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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어떻게 감히” 외친 툰베리…반말 듣는 존재로 ‘번역’되다

등록 2021-05-25 17:37수정 2021-12-28 20:03

[기후뉴스읽기]
22일 방송 <한국방송> ‘그레타 툰베리’ 다큐
한글자막에 툰베리는 존댓말, 성인들은 반말
“기특한 학생이 아니라 사회 운동가입니다”

#1. “사진 찍어도 될까?”

2019년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 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5)에 참석한 그레타 툰베리에게 행사요원이 사진촬영을 요청하며 말을 건다. 연설장으로 향하던 툰베리는 “네. 빨리요. 늦었거든요”라며 촬영에 응한다.

#2. “산불은 원래 이곳의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뭐가 달라진 거죠?”

산불이 잦아진 미국 캘리포니아 숲을 둘러보던 툰베리가 묻자 리로이 웰링턴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답한다. “기온이 상승해 증발이 왕성해졌고 그로 인해 낙엽과 죽은 가지가 바짝 말랐지.”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갈무리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갈무리

지난 22일 <한국방송>(KBS)에서 피포지(P4G) 서울 정상회의 개최를 기념해 방영한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다큐에서 툰베리는 기후위기가 덮친 현장을 찾아 각국 지도자와 시민들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린다. 세계 각지를 오가는 동안 변치 않는 점이 있다면 ‘한글 자막’에서 존댓말을 하는 툰베리와 반말을 하는 성인의 모습이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 번역자막에서 존댓말과 반말이 오가는 구도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인물이나 남녀 사이 ‘위계’를 짓는 흔한 방식이다. 학교 파업 시위를 주도하며 전세계에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온 기후운동가 툰베리를 성인 전문가와 대등한 위치에 놓기 보다는, 반말을 듣는 편이 자연스러운 미숙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가 반영된 셈이다. 다큐에서 기후학자인 리로이 웨스텔링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도 툰베리는 존댓말을, 리로이 교수는 반말을 하는 자막이 달렸다.

툰베리는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에서 각국 정상들을 쏘아보며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여러분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느냐”(How dare you?)는 당당한 말투는 큰 화제가 됐다. 그랬던 툰베리가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한글자막에선 공손히 질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 잘 듣는 청소년으로 ‘번역’된 것이다.

지난해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규정한 현행 법령이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등이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해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규정한 현행 법령이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등이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년 가까이 한국에서 기후행동을 하고 있는 윤현정(17)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반말을 하는 태도는 영역을 불문하고 반복된다. 기후 영역에서도 청소년을 미숙하며 주체로서의 권리는 없고 (보여주기식) 그림으로 쓰기에 좋은 대상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소년이 성인들의 통제 영역에 있거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기특한 청소년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되바라진 애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은 이런 대상화를 거부하고 우리 스스로의 삶과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로서 존재할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방송미디어>는 영국 <비비시>(BBC)로부터 다큐멘터리를 구입한 뒤 프리랜서에게 번역을 맡겼다고 했다. 25일 <한국방송> 관계자는 “나이가 많은 학자와 어린 학생이 동행하면서 나누는 대화인 만큼 (존댓말과 반말을 주고받는) 그런 번역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에 어긋나는 것은 없다”면서도 “앞으로 방영될 다큐 2, 3부에서는 지적사항을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오는 6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개봉 예정인 다큐 &lt;아이엠그레타&gt; 스틸컷. 서울환경영화제 제공
오는 6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개봉 예정인 다큐 <아이엠그레타> 스틸컷. 서울환경영화제 제공

청소년 기후운동가를 수동적이거나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결여된 존재로 보는 시각은 줄곧 있어왔다. 툰베리는 8살 무렵 기후변화와 온실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뒤 그의 부모까지 ‘기후변화 전도사’로 만든 인물이지만, 반대로 부모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소문이 그를 따라다녔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반바지를 입은 예언자’란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기후변화 활동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참고인 명단에 이름이 올랐지만, 출석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일부 위원들이 ‘너무 어리다’며 참여를 거부한 게 이유로 알려졌다.

오는 6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개봉 예정인 그레타 툰베리 관련 다큐 ‘아이엠그레타’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프란치스코 교황이 툰베리와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선 이들 모두 툰베리를 포함한 청소년 기후운동가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됐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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