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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힘내고 있는 엄마에게 힘내라고...나는 아차 싶었다

등록 2023-10-29 09:00수정 2023-10-29 09:27

[한겨레S] 소소의 간병일기
극한 상황 말 한마디

3주간 ‘혼자 감금’ 무균실 치료 전
엄마와 나, 준무균실에서 2주
홀로 견디는 씩씩한 환자 보고
엄마 발끈하게 한 “힘 좀 내”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병원의 밤은 잠잠하면서도 분주하다. 밤 9시, 병실 불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환자와 보호자는 자리를 찾아가듯 자그마한 침대에 몸을 누인다. 낮에도 활동성이 거의 없는 병실은 불이 꺼지면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정물화 같다. 불 꺼진 병실과 환한 복도, 누워 있는 환자와 바쁜 의료진.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사는 듯했다.

낯선 환경에서 2주 동안 간병을 맡은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간호사는 약 3시간 간격으로 엄마의 상태를 점검했다. 혹여나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까. 간이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의료 카트가 다가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흩어진 정신을 부여잡았다. 간이침대 벽면 쪽으로 엄마가 5주 동안 마실 생수 100통과 영양음료 60통, 옷가지 등을 놓았다. 어디 가서 짧은 걸로는 지지 않을 내 다리도 여기선 제대로 펼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2주 동안 지내야 했다.

밤새 2시간마다 소변량 체크

특히 약물 투여 등으로 몸에 이상 반응은 없는지 물을 포함한 식사량과 배변량을 체크해야 했는데, 팔에 주렁주렁 수액 등을 달고 있는 엄마는 혼자 화장실을 가기 어려워해 매번 “소소야, 엄마 화장실”을 나지막이 말했다. 밤 11시 소변량 350㎖, 새벽 2시 300㎖, 새벽 4시45분 200㎖, 아침 7시30분 350㎖…. 엄마가 화장실 가는 횟수만큼 나의 밤도 분주했다. 두 시간 이상 자기 어려워, 영아를 양육 중인 엄마들이 통잠을 자지 못하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변통에 엄마의 소변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다리 사이로 소변통을 제대로 갖다 대지 못하거나, 엄마가 다리에 힘을 세게 주면 고무 패킹은 여지없이 소변통과 분리돼 화장실 바닥에 떨어졌다. 엄마가 멈추지 못한 소변은 내 손과 엄마 환자복, 속옷을 금세 적셨다. “괜찮아. 얼른 환자복이랑 새 속옷 가지고 올게” 하고 엄마에게 말했지만, 수액 탓인지 음수 탓인지, 엄마는 하루에 많게는 서너 차례 환자복을 갈아입어야 했다. 2~3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찾는 엄마의 부름이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2인용 준무균실로 입원했다. 무균실에 들어가기 전, 조혈모세포 채집 단계에서 머무는 병실이었다. 맞은편에 성인 여성 환자 4인, 성인 남성 환자 4인, 소아·청소년 환자 다인이 쓸 수 있는 준무균실이 모두 4개 있었지만, 이미 병실이 다 차 2인실로 배정받았다. 일반 병실과 달리 각각의 침대에는 천 커튼 앞쪽으로 비닐 커튼이 한겹 더 쳐져 있었다. 면역력 떨어진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맨송맨송한 머리가 낯설 법도 한데, 엄마는 암 환자가 쓰는 두건이 거추장스러운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벗어버렸다. 비슷한 병명을 가진 환자 대부분 민머리여서,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민머리를 과감히 드러낸 채, 20~30m밖에 안 되는 병실 복도를 하루에도 여러 차례 왕복했다. 병실 복도를 걸으며 마주하는 다른 환자와 간병인들과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척추 골절로 작은 키가 더 줄어들었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엄마의 뒷모습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엄마와 함께 병실 복도를 걷다 보면, 복도 양쪽으로 문이 꼭 닫힌 병실이 4개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환자들이 머무는 ‘무균실’이다. 병실 문이 열리는 건 식사 때, 의료진이 진료를 볼 때뿐이었다. 물론 문이 열린다고 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원이 식판을 병실 문 앞에 두면, 문을 빼꼼히 연 보호자가 식판을 가지고 들어갔다가 식사를 마친 뒤 문 앞에 내놓는 게 전부다.

복도를 걸으며 지나치는 찰나에, 병실 문 작은 창으로 들여다본 무균실 안 풍경은 불 꺼진 병실보다 더 미동이 없었다. 약 3주 동안 꼼짝없이 병실 안에서 ‘감금’ 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의 숨구멍이 무엇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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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 뒤 처음 화낸 엄마

엄마가 입원한 지 하루 뒤 맞은편 침대에 40대 여성 환자 한명이 이사 왔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마치고 회복을 위해 준무균실로 옮겨 온 환자였다. 림프종 환자였던 그는 식사를 전혀 하지 못했고,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침대 옆 간이 용변기에 용변을 봐야 할 정도로 거동도 하지 못했다. 그를 보곤, 엄마는 무균실에 홀로 들어가는 것을 걱정했다.

“어휴… 혼자 못해요, 못해. 무균실에서 얼마나 힘든데. 보호자도 힘들어! 나도 원래 무균실엔 힘들어서 못 들어간다고 했는데, 워낙 환자 상태가 안 좋고 간병할 가족도 없다고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갔어. 무균실은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이웃 환자가 검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간병인이 호들갑을 떨며 엄마에게 무균실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엄마의 미간 주름이 더 진해졌다.

“엄마가 무균실에 보호자 없이 들어가는 걸 너무 걱정하는데, 혼자 들어가도 잘 치료받고 나올 수 있다고 얘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이때 믿을 건 간호사밖에 없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서야 엄마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이틀 뒤 또다른 환자의 2인실 입원으로 엄마는 준무균 4인실로 옮겼다. 4인실엔 엄마처럼 다발골수종 환자 2명과, 림프종 환자 1명이 있었다. 다발골수종 환자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마친 목사님과 이식을 앞둔 식당 사장님이었고, 림프종 환자는 지역 대학병원으로부터 더는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희망을 좇아 서울로 온 이였다.

“나는 4기 진단받았어요. 병원에서 여명이 3개월이라고 했는데, 이미 3개월이 지났어요. 무당이 광복절만 잘 버티면 괜찮을 거라고 하더니, 진짜 광복절 지나니까 밥도 잘 먹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난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 안 해요. 난 안 죽을 것 같아요.” 림프종 환자가 말했다.

너무 씩씩해서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은 그와 무균실에 홀로 들어갔다가 또 홀로 회복하고 있는 목사님을 보니, 상태가 훨씬 양호하고 딸과 함께 있는데도 더 인상을 펴지 못하는 엄마가 비교됐다.

“엄마, 저분들도 저렇게 씩씩하게 지내고 있잖아. 엄마도 힘 좀 내”라고 한마디 했는데, 엄마가 암 진단을 받은 뒤 처음으로 화를 냈다. “나도 힘내고 있어!!”라고. 아차! 싶었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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