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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간호법 통과됐지만…의사 지도 없는 ‘지역돌봄’ 손도 못 댔다

등록 2023-04-28 06:00수정 2023-04-28 20:14

기존 의료법상 간호사 업무 그대로
간호법 근거로 추가 수행 업무 없어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 10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 10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간호법 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 법이 ‘간호인력의 업무범위·처우 개선 등을 체계적으로 규율한다’는 원래 취지대로 기능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새 간호법에서도 ‘의사 지도 없이’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는 기존 의료법과 똑같이 제한돼 여기에 필요한 시행령 마련 등이 필요한 데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다른 보건의료 직역들이 법안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협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유관 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의료연대)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검토하고 있다.

간호법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시행되면, 의료 현장의 여러 직역 중 ‘간호’만을 규율하는 첫 번째 법령이 생기게 된다. 기존에는 간호사 업무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등과 함께 의료법에 규정돼 있었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의 임무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등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간호사가 가정 방문 등 돌봄 업무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일어왔다. 지금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소속 간호사가 환자를 찾아가 채혈 등 간단한 의료행위를 해도 의료법상 불법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의료기관 바깥의 지역사회에서 간호·돌봄을 제공할 근거 조항을 담을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간호법은 제1조에서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제정 목적을 뒀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의료현장에서 보면 만성질환자의 상당수는 병원 입원이 아닌 집에서 투병한다”며 “지역사회에서 이들에게 질 높은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료·돌봄의 중간 영역인 간호에 대한 (별도의) 법이 필요했다”고 간호법 제정의 의미를 평가했다.

하지만 간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고 해서 이런 취지가 곧바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간호사 등의 업무’를 규정한 이 법 제3장을 개정하거나, 시행령 등 하위법을 제정해 간호사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조항들은 의료법상의 간호사 업무를 그대로 따와, 간호사가 이 법을 근거 삼아 추가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없다. 제1조 제정 목적상의 ‘지역사회’라는 표현만으로는 간호사가 병원 밖에서 간호 활동을 할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지금 간호법의 표현들은 향후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선언적인 문구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효과를 내려면 세부 조항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짚었다.

의협 등 다른 직역들이 ‘공동 총파업’을 하겠다며 법안 재의를 압박하는 점도 변수다. 의협은 간호법이 향후 개정을 거치며 지역사회에서 간호사가 단독으로 의료기관이나 간호소 등을 개원할 근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호조무사협회나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도 소방·해양경찰·산업시설·스포츠시설 등 보건의료인 수요가 간호사로 쏠릴 것이라고 본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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