위험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공기 감염 위험이 거의 없는데다 모기처럼 인간과 밀접한 매개체에 의한 감염도 일어나지 않아서다. 오히려 메르스보다 훨씬 위험한 ‘미지의 감염병’이 국내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비가 부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1일 배포한 <2014년도 감염병 감시연보>를 보면, 국외에서 감염병에 걸려 국내에 들어온 환자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2001년 이후 매년 200명 안팎이었으나, 2009년 N1H1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1642명으로 늘었다. 2010년 이후 연간 350여명으로 유지되다가 2013년 494명, 2014년에는 388명이 감염됐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입체적 모습. 위키미디어
메르스 바이러스의 입체적 모습. 위키미디어

“‘팬데믹’급 한국 메르스, 전화위복 계기로”

“어제 먼 대륙의 아이가 갖고 있던 병원체가 오늘 당신에게 전파될 수 있고 내일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958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조슈아 레더버그의 이 말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연구단체인 ‘건강과 대안’의 최규진 연구위원이 “메르스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여지껏 국내에서 직접 겪어보지 못한 신종 감염병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예컨대 한국에선 감염 전문의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치쿤구니아라는 감염병이 있다. 탄자니아 마콘데 부족 언어로 ‘몸이 뒤틀렸다’는 뜻이다. 증상이 발현되면 발열과 두통에 이어 심한 관절 통증이 나타나 붙은 이름이다. ‘먼 나라’ 풍토병인가 싶겠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발병국 지도를 보면 치쿤구니아는 이미 한반도 문턱까지 성큼 다가와 있다. 정부는 2010년 12월부터 치쿤구니아를 국외에서 유입될 가능성이 높은 ‘4군 감염병’ 18종의 하나로 지정하고 있다.

치쿤구니아는 1950년대 이후 잠잠해졌다가 2005년부터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재흥 감염병’이다. 뎅기열을 일으키는 이집트숲모기에 의해 전파된다. 감염자의 피를 빤 모기에 의해 전파되지만 더러 수혈에 의해서도 감염된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임신부가 감염되면 태아로 옮을 위험도 있다고 설명한다. 신종 감염병들처럼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아프리카·동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많이 발생해왔으나 최근 몇년 사이 미국과 이탈리아·프랑스로도 번졌다. 지금까지 100여개 국가에서 감염 사례가 보고됐고, 300만명 넘게 감염됐으리라 추산된다. 브라질에선 최초 환자가 나온 뒤 감염자가 1000명을 넘어서기까지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인 가운데서도 국외 체류 중 치쿤구니아에 감염된 사례가 있다. 2013년 처음으로 확진자 2명이 집계된 데 이어 2014년에도 1명이 감염됐다. 기후변화 등을 고려할 때 ‘국내 감염자’ 발생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세계 치쿤구니아 발생 지도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세계 치쿤구니아 발생 지도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던 뎅기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할 처지가 아니다. 한국에서 2004년 16명이던 뎅기열 확진자가 2013년 252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2014년에도 165명이 감염됐다. 모두 국외 체류 중에 감염된 사례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이웃한 일본에선 2014년 여름 69년 만에 처음으로 뎅기열 감염자가 발생했다. 제주도에서도 2013년 이집트숲모기와 같은 종인 흰줄숲모기 서식지가 처음 발견됐다. 제주공항과 제주항 근처에 서식하고 있었는데, 항공기와 배편에 실려와 터를 잡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명 ‘살인 진드기’로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한테 감염되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도 확산되고 있다. 2010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됐고 한국에선 2013년 5월 첫 사례가 발견됐다. 한국에선 2013년 36명이 감염돼 17명이 숨졌고 지난해 감염자 55명 중 16명이 숨졌다.

구라타 다케시 일본 국제의료복지대학 교수는 <바이러스와 감염증>(뉴턴사이언스 펴냄)에서 “신종 바이러스를 천연두 바이러스처럼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연구자는 출현 감시와 경고, 올바른 정보 제공을 철저하게 실시해야 한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각자가 주의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종 바이러스가 선진국에서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바이러스가 비행기 등을 타고 지구 전역으로 옮겨 다니는 시대다. 어느 나라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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