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대통령에게 간호법 거부권을 행사토록 한 정치인과 관료를 심판하겠다!”
19일 서울 광화문 인근 300여m에 이르는 도로 한켠에는 간호복을 상징하는 하늘색 바탕의 손팻말을 든 간호사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전국 시·도 간호사회와 각 지역 병원, 간호대 학생들까지 자리에 참석하면서 집회 신고 지역인 대한문 뒤쪽까지 인원들이 모였다.
당초 3만~4만명 가량이 모일 것이라고 전망했던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모이자 자체 추산 10만명이 모였다고 공지했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뒤, 처음으로 간호사 협회가 평일 대규모 집회를 통해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앞서 하루 전, 정부가 주요 간호대를 상대로 규탄대회 참석 학생 수 파악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호대 학생 등의 참석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의금 한국간호대학(과)장 협의회장(연세대 간호학과 교수)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방에선 ‘기차표를 못 구하거나 교통편이 부족해 많이 못 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수도권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왔다”고 말했다.
이날 규탄대회에선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김영경 간협 회장은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정과 상식에 근거한 정의로운 결정을 기대했는데, 여당과 정부는 ‘간호법이 위험한 법이자 분열만 일으키는 악법’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간호법 거부에 이르도록 했다”며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협은 투쟁 방안의 하나로 간호법 제정에 반대했던 정치권 인사들을 상대로 내년 총선에 사실상의 ‘낙선 운동’을 하겠다며 총선기획단을 출범시켰다. 간협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입법독주라는 가짜 프레임을 만들어 낸 자 등이 다시는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간협은 50만 간호사와 12만 간호 대학생이 ‘1인 1정당 갖기 운동’ 등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법안’이던 양곡관리법은 국회 재투표에서 부결된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요구권 행사에 반발하며 1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 범국민 규탄대회’에 참석한 간호사들과 간호대학 학생 등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간협은 앞서 예고한대로 준법투쟁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들이 해선 안되지만, 관행적으로 의사 업무를 대신했던 행위를 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원래 간호사 업무처럼 익숙했던 채혈을 비롯해 대리처방, 대리수술, 대리기록,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채혈의 경우 간호사가 준법투쟁을 하면 당직의와 임상병리사들이 3교대 근무로 밤새 채혈이나 검체 채취를 해야할 수 있다. 간호협회는 의사의 불법적 업무지시는 거부하는 한편 불법진료 신고센터 설치와 현장실사단을 별도로 운영 관리하기로 했다.
정부는 간호계 단체행동이 본격화하자 현장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7차 긴급상황점검회의에서 “간호계의 대규모 단체행동으로 환자 진료에 지장이 초래돼서는 안 된다”며 “간호사들은 환자 곁을 지키며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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