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우영우>를 위한 이야기 셋]
상업적인 미니시리즈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 삼고, 관계성에 주목한 것.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지금껏 장애인이 등장한 드라마에 견줘 진일보했다. 방송 3회 만에 입소문을 타고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장애인이 주인공인 또 다른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었다. <우영우>도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영우> 시즌2가 시즌3이 되고, 또 다른 <우영우>로 이어진다면, 실제 장애인 배우가 ‘우영우’가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한뼘 더 성장한 시즌2를 위해 시즌1의 아쉬운 점을 ‘애정’ 담아 살펴봤다.
①드라마토크/드라마톡평가단 “시즌2를 위한 의견”
②인터뷰/성인자폐(성)자조모임 estas 장지용 “자폐인의 삶은 계속된다”
③인터뷰/장애여성공감 “장애인을 일상서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고민”▶31일 공개 예정
24일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 중인 지용씨 모습. 사진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김효실 기자
지난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8주 동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하 <우영우>)가 방영되는 동안, 장지용 (32)씨는 숱한 언론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자폐인 ‘천재’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우영우> 가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자폐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지용씨는 자폐 당사자로서 여러 언론 인터뷰에 참여했다. 그는 2013년 국내 최초로 성인 자폐 당사자들이 모여 만든 ‘성인자폐(성)자조모임 에스타스(estas)’의 공동 조정자이자, 장애인언론 <에이블뉴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고, 대학교 4학년 때 장애인 등록을 마쳤다. 2021년 기준 정부에 등록한 자폐성 장애인은 3만4천명이다.(보건복지부 시·도 장애인등록현황)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용씨는 “자폐인들 사이에서도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매우 다양하다”고 운을 뗐다. 그가 속한 단체 에스타스에서는 드라마 종영 뒤 <우영우>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위키백과’ 방식으로 토론하고 있다. 이날 지용씨는 자신의 이야기도 단체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닌, 수많은 자폐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했다.
자폐인들도 ‘시청자’다. 자폐 당사자들은 또한 드라마가 그려낸 자폐인 모습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자폐인을 직접 만난 경험이 드문 비자폐인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자폐인의 모습을 비교군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용씨 역시 2005년 자폐인을 다룬 영화 <말아톤>이 인기를 끌었던 때 학교에서 놀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 “당시엔 스스로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도 전인데, 애들은 제가 자신들과 다르다고 눈치를 챘죠. 영화 대사를 활용해서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지용씨는 <우영우>가 기존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발달장애 캐릭터 클리셰’를 깬 측면이 있다고 봤다. 그동안에는 영화 <말아톤>의 윤초원(조승우), <맨발의 기봉이>의 엄기봉(신현준)처럼 지적장애를 동반한, 중증에 가까운 남성 자폐인들이 자주 등장했다. 보호자인 가족의 역할과 유년기, 청소년기 양육 과정의 고통이 강조됐다.
하지만 <우영우>는 처음으로 성인 여성 고기능 자폐인이 전문직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그렸다. 지용씨는 ‘고기능 자폐인’이란 표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대체할 단어가 마땅치 않아서 그 표현을 쓰지만, 사실 에스타스에서는 ‘고기능 자폐’란 말을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쓰려하진 않아요. 자폐인을 능력이나 기능성에 따라 계급화하고 차별화하는 효과가 있잖아요.”
지적장애가 동반하지 않는 ‘고기능 자폐인’들은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폐 특성을 가릴 수 있다. 이런 행위를 ‘위장하기’ 또는 ‘마스킹’(masking)이라고 부른다. “제가 지금 대화하면서 (기자와) 눈을 잘 맞추잖아요. 이것도 제가 훈련한 결과입니다. 자폐인끼리는 ‘가슴으로 배워야 할 것을 머리로 배운다’고 자조하기도 하는데요. 사람들의 감정이나 농담 같은 것도 배우고 익혀야 해요. 물론 살다 보며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도 있고요.”
우영우는 고래에 집착하는데, “회사에서는 고래 이야기 금지”라는 ‘마스킹’에 신경 쓴다. 드라마 갈무리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위장’이 가능한 것만으로는 밥벌이가 쉽지 않다. 드라마 <우영우>는 3회차에 중증 자폐 장애인 김정훈(문상훈)을 등장시킨다. 우영우(박은빈)는 처음에 자신과 김정훈이 ‘같은’ 자폐성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천차만별인 ‘다름’을 강조한다. 하지만 김정훈이 중증 자폐인이라는 이유로 살인 누명을 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온라인 댓글에 수백명이 ‘좋아요’를 누르는 현실을 목도하고 다음 같은 독백을 한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자폐인의 특성과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래 봐야 자폐”라는 편견의 벽을 마주한 우영우는 회사에 사표를 낸다. 지용씨는 자폐인들이 처한 현실을 비평한 우영우의 3회차 독백을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솔직히 3회는…, 보기 힘들기도 했어요. 중증 자폐인에 대한 차별을 극단적인 사례로 보여줘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 감정이 복잡했죠. 하지만 나치에 부역한 한스 아스퍼거의 진실에 대해 언급하고, 자폐에 대해 에이(A)부터 제트(Z)까지의 논쟁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어요.”
미국 플로리다에서 자폐성 장애를 공개한 최초의 변호사 헤일리 모스의 모습. 헤일리 모스 누리집 갈무리
전문직 자폐인이 존재한다는 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다. 지용씨와 함께 에스타스의 공동조정자를 맡고 있는 윤은호씨는, 자폐성 장애를 공개한 사람 가운데 국내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일하고 있다. 미국 사례지만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2019년 최초의 자폐 변호사 헤일리 모스가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자폐인 의대생과 전문의가 모인 에이디아이(ADI, Autistic Doctors International)라는 모임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지용씨는 우영우 같은 고기능 자폐인‘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교육·고용 현실과 직장 문화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드라마 <우영우>는 막을 내렸지만, 대한민국 자폐인의 삶은 막을 내리지 않았어요. 계속 살아가요. 드라마는 자폐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계기’를 제공한 거라고 봐요. 자폐인의 현실적 문제를 덮지 않고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계속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대학에서 사진영상미디어전공을 한 지용씨는 졸업 뒤 꾸준히 직장 생활을 했지만, 한곳에 오래 머물기 어려웠다. 평균 1년에 한 번, 2020년에는 한 해 2번 직장을 옮겨다녀야 했다. 가장 최근에 입사한 회사도 3개월 만에 회사 사정으로 퇴사한 뒤 현재는 다시 구직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21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를 보면, 자폐성 장애인의 고용률은 28.1%에 불과하다(전체 장애인 고용률은 34.6%).
자폐인 고용에 적극적인 SAP의 ‘오티즘@워크’ 프로그램 소개 페이지. SAP 누리집 갈무리
지용씨는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면서도, “<우영우>의 가장 큰 판타지 가운데 하나가 명문대 입학과 정규직 전환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한국에서 자폐인은 고등교육을 받거나 취업하는 게 쉽지 않고,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고용이 유지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스에이피(SAP),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폐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국제적 흐름도 짚었다. 에스에이피는 자폐인이 관찰력 등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폐인 대상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2017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는 기업이 ‘비주류’로 구분되는 인재들, 아이디어를 포용해서 조직의 다양성을 높이는 게 혁신에 도움이 된다는 글도 실렸어요. ‘신경다양성’(자폐성 장애, ADHD 등을 신경학적 차이로 인식,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이 기업의 경쟁력에 보탬이 된다는 얘기였죠.”
지용씨는 <우영우> 시즌2가 제작되더라도 당장 자폐인 배우가 주인공을 맡는 등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발달장애 극단 같은 게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정극을 하고 최소 조연급까지 할 수 있는 자폐인 당사자 배우, 연예계 스타가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요.”
자폐성 장애를 공개한 배우 대릴 한나(왼쪽)와 웬트워스 밀러의 모습. 위키피디아,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자폐인 스타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와 방송·연예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라고 본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연예기획사, 방송사 등의 점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그는 “비장애인 작가, 배우 등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며 “시즌2를 만든다면 자폐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당사자 자문도 받고 드라마에서도 단역이나 스태프 등을 당사자에게 맡길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영우> 10회에서 (사)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산하 발달장애인극단 ‘네모와세모’가 출연자 크레딧에 단체 이름으로 한 차례 등장했지만, 그 외 장애인 당사자 참여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할리우드에도 대릴 한나, 웬트워스 밀러처럼 자폐성 장애 진단을 공개한 스타는 몇 되지 않긴 하잖아요. 그래도 한국에서 그들처럼 스타급 자폐인 배우가 등장하는 날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드라마 제작진이 좀 더 노력했으면 합니다.”
그는 넷플릭스가 <우영우> 영어 더빙판의 우영우 역할로 실제 자폐성 장애가 있는 대만계 미국인 배우 수 안 피엔을 성우로 기용한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자폐인 배우는 더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자폐인 배우들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자, 지용씨가 맞장구치며 웃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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