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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울지 않는다. 나는 안도하면서, 또 불안해했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은 영화 속 여느 캐릭터들과 달랐다. 그들은 의사에게 암을 선고받은 뒤 절망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했다. 삶과 죽음을 유쾌하게 다룬 영화 <50/50>에서조차 그랬다. 건강 걱정 때문에 술·담배도 안 하던 주인공 애덤(조셉 고든레빗)은 어느 날 갑자기 척추암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건조하게 의학 용어를 내뱉고, 무방비 상태로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애덤은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한다. 유명한 죽음 학자인 엘리자베트 퀴블러로스가 정리한,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중 첫 단계인 부정이었다. 애덤은 의료용 대마초를 피우며 나약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주변인의 어설픈 위로에 ‘분노’하기도 한다. 나는 엄마도 ‘당연히’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눈물’이라는 매개로 감정을 쏟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 중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다 괜찮다”는 엄마
엄마는 분노를 터뜨리기는커녕 ‘불안하다’ ‘죽는 건 아닐까’ 같은 부정적인 문장조차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의료진이 혈관을 잘 찾지 못해 엄마의 오른쪽 손등, 오른쪽 팔, 왼쪽 팔까지 여러차례 살을 찌르며 혈액을 8~9통씩 뽑을 때 정작 고개를 돌리는 건 나였다. 엄마는 되레 “잘 안 보이죠?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당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나와 동생들이 엄마 앞에서 울지 않는 것처럼, 엄마도 우리가 걱정돼서 우리 앞에서만 울지 않는 걸까. 아니면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라 감정을 드러내는 걸 잊은 걸까.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암 환자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일반인의 최대 10배 이상 높고, 암 환자 네명 중 한명은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증의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는데 엄마의 모습은 통계와 달랐다. 다만, 그는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만 온몸으로 발산했다.
어쩌면 오히려 불안한 건 나였다. 갑자기 엄마의 통증이 시작될까 봐, 항암 부작용이 생길까 봐, 우리 4남매가 지칠까 봐 염려했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갈 때마다 잦아들었다. 엄마가 진료받는 대학병원은 암 병원이 건물 하나에 따로 있었다. 지하를 제외하고 지상 15개 층에 간암, 대장암, 부인암, 비뇨기암 등의 진료실과 검사실, 입원실이 있어 환자를 받았다. 얼마나 암 환자가 많으면 건물 한개 동을 암 병원으로 했을까. 나는 1분에 한번씩 진료실을 드나드는 환자와 그 옆에 선 보호자를 보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 가족이 운이 없어 암에 걸린 게 아니라는 사실은 퍽 위안이 됐다.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고, 사고·사건으로 죽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데, 나는 왜 죽음을 가깝게 느끼지 못했을까.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2021년 국내 사망자 수는 31만7680명이다. 하루 평균 870명이 사망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올 2월 친구·회사 등에서 부고 연락을 받은 횟수가 6건이다. 탄생하면 죽는다는 필연적인 사실을 나는 왜 인지하며 살지 않았을까.
부끄럽게도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엄마에겐 배냇짓을 하던 갓난쟁이 모습도, 엄마의 엄마에게 반항했을 중2 시절도, 흰색 나팔바지를 입고 한창 멋 부렸을 스무살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는 태어나는 순간 엄마였고, 결혼해 나와 동생들을 낳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무렵, 흑백사진 속 교복을 입은 엄마를 봤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엄마의 인생을 받아들인 건 내가 보지 못했던 엄마의 유년까지였다. 늙어가는 그를 보면서도 이가 빠진 엄마, 허리가 굽은 엄마,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성인이 돼서도 나는 언젠간 엄마와 이별할 거라는 생각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영영 만나지 못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다른 사람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버틸까. 사별 경험이 있는 남편은 “그냥 그렇게 지나가”라고 짧게 말했다.
사진첩에 없는 엄마 사진
“항암 때문에 엄마 머리카락 빠지기 전에 가족사진을 찍자.”
동생 에이치(H)가 남매 단체대화방에 글을 올렸다. 그 메시지에서 나는 ‘죽음’을 느꼈다. 언젠가 한번쯤은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어보려 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왠지 지금 가족사진을 찍으면 항암이 잘못되거나, 가족사진이 엄마의 영정 사진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엄마 힘들어. 천천히 하자. 그리고 엄마가 맞는 항암제는 머리카락 안 빠진대”라는 말로 그 상황을 피했다.
‘엄마의 영정 사진’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린 이후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엄마 흔적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 사진이 별로 없다. 돌아보니, 엄마 사진은 삭제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휴대전화 사용 용량 경고 알람이 뜨면 나는 여지없이 엄마 사진과 의미 없이 찍은 풍경 사진, 캡처된 이미지를 지웠다. 가족 모임 때 찍은 사진에서조차 엄마는 잘 등장하지 않았다. 엄마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사진을 아무리 넘겨도 엄마를 정면으로 찍은 건 없다. 조카 뒤에서 흐린 배경으로 있거나, 다 같이 찍은 사진에서 조카를 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카메라 렌즈는 작고, 어리고, 귀여운 것들에게만 향했다.
그러다 보니 2009년 사진부터 저장된 내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엄마는 2015년에 처음 등장한다. 그 전 6년 동안 찍은 사진은 아마 내가 다 지운 모양이다. 엄마의 젊고 예쁜 시절 사진이 없어서 영정 사진에 쓸 사진이 아픈 사진이 되는 건 아닐까.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전화 속 엄마 이름을 ‘예쁜 ○○씨’라고만 저장해둘 게 아니라, 정말 예쁠 때 많이 찍어둘 걸 후회가 든다.
최근 내가 의식적으로 사진 찍는 엄마는 환자복을 입고 있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뒤늦게 찍는 사진 속 엄마는 아프기만 하다. 예전처럼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몸통을 반쯤 틀어 날씬해 보이려는 자세를 취할 새가 없다. 그의 시선은 렌즈를 쳐다볼 여유조차 없다. 키가 작은 탓에 전신을 다 찍으면 비율이 볼품없어 보일 때가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전신사진을 많이 찍어줄 테니 오래도록 나의 피사체로 남아주면 좋겠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