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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의사 지원서 0장…교수직 추천, 아파트 내걸어도 안 온다”

등록 2022-10-05 07:00수정 2022-10-05 16:38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가 2021년 11월1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공공의료 확충 정책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관련 공약 채택을 촉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가 2021년 11월1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공공의료 확충 정책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관련 공약 채택을 촉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남 목포시의 공공병원인 목포시의료원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7년 넘게 신경과가 휴진 중이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다. 응급의학과와 안과에도 정규직 의사가 없어 공중보건의(공보의)가 자리를 메운다. 내년 3월 공보의 근무 기간이 끝나면 이들 과도 문을 닫을 판이다. 이원구 목포시의료원장은 “수년 동안 의사 모집공고를 냈지만 지원서 한장 받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결원율 14.5%

현행 의료법에선 100병상 이상 300병상 이하인 경우에는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중 3개 진료과목 등을 포함한 7개 이상의 진료과목, 300병상을 초과할 땐 위 4개 과목에 정신건강의학과 등을 포함한 9개 이상의 진료과목을 열고 전문의를 두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 공공병원에서는 수년째 필수진료과가 문을 닫거나, 정규직 없어 공중보건의가 자리 메우는 일이 흔하다. 전국 지역의료원의 결원 규모가 최근 수년새 갑절로 늘어난 결과다. 병원들은 고육책으로 은퇴한 의사나 공보의를 찾고 있지만, 의사 수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탓에 이마저 쉽지 않다.

은퇴 의사도 못구해 진료과 닫아

4일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 9월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의사 정원 대비 결원율은 14.5%로 지난해(13.8%)보다 0.7%포인트 늘었다. 지난 2018년(7.6%)에 견주면 2배에 가까운 숫자다. 전북(26.1%)·전남(25.8%)·충북(21.3%)·대구(20.5%) 등 비수도권과 서울(10.6%)의 대비가 뚜렷했다.

의사가 줄면서 6개 병원에서는 특정 진료과가 3년 이상 ‘장기 휴진’ 중이다. 목포시의료원에서는 신경과와 흉부외과가 각각 2015년 1월, 2016년 4월부터 진료를 멈췄다. 전남 강진의료원은 일반의나 다른과목 전문의가 돌아가며 응급의학과를 맡고 있다. 지역의료원들은 “지역에 구할 의사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전국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데다 그마저도 서울 등에 쏠려, 지방에서는 의사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것이다. 한 지방의료원장은 “대학병원 교수직 추천이나 높은 연봉, 고급 아파트 관사 등을 약속해도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은퇴한 시니어 의사라도 모시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조만간 공공임상교수를 2차로 모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공공병원 의사 정년 연장 등을 고민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차후 (의정 협의 등을 통해) 의사 인력 증원이 이뤄져야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가 공공임상교수제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공공임상교수제는 국립대병원 의사가 지역의료원에서 순환근무를 하며 중증의료·암 등 필수의료 분야 진료를 맡는 제도다. 올해 시범사업에서는 150명 모집에 16명만 응모했다. 지방 대학병원의 인력난도 심각해 교수를 다른 병원에 내어주기 힘들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군 단위 도시에서는 종합병원뿐 아니라 지역 전반에 의사가 귀한 상황이다. 지난해 서울을 뺀 지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8명으로 서울(3.4명)의 절반 정도였다. 강원 고성군(0.4명)·경북 군위군(0.7명) 등 50개 시·군·구는 1명 이하였다.

치료가능사망률 등 의료 격차 커져

지방의 의료 공백은 수도권과의 의료 서비스 격차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구·충북의 2016∼2020년 5년 평균 ‘중증도 보정 입원사망비’는 각각 1.15와 1.14로, 전국에서 의료 서비스 질이 가장 열악한 편이었다. 사망비는 급성기에 입원해 사망이 예상된 환자 중 실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이다. 복지부는 이 숫자에 따라 지역별 의료 서비스 질을 ‘매우 열악’(1.1 초과)·‘열악’(1.0 초과 1.1 이하)·‘보통’(0.9 초과 1.0 이하)·‘우수’(0.9 이하) 등으로 구분한다. 경북(1.10)·경남(1.03)·제주·강원(이상 1.02) 등은 열악에 해당했다. 반면 사망비가 가장 낮은 서울(0.87)은 우수, 경기(0.99) 인천(0.97)은 보통으로 구분됐다.

인구 10만명 당 ‘치료 가능 사망률’ 역시 2020년 서울(37.5명)과 전국 평균(43.4명) 사이에 5.9명 차이가 났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았다면 피할 수 있는 죽음을 뜻하는 치료 가능 사망은 의료 체계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다.

“해결 첫단추는 의사 증원”

이 때문에 지자체를 중심으로 “의사 숫자를 늘려 의료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06년 이후 연 3058명 수준에 묶여 있는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고, 의대가 없거나 정원이 비교적 적은 지역에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 의대생 일부에 장학금을 주고 일정 기간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나, 공공병원 의사를 육성하는 ‘공공의대’ 신설을 요구하는 지자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기획실장은 “정부가 의료인에 대한 종합인력계획을 세워, 기피 진료과나 의료 취약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육성·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보건경제학) 교수는 “고령화 된 의사인력의 은퇴 시기 등까지 고려하면 향후 수년간 연 1000명씩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며 “지방 국립대 의대 중 정원이 비교적 적던 곳을 확충하고, 전남 등 관내에 의대가 없는 지자체(전남대 의대는 광주 소재)의 국립대에 의대를 신설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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